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코헬렛을 인식론적 회의론자, 혹은 극단적 비관주의자 내지쾌락주의자로 이해해왔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도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말하는 구절이 자주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 코헬렛을 이와 같은 종래의 범주에 묶어둘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그의 끊임없는 성찰은 과학적 연구 방법에 그 기반을 두고 있으며,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가치 매김을 시도한다. 그의 사고 대상은 순수한 사변으로 그치지 않고경험에 바탕을 두었으며 언제나 인간의 일이었기에 인간중심주의적이었다. 또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간파했다는 점에서 그는 참으로 현실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가슴속 깊은 한편에 하느님께 자리를 마련해드리고 있었기에 그의 가르침은 진정한의미에서 신학적인 것이기도 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가 가르치는 메시지는 인간은 인간으로 머물러야 하며 결코 하느님의 자리를 뺏으려 하지 말고 하느님을 최상의 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인간은 땅 위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5,1 참조). 이 사실을 깊이 인식할 때, 당신 자유에 따라 행동하시는 하느님을 현인들이 주장하는 질서의 틀에 반응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게 되는일체의 위험을 배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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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은 중요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더, 관심은 우리의 삶을 형성한다.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지금 당장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3라고 말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인 것만이 우리 앞에 존재한다. 이건 은유가 아니다. 사실이다. 많은 연구에서 나타나듯이 사람은 자신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한다.
관심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결정했느냐, 더 중요하게는어떻게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곧 그 사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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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활동에서 발견되는 특이점이 두 가지 있다. 요한은 다른 예언자들,심지어는 예수와도 다르게 사람들 곁으로 가지 않는다. 요한은 광야에서활동하는데,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기 위해 그의 곁으로 간다. 또 정결례를 위해 스스로 몸을 씻는 것이 일반적인데, 요한은 물에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이런 식의 활동은 그리 일상적이지 않고, 요한에게서나 볼 수 있는 매우 특징적인 것이다

요한의 음식과 옷은 그가 생존에 꼭 필요한 최소한도에 만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에게는 오직 하느님만이 모든 것의 중심이다. 요한은 먹을거리를 광야에서 얻는다(루카 7,33 참조). 그리하여 땅에서 나는 과일에는거리를 둔다. 과일은 분명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그 선물은 항상 창조주이자 수여자이신 분을 잊게끔 유혹한다. 게다가 요한의 옷은 마치 엘리야가되돌아와 주님의 길을 준비한다는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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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삶의 기적은 우리가 어떤 약점들을 타고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피부 한 꺼풀에 불과하지만, 추함은 뼛속까지 파고든다."
─도로시 파커

피부에 관한 모든 것의 권위자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인 니나 자블론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솔기는 터지는 법이 없어요. 저절로 벌어져서 새는 일이 없지요."
피부는 진피라는 안쪽 층과 표피라는 바깥쪽 층으로 이루어진다. 표피의 가장 바깥 표면은 각질층인데, 전부 죽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를 사랑스러워 보이게 하는 것이 모두 죽은 것이라니 흥미롭다. 몸이 공기와 만나는 지점만 보면, 우리는 모두 시체이다. 이 바깥 피부세포들은 매달 교체된다. 우리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많은 피부를 떨군다. 1분에 약 2만5,000개, 즉 1시간에 100만 개가 넘는 피부 조각이 떨어져 나간다. 손가락으로 책꽂이에 내려앉은 먼지를 죽 훑으면, 대체로 예전의 자신이었던 것의 잔해들을 헤치면서 길을 내는 셈이 된다. 소리 없이 그리고 냉혹하게 우리는 먼지로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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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신앙이 부족하다는 것을 애석하게도 나 자신의 슬픈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나 자신만 바라보고 하느님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곧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과 나를 위해 열려있는 그분의 마음에 주목하지 않고 ㄱ신의 쓸모없음만을 본다. 둘째, 내가 청원하는 바를 너무도 인간적인 눈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바라보지 않고, 내가 지금 바라는 은혜는 도저히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불가능한 것이라든가, 또는 얼마나 많은 장애가 가로막고 있는가 하는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이제부터는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만을 바라보자. 우리 하나하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고난을 받으신 것은 오직 사랑 때문이었으며, 그분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감미롭고 즐거우며 당연한 것으로 여기신다. (베풀어야 할 은혜가크면 클수록 그만큼 더 기쁘게 내놓는 것이 사랑의 본성이다.)우리에게는 가장 힘들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능력으로 하실 수 있음을 늘 바라보자.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당신께 드린 청이 들어 허락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게 이 은혜를 전구해 주시며, 제가 졸지 않게 제 위에 당신 손을 펴주십시오. 주님의 발치에 있을 때, 그리고 주님이 기도하기를 권하실 때, 주님과 단둘이 지낼 수 있도록 일부러 불러주실 때 저는 애석하게도 여러 번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모든 일은 그분이 원하고 허락하여 일어나는 것이므로 두려움이 아니라 그분께 더 큰 영광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원칙(예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ᆞ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에 의해 일어난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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