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는 게 아무것도 없으면 머릿속이 차라리 비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않다. "나는 생각한다(=나는 회의한다)"가 없는 채 지배 세력이 선별한 생각(=고집)을 정답으로 주입받았기 때문에,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고 있음에도 회의할 줄 모르고 그것을 막무가내로 고집하는, 완성된 존재처럼 살아가는 것, 이것이 한국의 대다수 피지배 대중이 보여주고 있는 서글픈 자화상이다.

"사람은 현존재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스피노자의 말이다. 우리는 사람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내 가족과 친척, 내 친구, 내 동료, 내 이웃이 변하지 않는다고인식하는 나도 그들의 눈에는 변하지 않는 존재로 비칠 것이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변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조금 섬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즉, 회의하는 자아는 회의하는 자아인 채로 변하지 않고, 회의하지 않는 자아는 회의하지 않는 자아인 채로 변하지 않는다. 세상이 좀처럼 변하지않는 것은 후자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회의하는 자아가 드물기는 하지만 아주 없지는 않다. 회의하는 자아가 자기 의지로 자신의 사유세계를 열어 자기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나를 짓는 자유를 누린다면, 대부분은 자신의사유세계를 닫은 채 머물러 있음으로써 나를 짓는 자유를 누리지 않는다. 사유세계의 문을 닫은 채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사유세계의 문이 닫혀 있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자신이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른 양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반면에 회의하는 자아는 자신이 완성 단계에 이르기는커녕 인에나 부족하다는 점, 수많은 오류에 빠져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회의하는 자아로 남게 되며 사유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둔채 살려고 노력한다.

사람에게 배고픔의 현상은 있어도 생각고픔‘의 현상은 없고 사람은 몸과 정신으로 구성된 존재로서 몸은 생존을 위해영양분을 섭취하고, 정신작용에 의해 머릿속에 사유세계를 형성한다. 몸속에 들어간 영양분은 분해되어 건강을 유지하게 하고 찌꺼기는 배설된다. 신진대사를 통해 배고픔을 느끼는 몸은새 영양분을 섭취하도록 요구한다. 이것이 배고픔 현상이다.
반면에 우리가 한번 품은 생각은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어생각고픔의 현상이 없다.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과 충돌하는생각이 바깥에서 다가올라치면 가차 없이 배척한다. 생각의 성질이 머물기, 즉 고집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것들이 나를 주체적인 삶으로 안내하는지 아니면 복종의 삶으로 이끄는지, 나를 올바른 길로 안내하는지 아니면 잘못된 길로 이끄는지 등에 대해 묻거나 분석지 않은 채 다만 그것들을 고집하면서 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내가 습득한 지식과 정보로 채워진 내 생각은 거의 정리되지 않은 채로 있지만, 거기에는 나의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의 지향이 담겨 있다. 그래서 내 생각은 내 삶의 지향을 규정하는 나침반과 같다. 그런데 실제의 나침반은 자리를 옮기면 방향을 지시하기에 앞서 바늘을 바르르 떨지만, 회의하는 자아로살지 않는 사람의 삶의 방향을 지시하는 생각은 조금도 떨지않는다. 떨림도 흔들림도 없는 삶, 모두 완성된 사람처럼 살아간다.

설득하기보다 선동하기가 더 쉬운 한국 사회에서 집단사고는 극단으로 치달을 위험이 훨씬 더 크다. 사회심리학자인 어빙 재니스 교수에 따르면 집단사고는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경향"을 말한다. 집단사고는 낙관론으로 집단의 눈을 멀게 하는 현상으로서 외부를 향해서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취하게 이끈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재니스 교수가 말한 집단사고의 위험성이 훨씬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과격하고 극단적인 언어와욕설들이 정치권에서만 난무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분출된다.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합리성에 기초하여 타협, 양보, 조정되는 대신 ‘힘의 논리‘로 대립하는 양상을보이고 법에 호소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법이 내 편을들어주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엔 법이 잘못된 것이지 내 생각이나 주장이 잘못된 게 아니다. 나는 완성 단계에 이든 사람이므로, 그리하여 너도나도 막말을 포함하여 말은 많이하지만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사회, 주장과 주장이 부딪칠별이 되지 않는다는 경험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설득하기를 를 포기한 채 살아가는 사회가 한국 사회다.

어떤 문제에 대해 가능한 한 정확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상이한의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나아가 다양한 처지에있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그 문제를 이모저모 따져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현명한 사람치고 이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지혜를 얻은 사람은 없다. 인간 지성의 본질에 비추어볼 때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지예를 얻을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하고대조하면서 틀린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는 일을 의심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오히려 이를 습관화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에 대한 믿음을 튼튼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 존 스튜어트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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