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집단은 규모가 커지면 일부가 새로운 거처를 찾아 옮거 간다. 새로운 이주지를 결정할 때 꿀벌들은 놀라운 방법을 이요한다고 알려져 있다. 사방으로 흩어져 각자 이주 후보지를 물색하고는 현재의 거주지로 돌아와 다른 친구 꿀벌들에게 자기가본 것을 춤으로 알린다. 가본 곳이 얼마나 먼지, 어느 방향으로가면 있는지, 그리고 그곳을 자기가 얼마나 마음에 들어 했는지도 동료 꿀벌들에게 춤을 춰 알린다.
흥미로운 점이 여럿 있다. 먼저, 꿀벌들은 한 번에 서둘러 결정하지 않는다. 다른 곳을 가본 친구가 그곳이 좋았다고 알리면,
내가 가던 곳이 충분히 좋더라도, 다음에는 친구가 추천한 곳에도 슬쩍 가본다. 새로 방문한 곳이 자기가 처음 가본 곳보다 더마음에 들면, 고집부리지 않고 마음을 바꿔 친구가 추천한 곳을나는 친구들에게 알리는 춤의 대열에 합류한다. 이런 과정을 여거지면서 꿀벌들은 조금씩 조금씩, 함께 탐색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거쳐최적의 이주 후보지에 모두 합의하게 된다

난 이처럼 단절된 소통이 두렵다. 서로 단절되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하고만 의견을 교환하다 보면 자신의 생각이 당연히 옳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리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하나같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로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잊지 마시라.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을. 나는 그들을,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단절은 의견 교환을 막아 미래의 상호이해도 어려워진다. 난 우리 모두가 개미나 꿀벌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도 귀담아 듣고, 그 의견이 옳다면자신의 생각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을 때, 우리 사회의 함께지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까? 꿀벌에게 배울 점은 또 있다. 바로의견을 모으는 과정에 모두가 춤을 추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거다. 민주주의 국가의 투표는 바로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축제의 장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열린 마음으로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 그리고 투표하지 않는 사람은 반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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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는 게 아무것도 없으면 머릿속이 차라리 비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않다. "나는 생각한다(=나는 회의한다)"가 없는 채 지배 세력이 선별한 생각(=고집)을 정답으로 주입받았기 때문에,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고 있음에도 회의할 줄 모르고 그것을 막무가내로 고집하는, 완성된 존재처럼 살아가는 것, 이것이 한국의 대다수 피지배 대중이 보여주고 있는 서글픈 자화상이다.

"사람은 현존재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스피노자의 말이다. 우리는 사람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내 가족과 친척, 내 친구, 내 동료, 내 이웃이 변하지 않는다고인식하는 나도 그들의 눈에는 변하지 않는 존재로 비칠 것이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변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조금 섬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즉, 회의하는 자아는 회의하는 자아인 채로 변하지 않고, 회의하지 않는 자아는 회의하지 않는 자아인 채로 변하지 않는다. 세상이 좀처럼 변하지않는 것은 후자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회의하는 자아가 드물기는 하지만 아주 없지는 않다. 회의하는 자아가 자기 의지로 자신의 사유세계를 열어 자기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나를 짓는 자유를 누린다면, 대부분은 자신의사유세계를 닫은 채 머물러 있음으로써 나를 짓는 자유를 누리지 않는다. 사유세계의 문을 닫은 채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사유세계의 문이 닫혀 있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자신이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른 양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반면에 회의하는 자아는 자신이 완성 단계에 이르기는커녕 인에나 부족하다는 점, 수많은 오류에 빠져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회의하는 자아로 남게 되며 사유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둔채 살려고 노력한다.

사람에게 배고픔의 현상은 있어도 생각고픔‘의 현상은 없고 사람은 몸과 정신으로 구성된 존재로서 몸은 생존을 위해영양분을 섭취하고, 정신작용에 의해 머릿속에 사유세계를 형성한다. 몸속에 들어간 영양분은 분해되어 건강을 유지하게 하고 찌꺼기는 배설된다. 신진대사를 통해 배고픔을 느끼는 몸은새 영양분을 섭취하도록 요구한다. 이것이 배고픔 현상이다.
반면에 우리가 한번 품은 생각은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어생각고픔의 현상이 없다.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과 충돌하는생각이 바깥에서 다가올라치면 가차 없이 배척한다. 생각의 성질이 머물기, 즉 고집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것들이 나를 주체적인 삶으로 안내하는지 아니면 복종의 삶으로 이끄는지, 나를 올바른 길로 안내하는지 아니면 잘못된 길로 이끄는지 등에 대해 묻거나 분석지 않은 채 다만 그것들을 고집하면서 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내가 습득한 지식과 정보로 채워진 내 생각은 거의 정리되지 않은 채로 있지만, 거기에는 나의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의 지향이 담겨 있다. 그래서 내 생각은 내 삶의 지향을 규정하는 나침반과 같다. 그런데 실제의 나침반은 자리를 옮기면 방향을 지시하기에 앞서 바늘을 바르르 떨지만, 회의하는 자아로살지 않는 사람의 삶의 방향을 지시하는 생각은 조금도 떨지않는다. 떨림도 흔들림도 없는 삶, 모두 완성된 사람처럼 살아간다.

설득하기보다 선동하기가 더 쉬운 한국 사회에서 집단사고는 극단으로 치달을 위험이 훨씬 더 크다. 사회심리학자인 어빙 재니스 교수에 따르면 집단사고는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경향"을 말한다. 집단사고는 낙관론으로 집단의 눈을 멀게 하는 현상으로서 외부를 향해서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취하게 이끈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재니스 교수가 말한 집단사고의 위험성이 훨씬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과격하고 극단적인 언어와욕설들이 정치권에서만 난무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분출된다.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합리성에 기초하여 타협, 양보, 조정되는 대신 ‘힘의 논리‘로 대립하는 양상을보이고 법에 호소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법이 내 편을들어주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엔 법이 잘못된 것이지 내 생각이나 주장이 잘못된 게 아니다. 나는 완성 단계에 이든 사람이므로, 그리하여 너도나도 막말을 포함하여 말은 많이하지만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사회, 주장과 주장이 부딪칠별이 되지 않는다는 경험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설득하기를 를 포기한 채 살아가는 사회가 한국 사회다.

어떤 문제에 대해 가능한 한 정확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상이한의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나아가 다양한 처지에있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그 문제를 이모저모 따져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현명한 사람치고 이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지혜를 얻은 사람은 없다. 인간 지성의 본질에 비추어볼 때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지예를 얻을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하고대조하면서 틀린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는 일을 의심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오히려 이를 습관화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에 대한 믿음을 튼튼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 존 스튜어트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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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숲에서의 일 년 인생그림책 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지오반니 만나 그림, 정회성 옮김 / 길벗어린이 / 202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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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내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과 정면으로 부딪쳐서 나 자신이 인생의가르침을 온전히 익힐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언젠가 죽음을맞게 되었을 때 내가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싶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꼭 그래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나는 결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순간이라도 깊이 있게 살면서 삶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싶었다. 또 스파르타 사람처럼 강인한 태도로 살면서 삶이 아닌 것들을 모두물리치고 싶었다. 삶을 뿌리까지 바짝 잘라 내어 구석으로 몰아간 다음 가장낮은 곳까지 끌어내려서, 그것이 천박한 것으로 드러나면 그 적나라한 모습을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와 반대로 삶이 숭고한 것이면 직접 체험하면서그 사실을 깨달아 다음에 글을 쓸 때 그에 대해 정확하고 충실하게 전하고싶었다.

날마다 맞이하는 아침은 내게 자연처럼소박하고 순수한 삶을 꾸려가라고 권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호수에서 목욕을했다. 이는 하나의 종교적인 의식으로, 내가 한 일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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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안 되는 거야.
- 1904년 1월, 카프카,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 중-

땅콩을 거두었다.
덜 익은 놈일수록 줄기를 놓지 않는다
덜된 놈! 덜떨어진 놈!

이 한 줄만으로도 덜된다는 게 이런 얘기구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익으면 떨어지는데, 익지 않아 ‘덜떨어진다는 겁니다. 이 한 줄 자연현상이 인간사로 넘어오는 순간입니다. 현기증 나는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그냥 자연현상인데 순식간에 사람의 것으로 이입이 됩니다. 이 철수는 또 저에게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동양의 삶의 태도와 서양의태도를 가장 극명하게 비교하게 해주었는데요, 그것은 역시 판화 가을사과에 쓴 한 줄의 글이었습니다.

사과가 떨어졌다.
만유인력 때문이란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사과가 떨어진 걸 만유인력 때문이라고 기어이 과학적으로 밝혀내고야 마는 것은 서양의 장점입니다. 그리고 동양의 장점은 때가 되어서 떨어지는 걸 왜 안달복달 난리들이야 하며 자연을 아우르는 철학입니다.
과학적으로 끌고 온 서양의 담론과 노력은 인정하지만, 동양의 것은 이렇게 쾌도난마亂麻의 느낌이에요. 칼로 퍽 쳐서 단숨에 꼬인 실타래를 확 풀어버리는 맛이 있죠. 서양의 장점이 가져다준 문명적인 혜택,충분히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자연적 재앙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연현상을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파악하는 동양의 지혜가 다시 힘을 발휘해야 할 때가 되었구나 생각합니다

요즘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고수들이 일상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구나 싶습니다. 박재삼이, 존 러스킨이, 헬렌 켈러가 같은 생각을 했어요. 사과가 떨어져 있는 걸 본 최초의 사람이 뉴턴이 아니잖아요. 사과는 늘 떨어져 있지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은 겁니다. 상황에 대한 다른시선, 절박함이 사과를 보고 이론을 정리하게 했죠. 답은 일상 속에 있습니다. 나한테 모든 것들이 말을 걸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들을 마음이 없죠. 그런데 들을 마음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입니다. ... 여러분 안에 씨앗이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한테 울림을 줬던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의성입니다.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파리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곳에있을 시간이 삼 일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삼 일 있다가 떠난다는 걸 아니까 모든 게 난리인 겁니다. 에펠탑 봐, 이게 퐁피두래, 이게 샹젤리제거리야. 그런데 만약 거기에서 삼십 년을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그것들이 그렇게 감탄스러울까요? 대한민국, 서울,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도 들여다보면 좋은 게 꽤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것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선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그러니까 그시선을 길렀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번 말했듯 그런 것들을 기르는 데 가장 좋은 것이 책입니다.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지식이 많은 친구들보다, 감동을 잘 받는 친구들이 일을 더 잘합니다.감동을 잘 받는다는 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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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매 순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행동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행동능력이 있기에 뭔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행동이 불가능해 보일때라도 ‘정신적인 행동이 가능하다. 관점을 바꾸거나 같은 삶의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면서 말이다. 정신적인 행동으로도 우리는 뭔가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희망은 더 나은 시간을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습관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더 유리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 또한 희망이다. "삼촌이 나를 팬다면, 난 삼촌을 죽일 거예요." 에거는 삼촌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런 반항의 행위에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에거의 희망이 드러난다. 에거는 다가올 미래가 어떻게전개될지 알지 못한다. 그의 행동으로 일상의 익숙한 진행을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의 편이 되어준다. 이 순간 변화가 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이렇게 썼다. "모든 시작의 본질은 그것이 기존의 것,
이미 일어난 것의 시각에서 보면 아주 뜻밖에, 예측할 수 없게 세상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사건의 예측 불가능성이 모든 시작과 모든 근원이 지닌 고유한 특성이다.

안드레아스 에거의 최대 강점은 바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그는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으로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눈사태로 아내와 아이와 집이 모두 송두리째 사라져버리고 자기 뼈가 부러졌을 때도 왜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런 일이 없는데 자기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한 번도묻지 않은 채 견딘다. 이런 받아들임은 게으름이나 무감각의 소산이 아니라 삶의 지혜다. 눈사태는 도덕을 따지지 않는다. 그것을이해하려고 하거나 거기에 반항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에거는 세상이 꼭 정의롭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옳게 하면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지리라고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세상은 오히려 자신이 참여하는 사건이다. 그 때문에 그는 사랑이 찾아오면 사랑을 하고, 슬픔이 밀려오면 슬퍼한다. 그는 삶을 판단하는 대신 삶을 경험한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도 이와 비슷한 태도로 살았다. 그는 노예였다가 풀려난 사람으로, 영혼의 평화를 설파하여 유명해진 철학자다. 그는 삶 자체가 인간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삶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을 변화시킬수도 없기에 괴로운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에픽테토스의 가장 중요한 충고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하라는것이었다. 에픽텍토스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을멈추면 훨씬 더 행복해진다고 생각했다.
에픽테토스는 자신의 철학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일화에 따르면 그는 주인이 때려서 고관절이 부러졌을 때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주인이 노예의 뼈를 부러뜨릴 힘은 있을지언정 그의품위를 손상할 힘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에픽테토스의 평정심이 철학적인 숙고에서 비롯되었다면, 안드레아스 에거의 인내심은 그의 단순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으로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거 역시 언제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좋을지를 지혜롭게 인식한다. 그처럼 에거는 우리에게삶의 지혜는 반드시 외형적인 교육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은 파킨슨병을 앓을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이었어요 . 하지만 그것만 빼면 나는 무한한 선택의 가능성을 안고 있어요. 내가 그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오로지 내게 달려있어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우지 몰라도 - 중요하지요. 체념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치료 가능성을 강구하는 것도 아니고요. 거기에서 도망치려 하거나 반대로뭔가를 변화시켜보려고 하면, 정말 힘들어져요."

위기 속에서 성장하는 것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일어난 일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모든 것에는 좋은 면이 있다고 무조건 믿는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실의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바로 그곳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폭풍우가 내 삶을 휩쓸었음을 압니다. 나는 내가 해고당했음을 받아들입니다. 나는 내바람과 달리 이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젊음은 최종적으로 갔습니다. 수술로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인정합니다" 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상황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때, 단순하지만 중요한 질문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그래,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어. 하지만 이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시간을 불행이 일어나기 이전 시점으로 되돌릴 수 있었으면 하고 애타게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한 우리는 불행하고 좌절할수밖에 없다. 진정한 성장은 늘 현실을 토대로,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결코 이전처럼 되지 않을 것임을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은 심지어 ‘더 좋아질 수 있다. 더 깊고, 더충만하고, 더 생동감 넘치고, 더 가치 있고, 더 공감적이며, 더 성숙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조지프는 "트라우마는 마치 팡파르처럼 기존의 경직된 사고와 감정을 점검해보라고 우리를 일깨운다"고 말한다.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것도 우리가 점검해야 할 중요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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