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관심은 딱히 우리의 행위에 있지 않고 우리가인간다운 인간, 즉 그분이 뜻하신 본연의 피조물이 되는 데있다. 그러려면 그분과의 관계가 바로 서야 한다. "바른 대인 관계"는 거기에 내포되어 있으므로 굳이 덧붙이지 않겠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면 다른 피조물들과의 관계도바를 수밖에 없다. 모든 바킷살이 중심축과 테두리에 제대로 끼워져 있으면 자연히 바킷살끼리도 최적의 거리를 유지하기 마련이다.
하나님을 숙제 검사관이나 거래 상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그분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한 것이다. 그분과의사이에 흥정이 오간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누구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한참 오해한 것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려면 먼저 자신이 파산 상태라는 사실부터알아야 한다. 단, 앵무새처럼 말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정말 깨달아야 한다. 어린아이라도 웬만큼 종교 교육을 받으면 말이야금방 따라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것이라고는 전부 이미 그분의 것뿐이며, 우리는 그마저도 다 드리지 못하고 일부를 움켜쥐기 일쑤라고 말은 비슷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 맡긴다"라는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알지만 일단 그대로 쓰겠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뜻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온전한 인간으로서 순종하신 그리스도께서 놀랍게도 그 순종을 우리의 순종으로 여겨 주시사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우리가 그리스도를더 닮게 하시며,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약점을 보완해 주신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이다.
아무리 초라한 자연적 활동도 하느님께 드리면 그분이 다 받아 주시지만, 아무리 고상한 일도그분께 드리지 않으면 다 악해진다. 기독교는 그저 자연적 삶을 새로운 삶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소재를 초자연적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새로운 질서다.
요컨대 종교와 전쟁은 이런 점에서 유사하다. 둘 중 어느 쪽도 대다수의 경우 우리의 기존 인생살이를 중단시키거나 아예 없애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서로다르다. 전쟁이 우리의 관심을 독점하지 못하는 까닭은 전쟁은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은 그 본질상인간의 영혼을 송두리째 사로잡기에는 모자라다.
모든 사람이 수영을 배울 때까지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모든 활동을 중단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여기서 몇 가지 구분해 둘 것이있다. 나는 이번 전쟁의 아군 측 명분이 인간적 기준에서아주 의롭다고 믿으며, 따라서 의무적으로 참전해야 한다. 고 여긴다. 모든 의무는 신성하기에 모든 의무를 수행할 우리의 책임도 절대적이다. 우리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할의무가 있으며, 거주지가 위험한 해안가라면 행여 누가 물에 빠질 경우에 대비해 어쩌면 인명 구조법을 배워야 할 의무도 있다. 내 목숨을 버려서라도 상대를 살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일 수 있다. 그러나 인명 구조에 헌신하여 완전히거기에만 매달린다면(다른 것은 일절 말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세상해야 한다고 우긴다면) 이는 편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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