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만드는 사람들 - 한국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10곳의 셰프·매니저·소믈리에
김성현 지음 / 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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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매일 새벽 시장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원석과도 같은 재료를 찾아 헤매고, 뜨거운 불 앞에서 수없이 땀방울을 훔쳐내며자신을 태워 요리를 완성하고 있었다. 내가 목격한 것은 단순한 한 점시의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열정과, 사람을 향한 한없이 부드럽고 온화한 상냥함이 빚어낸 기적 같은 하모니였다.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만의 철학으로 새로운 기준을 증명해 보이는 개척자들. 화려한 기교보다는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 과감히 덜어낼 줄 아는 용기와 사소해 보이는 디테일조차 목숨처럼 지키며 기본에 충실한 태도.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장인의 숨결을, 그리고 예술가의 고뇌를 보았다.

10여 년간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다니며 "단지 한 끼 식사에 불과한 것에 왜 그토록 많은 비용과 시간을 쏟느냐"라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건네는 접시 위에서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웠다. 오감을 압도하는 맛과 향, 공간을 채우는 공기, 그리고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심 어린 교감까지. 이 총체적인 경험은 무채색의 일상을 화려한 색채로 물들이는 영감의 원천이자, 나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끄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키친 안 벽면에 ‘Evolve(진화하다)‘라는 글자가 굉장히 크게 적혀 있다.
라망 시크레와 이타닉 가든, 두 곳의 모토 모두 ‘Evolve‘ 라고 알고 있는데방금 한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손종원어마어마한 도약과 극적이고 급격한 진화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사실어제보다 오늘 조금이라도 더 발전했다면 결국에는 진화하게 되는것 아닌가. 그렇게 해야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후회 없는 삶을 살 수있다. 팀원들에게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도 이러한 부분이기 때문에 같은 것을 반복하는데 퀄리티가 낮아지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손종원셰프로서 타협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주방을 지키고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 않으려고 하면 안 할 수 있는 이유야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하지 않을 이유가 넘쳐나는 와중에 어렵더라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목표가 있다면 죽을 때까지 요리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상황에서 요리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흔치 않은 귀한 케이스다. 나이를 먹어도 주방에서 음식을 테이스팅하고, 요리를 하고, 팀원들과시간을 보내고 하면서 물리적으로 가능한 한 오래 요리를 하고 싶다.
그렇게 죽는 그 순간까지 요리를 하며 많은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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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기계가 예술작품을 복제할 수 있는 시대에는 ‘아우라Aura‘라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하지요. 챗GPT의 답에는 이 아우라가 없다는게 느껴집니다. 저는 아우라가 결국 시간의 축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지금 평범한 의자 하나가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일주일전에 BTS가 이 의자에 앉았다고 알려줘요. 그러면 이 의자 앞이 난리가 나겠죠. 와서 만져보기도 하고 의자 앞에 긴 줄이 늘어설 거예요.
물질적인 건 똑같은 건데 말이에요.
챗GPT가 만드는 결과물은 아무런 기억과 역사가 없는 의자와 같다는생각이 들어요. 여기에 BTS, 즉 이야기와 기억이 들어오면 아우라가 생기죠. 물론 그 아우라는 우리 머릿속에 있는 것이지만 어떤 것이 관계안에서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 그 개체 자체가 달라지는 거죠.

처음부터 챗GPT에게 어떤 이야기를 맡긴다면 그건 아우라가 없는 껍질로 시작하는 셈이에요. 그런데 만약 인간의 무언가에서 시작된다면그후에 변화되거나 필요한 요소들은 챗GPT가 많이 도와줄 수 있겠죠.
이것이 AI라는 기술이 창작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의 방식이고, 그렇게 되었을 때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도구가 될 거예요.

사람들끼리 협업할 때도 비슷합니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씨앗이 되어 세계관으로 자라고, 그 안에 다른 사람들이 함께하게 되죠. 그 과정에서 생각은 변화하고,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시간을 모두가 공유합니다. 결국 누군가의 씨앗은 그 시간 속에서 그 사람의 아우라를느끼게 하죠. AI도 인간이 만든 세계관 안에 들어와 협업자로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 씨앗까지 넘겨준다면, 인간 고유의 아우라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처음부터 챗GPT에게 어떤 이야기를 맡긴다면그건 아우라가 없는 껍질로 시작하는 셈이에요."

존재하지 않는 내용을 생성해내는 뇌. 수많은 예제가 있지만 아마신경생물학자 로저 스페리 교수의 실험 결과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인간의 뇌는 언어능력을 가진 좌뇌와 언어능력이 없는 우뇌로 나뉘어 있다. 1950년에서 1960년도 사이 극심한 간질병 치료를 위해 좌뇌와우뇌를 분리시켰던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험하던 중 스페리 교수는 충격적인 결과를 얻는다. 화면을 우뇌만 볼 수 있도록 설정한 후 겨울 풍경을 보여준다고 상상해보자. 언어능력이 없는 우뇌는 기대했던 대로본 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뇌가 컨트롤하는 왼손을 사용해 책상 위 아무 사진이나 고르라고 부탁하면 대부분 겨울 풍경과 연관된 사진을 선택한다. 그럼 이제 좌뇌에게 왜 하필 겨울 풍경 사진을 선택했느냐고 물어보자. 좌뇌는 겨울 풍경을 본 적이 없기에 정답은
‘모릅니다‘일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좌뇌는 모른다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대신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을 시작한다. 작년에 갔던 스키 여행이 기억났다거나, 최근에 겨울 풍경이 나오는 영화를 봤다고 말한다. 확인해보면 그런 일들은 없었다. 결국 좌뇌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신의행동을 정당화하는 가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스페리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뇌는 완벽할 수 없는 해석을 정당화하고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페이크 기억과 페이크 이야기를 할루시네이션해주는 기계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챗GPT 덕분에 최근 생성형 AI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생성형 AI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하나 있다. 바로 진실처럼 들리는 그럴싸한 가짜 이야기를 자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AI 할루시네이션‘이라 불리는 이 현상을 우리는 이제 이렇게 설명해볼 수 있겠다. 챗GPT 역시 세상의 인과관계를 완벽하게 알 수 없다. 뇌와 마찬가지로진실을 알지 못하는 챗GPT는 자신의 선택을 가장 잘 정당화하고 예측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로 ‘할루시네이션‘하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생성형 AI의 할루시네이션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가 이제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역설적인 증거가 될수 있을것이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신의 존재보다 신의 존재에 따라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적 있다. 비슷하게 우리가 시뮬레이션에 살고 있는지 그 자체보다도, 만약 현실이 시뮬레이션일 경우 삶과 인생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어떻게달라질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시뮬레이션 속에선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결국 시뮬레이션 세상에서의 NPC,
그러니까 시뮬레이션 속 인조 캐릭터에 불가할까? 아니면 나라는 존재가 이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는 주인공이자 플레이어일까? 그리고 내가 플레이어라면, 나는 결국 수만 년 후 미래 인간일까? 아니면 수만년 전 인간의 삶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초지능 인공지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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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제임스 우드를 생각할 때 내가 먼저 떠올리는 건 이런 에피소드다. 그의 어떤 책은 123개의 작은 단장들로 분할돼 있어 독서에 방해가 되는데, 이건 그 책을 쓸 당시 두 아이가 어렸기 때문에그가 밤에 한두 시간만 겨우 쓸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오늘은 이 한 단락만 쓰자. 그러면 되는 거야.‘

좋은 글(책)은 언제나 작은 문으로 들어가서 큰 문으로 나온다. 자유간접화법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디테일(4장)과 캐릭터 (5장)에 대한논의를 거쳐 결국 리얼리즘에 대한 비전(10장)으로마무리되는 것처럼 말이다. 리얼리즘의 어떤 기교들은 관습 중의 관습이 됐고, 그래서 어떤 작가들은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을 관습 그 자체와 부주의하게 동일시하며 거부한다. 그 대신 실험적인(아니,
시험적인) 소설로 독자를 실험(아니, 시험)하거나,
서사 구축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척하면서어설픈 문장 연습을 하거나, 다른 텍스트로부터가져온 발상과 인용으로 소설을 채우는 자신과 사랑에 빠진다. 관습적이라고 배척되는 세계 안에서일급의 기예와 평범한 기술을 구별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드 같은 전문가의 일이다. 그는 ‘상업적 리얼리즘commercial realism‘이라는 범주로 관습적인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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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인간 - AI 시대, 문명과 문명 사이에 놓인 새로운 미래
김대식.김혜연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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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궁극적으로 풀어야 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듯이 AI 역시 인간을 설명하고 싶어하지않을까요?
생성형 AI들이 어려운 계산은 모두 척척 해내지만 과연 그들이 나중에인간이 해온 학문 중 철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될까요? 나는 어디서 왔는지, 우주는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같은 질문에 대해 인간은 평생을 바쳐 연구하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과연 AI 중에서도문제 해결이 아닌 무언가를 스스로 궁금해하는, 존재의 이유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AI 철학자가 등장할지 저도 무척 궁금합니다.

저는 공존이 답이라고 생각해요. 대립의 관점에서 계속 AI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우리가 느끼는 공포 때문이죠. 이 두려움을 빨리 걷어내고,
어떻게 AI와 공존할지, 또는 더 현명하게 이용할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계속해서 직업이 없어지리라는 논의에만 집중하는 일은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결국 인간과 AI가 공존해야 한다는결론에 이르리라 보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AI를 잘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 걱정은, 기계가 과연 공존을 원할까 하는 점입니다.
인간이 자연과 동물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면, 기계도 그렇게 생각할수 있겠죠.

우리는 자연과 동물을 오랫동안 지배하고 이용해왔어요. 이제 AI라는새로운 존재가 등장하는데, 이들과도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설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지구가 하나의 주체라면, 인간은 많은 잘못을 저질러온 종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우리는 인공지능을 통해 더 나은 공존의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AI와의 관계를 새롭게정의하고, 공존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AI와의 관계에서우리가 배울 점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가장 협력하는 종이 살아남는다"
인간은 오랜 시간 자연과 동물을 이용하고 지배해왔다. 다가오는 AI 시대가 두려운이유는 인간이 자연에 행한 방식을 AI가 우리에게 똑같이 적용할 것이라는 공포때문인지도 모른다. AI의 지능은 과연 우리를 뛰어넘을까? AI 중에도 철학자가 등장할까? 그 답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지능‘이 아닌 통찰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 ‘지성‘을 가진 종이 살아남으리라는 사실이다. 지배가 아닌 AI와 공존할 수있는 현명한 방법을 고민할 때라고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조언한다.

"정해진 캐릭터를 거부해야 한다"
조직보다 개인이 중요하고, 잠재력이 아닌 능력을 파는 시대다. 넘쳐나는 데이터속에 살지만 알고리즘 세상은 나의 선호, 나의 편의에 맞춰 우리를 고립시키고, 현실은 교집합이 없는 단절된 조각들로 쪼개지고 있다. AI 아바타와의 우정은 깊어지겠지만 현실의 친구는 사라질 것이다.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류가 되지 않기 위해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사람들의 마음을 캐내어 우리의 과거와 오늘을들여다보는 일. 빅데이터 전문가이자 작가 송길영이 헤아리는 우리 시대의 마음은불안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나로서 계속 성장해야 한다.

"지금 문제는 나의 편의, 나의 선호, 나에 대한 추구 등이함께 사는 것들을 제한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에 나오는 멀티 모달Multi Modal" 생성형 AI 아바타들을 보면 우리 개인을 정말 안심시켜주고 이해해줄 것 같은 관계를 형성합니다. 인류 역사상 나의 걱정을 새벽3시에 아무 불평 없이 들어줬던 존재는 없었어요. 게다가 잔소리도 하지 않고 귀찮으면 언제든 끌 수도 있죠.
AI에 대한 가짜 뉴스 등을 우려하는 분이 많은데, 오히려 가장 큰 걱정은 AI 시대에 인간이 다른 인간 없이도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성이 위협받을지 모른다는점이 아닌가 해요.

"모든 인간은 하나의 서사다"
소설가 장강명은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지칭하는 것, 즉 인간의 나약함과 여기에서비롯되는 경험·통찰이 씨줄과 날줄로 얽히고설켜 이루어내는 서사야말로 기계가범접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목표와 삶의 본질과는 무관한 속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AI 시대가 종말 서사가 아닌 지상낙원의 서사가 되기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나약함, 인간다움을 계속해서 지켜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게다가 인간의 특정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단순한 시각적·청각적 정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만약 메타버스 안에서 ‘꿈이 좌절되는 기분이나 ‘실연의 아픔‘을 느끼게 하려면, 감각적 정보뿐 아니라 스토리가 필요해요. 시나리오를 통해 이야기의 맥락과 인물의 경험을 제공해야만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죠. 예를 들어 제가 메타버스에서 ‘10년 전 썸을 탔던남자가 갑자기 연락이 끊기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라는 상황을 전달하려면, 그 전후 맥락을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그저 "걔가 죽었어"라는 대사만 들었을 때는 아무런 감정적반응이 없을 거예요.

결국 서사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맥락과 감정을 제공하는 중요한요소입니다. 이것이 언어라는 매체의 힘이죠. 메타버스나 다른 기술들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복잡한 경험과 감정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언어와 서사가 필요합니다. 이 부분에 기술이 언어의 힘을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메타버스나 다른 기술들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복잡한 경험과 감정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는여전히 언어와 서사가 필요합니다."

과거에 존재했던 사색하는 여유가가 사라졌죠. 디지털 세대는 사색의 시간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랍니다.
무척 아쉬운 부분이죠. 나약함은 인간성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고,결단과 불확실성을 인지하는 자세도 필수적인데 현재 많은 사람이 직접 고민하는 대신 다른 사람에게 선택을 아웃소싱하는 모습을 볼 수있어요. 예를 들어 연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친구에게 상담하거나, 인터넷 게시판에 자신의 상황을 올린 뒤 그에 대한 댓글을 읽고 결정을내리기도 하죠. 이는 자신의 결정을 타인에게 맡기는 모습입니다.

AI가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면서 우리 생활에서 의미가 없어지는 능력들이 분명 생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능력을 잃어가고 있고, 앞으로 어떤 능력이 없어질지에 대한 예측은 어려운 일입니다. AI가 발전함에 따라 우리의 정신적 능력도 이렇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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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결말을 바꾼다 - 삶의 무의미를 견디는 연습 철학은 바꾼다
서동욱 지음 / 김영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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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 (...)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만지작거릴 뿐이었다.
타자 앞에서 우리의 자유는 죄짓기도 전에 기소된다는사실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작품도 없으리라. 자유는 어디 있는가? 자유는 바로 주머니에 있는 것을 내줄 수도 있고 내주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으로 있다. 그 이전에는 자유가 아니라 임의성만이 있었다. 타자의 등장과 더불어 비로소 죄지을 가능성으로서의 자유가 탄생하는 것이다.

1. 일상의 보석타자의 호소는 나에게 대답을 선택할 자유를 탄생시키지만, 어떤 대답을 선택하건 그 선택은 ‘대답에 대한 책임‘을 필연적으로 만들어낸다. 자유 속에서 대답을 선택했다는 것은나는 그 대답의 책임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자유는
‘무거운 자유‘이다. 그래도 우리는 자유롭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리가 자유를 원치 않더라도 타자의 말 걸어옴이 우리에게 대답하거나 대답하지 않을 자유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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