내 집이 있는 진짜 내 동네는 요즘의 여느 도시 동네처럼 기능한다. 한마디로 전혀 기능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적으로 드나든다. 손 흔들어 인사하거나 가끔 발길을 멈추고 인사치레나 사소한정보를 나누기는 하지만, 이전 시대에 흔한 듯했던 공동체적 활동이랄까 하는 걸 함께하는 경우는 드물다. 내 이웃들 중에도 한자리에서 수십 년 살아온 사람들은 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다. 가령 나는 울타리를 넘겨다보면서 옆집 마당에 나온 옆집 여자와 오랫동안 수다를 떠는 일이 없다. 이웃들을 내 집으로초대하여 바비큐 파티를 열지도 않고, 이웃들의 집에 초대받아 가지도 않는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웃들의 이름조차 대개 모른다. 뭔가 필요한 게 생기면 - 공구든 설탕이든 - 대뜸 차를 타고 가게로가서 사온다.
도시 삶의 현실, 내가 의문을 제기해본 적조차 드문 이 현실이나는 대체로 마음에 든다. 이 현실이 우리의 도시 생활이 쇠락해가는 몇몇 이유를 알려주는 건 사실이다. 사람들은 갈수록 서로 소외되고, 낯선 사람을 대할 때 경계하게 되고, 뉴잉글랜드 토박이들특유의 약간 쌀쌀한 태도도 문제다. 그래도 대체로 나는 이웃들과의 거리에 대해서 특이할 것 없고 설명하기 쉬운 이유를 갖고 있었는데, 그 이유란 집이 내게는 은둔처라는 것이다. 집은 내가 고독과 프라이버시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장소다. 그래서 나는 내 집 현관문 너머까지 소속감을 확장 해야 할 필요성을 대체로 느끼지 못하고 지냈다.
공통의 가치에 - 개에 - 집중한다는 점은 또 특별하고 보기 드문 편안함을 빚어낸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엄청 단순하다. 우리는 개 훈련 요령이나 관리에 얽힌 일화를 주고받는다.(여느 이웃사촌으로 따지면 설탕이나 공구를 주고받는 것이다.) 우리는 잠자코 앉아
개 주인들은 그 자체로 특수한 종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자기 개에게 홀딱 빠져 있고, 이렇게 집착을 공유한다는 점이 우리결속감의 핵심인 듯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신생아의 엄마들이나의대생들처럼 서로 유대감을 느끼고, 나이나 출신이나 직업 같은다른 공통점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될 만큼 깊이 있는 경험으로서로 이어진다고 느낀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사실은 그들이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점뿐이고, 그들이 나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사실도 그게 거의 전부다. 저 여자는 멋진 개를 키워, 자기 개를 잘 돌보지. 이 단순한 문장에서 우리는 깊은 가치에관하여 많은 걸 읽어낼 수 있다. 다른 동네에서 이웃들끼리 "저 여자는 정원이 멋져" 하고 말하는 게 이것과 같은 말 아닐까.
엄마가 괜찮은가? 슬퍼하시나? 기운 내고 계신가?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엄마에게 좀 더 잘해드려야 하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생활을 개선해드려야 하는데,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죄책감이 평범하고 오래된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 우리가 죄책감과 사랑을 본능적으로 하나로 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돌아보면, 내가 성가시다고 느꼈던 거의 모든 사소한 일들이어머니와 나의 그런 특이한 관계를, 숨은 줄다리기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가령 어머니의 부엌이 그랬다. 나는 그 부엌 때문에 미칠 것같았다. 그곳에 들어서서 너저분한 꼴을 보면 조리대에는 오래된 병들과 먹다 만 감자칩 봉지들이 있었고, 사방에 그릇들이 있었다 거의 생리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나는 이를 악물었고, 온몸에힘이 들어갔다. 엄마는 어떻게 이런 난장판 속에서 살지? 하지만 내 신경을 거스른 것은 사실 어머니가 청소를 싫어한다는 점 자체가 아니었다. 그 광경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감정, 즉 혼란과 무질서에대한 한결같은 두려움이 문제였다. 내가 어릴 때부터 품었던 이 감정은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어머니의 작용, 그에 대한 나의 반작용이었다.
타인에 대한 화가 자기 자신에 대한 화를, 자신에 대한 불편함을 반영할 때가 많다는 말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내가 10대 때 어머니의 숫기 없는 성격에 짜증 나곤 했던 것은 나도그런 성격이기 때문이라는(그리고 그 점이 괴로웠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지금은 너무 잘 알겠다. 나는 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미치지못한다고 느끼면 불쑥 경멸감을 느끼곤 했는데, 그것은 내가 아버지에게 미치려고 애썼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종종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중독이든, 어느 시점이 되면 당신이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행동이 당신을 통제하게 된다. 나는 그 선을 그해 여름 넘었던 것 같다. 내가 굶어서 없애려고했던 것들이 - 외로움, 불확실성, 분노 점차 덜 중요해지고 굶기그 자체가 중요해졌다. 그 문제가 내가 내리는 결정들과 내가 시간을 쓰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들의 저녁 초대를 거절하기 시작했는데, 그러지 않으면 먹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칼로리를 계산하기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실제로 먹어야 하는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점점 더 적게 먹기 시작했다.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두는 게 좋지‘ 하는 괴상한 심리였다.
... 그렇게 먹는 시간을 기대하기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그 시간을 더중요하게 만들기 위해서 정교한 의식을 지어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어느 시점엔가 나는 선을 넘었고, 그다음에는 되돌릴 수 없었다. 정상적인 식사는 죄책감과 실패를 뜻하게 되었다. 그것은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나는 엄하게 단속했다. 아예 먹지 않거나 그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삶에 사람들을 그리고 사람들에게 따르는 위험을 두지 않게 되었다. 음식과 거리를 두려는 것은 사람들, 감정들, 취약함 같은 것들과 거리를 두려는 것의 은유였다.
조앤은 일에서 보람을 찾으려고 애쓴다는 말도 했다. 남편에게 당당히 맞서려 한다는 말도 했다. 한계를 정해두는법, 책임을 위임하는 법, 자기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럽게 대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들도 했다. 나는 이것이 회복이라고 생각했다. 어떤영역에서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뒤로 미끄러지는것, 이 문제에서는 개선되고 저 문제에서는 제자리걸음인 것. 회복은 몸무게로만 측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난 몇 주 동안 토요일마다 나는 새로 사귄 친구와 함께 각자의 개를 데리고 오랫동안 숲길을 걸었다. 우리는 멜로즈시와 윈체스터시 사이의 미들섹스 펠스 자연보호 지구를 거닐었고, 링컨시의 숲도 거닐었는데, 그 산책들은 육체의 움직임과 사교의 즐거움을 둘 다 균형 있게 갖춘 활동이었다. 우리는 걷고, 말하고, 이따금앉아서 쉬면서 물도 마시고 야외에 나오게 되어 지칠 줄 모르고 신난 개들을 지켜본다. 그렇게 걷고 돌아오면, 육체적으로 활기를 되찾은 느낌뿐 아니라 다른 측면으로도 재충전된 느낌이 들었다. 세상과 이어져 있는 기분, 만족스러운 기분, 내 개와 좋은 대화와 숲의 고요함 등등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과 더 가까이 있는기분, 사실 나는 걷기를 운동으로 쳐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파야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생각이 든다. 아마 처음 떠올리는 생각인 듯한데, 우리의 마음 또한 여러 면에서 하나의 근육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체육관에서 운동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체육관 밖에서도 돌봐야 하는 근육이라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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