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에는 차마 들어줄 수 없네 하는 무안한 마음이 들었고, 그다음에는 화가 났고, 그러더니 불쑥 웃음이 났다. 나는 장례식에 어울리지 않게 터져나온 이런 감정을 숨기려고 손수건을 찾다가 내여동생과 이모도 웃고 있는 걸 발견했다. 우리 모두는 터져나오는웃음을 참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웃음은 쉽사리 전염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우리는 돌아가신 할머니라도 아마 웃었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할머니는 웃음이 얼마나 마음을후련하게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바버라 파흘-에버하르트와 함께 세미나를 하면서, 우리는 매사에 조심한다고 해도 삶의 불쾌한 측면들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생겨나는 불안감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나누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이란 조건이 명확하고, 숙지할수 있는 규칙과 훈련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되는 일일 텐데, 그러기에는 삶이라는 게 너무 복합적이라는 것.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훤히 조망할 수 있는 닫힌 시스템뿐이라는 것. 그러기에마지막 호흡을 할 때까지 삶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늘 새로운 변화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는 것. 많은 사건들은 우리 힘으로는 만들어낼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으며, 따라서 많은 경우 중요한 것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것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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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외부의 위협에 비합리적인 증오심으로 반응하고, 꽤 넓은 여분의 범위까지 고려하여 그 위협의 근원을 압도할 수 있을 만큼 적개심을 고조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는 사람을 동료와 이방인으로 구분하는 성향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방인의 행동에 매우 두려움을 느끼고 공격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런 학습규칙들은 지난 수십만 년 동안 진화해온 것일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그런 규칙들을 최대한 성실하게 지키는 사람에게 생물적인 이익이 제공되기 쉽다." 인간 본성에 대하여 에드워드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사이언스북스인간은 외부 위협에 때로 비합리적인 증오심을 분출시킨다. 에드워드윌슨은 "대량 학살을 수반하는 전쟁이 몇몇 극소수 사회의 문화적 인공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 종이 성숙하는 과정에서 거치는성장통의 한 결과라고, 역사적 일탈 사례라고 보아서도 안 된다. 전쟁과 대량학살은 어느 특정한 시대나 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영속적인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는 "호모 사피엔스는 친족에 집착한다"
라고 말했다. 그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세계 어디서나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을 소개할 때 가문과 족보를 먼저 밝히고, 식량수집 부족을 포함한 많은 사회의 사람들은 자신의 계보를 끝도 없이줄줄 외운다. 입양아, 난민 출신자, 노예의 후손은 생물학적 혈연에 대한 호기심에 평생 동안 괴로워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낯선 사람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과 같은 집단 구성원에 대한 연대감은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오래된 건 마음만이 아니다. 나의 몸도 구석기 시대 증후군이 역력하다. 몸이 영양분을 축적하고 소비하는 방식이 그 증거다. 구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체내 에너지 관리 방식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비만은그 오래된 시스템의 극단적인 증거다. 비만은 구석기 시대가 남긴 ‘적구석기 몸에서폐‘다. 진화생물학자 롭 브룩스의 《매일 매일의 진화생물학》에는 내구석기 몸의 작동 방식이 나와 있다. 그에 따르면, 자연선택은 동물마다 잉여 에너지 처리 방식을 달리 만들었다. 쥐는 비만이 없다. 살쪄서움직임이 둔해지는 순간 천적인 고양이 밥이 되기 때문이다. 쥐는 남는 에너지의 90퍼센트 정도를 열로 발산하거나 몸을 더 많이 움직여강제로 소모한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이게 25퍼센트밖에 안 된다. 쥐와 달리 인간은 에너지를 몸에 쌓아놓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굶주릴때를 대비하여 여유분 에너지는 재빠르게 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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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톰슨가젤이 경쟁한다고 보는 게 ‘집단선택‘이다. 두 집단이 살아남기 위해 경쟁한다는 생각이다. 반면 개체 선택‘은 사자는 사자와, 톰슨가젤은 다른 톰슨가젤과 경쟁한다는 생각이다. TV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이 자주 보여주는 것은 사자와 톰슨가젤의 경쟁이다. 사자와 톰슨가젤이 경쟁하는 것일까? 이렇게 본다면 생존경쟁의본질을 놓친 것이다. 경쟁은 톰슨가젤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톰슨가젤에게 중요한 것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른 톰슨가젤보다 빨리 달아날 수 있느냐이다. 사자보다 주력이 좋을 필요는 없다. 다른 톰슨가젤보다 빨리 달아날 수 있으면 사자는 자신에게 달려들지 않는다. 우리가 다니는 직장에서의 경쟁도 비슷하다. 경쟁은 선후배간에 벌어지는게 아니라, 입사 동기들간에 벌어진다. 이렇게 개체끼리의 경쟁으로 보는 게 개체선택론‘이다.
‘유전자선택론‘은 개체 안에 있는 유전자에 주목한다. 톰슨가젤이라는 군체population의 유전자 풀 gene pool에서 한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보다 개체를 빨리 달리게 만들면, 그 유전자는 유전자 풀에서 살아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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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머메쉬는 부의 증가와 더불어 일반적으로 시간 부족의 고통도 늘어난다고 확인했다. 물론 근무와 가사에 들어가는 시간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아무래도 벌이가 늘어날수록 시간은 귀해지는 모양이라고 해머메쉬는 썼다. "사람들이 갈수록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불평은 부분적으로 볼 때 쓸 수 있는 시간에 비해 너무많은 돈을 가졌기 때문에 비롯되는 현상이다." 수입의 증가와 더불어갖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것을 충족시킬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사람들은 시간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이다. "이런 불평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여피족(도시에 사는 젊고 세련된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 옮긴이)의 배부른 푸념쯤으로 폄하할지 하는 것은 태도에 달린 문제이다." 해머메쉬의 신랄한 지적이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탐한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기존의 것을 얕잡아보는 성향도 있다. 새로운 사치가 아무리 흥분이 될지라도, 일단 성공으로 마감한 도전이 주는 감격이 어마어마할지라도...그 어떤 행복이든 우리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심드렁해진다. 우리의 상태를 끊임없이 새롭게 바꾸어가는것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 허리에 천 쪼가리나 두르고 한 줌의 쌀로하루를 연명하는 금욕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항상 "더 많이"를 외치는 치명적인 주장을 꿰뚫어보고 다양한 조건을내건 사회의 기만적인 자유 약속에 기대지 않는 게 많은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새겨두자. 우리 인간은 항상 새로운 욕구를 찾아나서는존재인 까닭에 이 새로움의 지배에 완전히 압도당하는 일만큼은 없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바로 그래서 휴식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도 있으리라. 우리의 욕심(자발적인 것이든 설득당한 것이든)의 꽁무니를 끊임없이 쫓아다니기만 할 게 아니라, 때로는 멈추어 서서 순간의 행복을즐길 줄도 알아야만 하는 게 휴식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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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이탈리아의 심리학자들이 티롤 남부 지방 산촌 농민들의생활 습관을 연구하고 놀라운 발견을 했다. 농부들을 상대로 일과 여가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고 묻자 거기에 무슨 차이가 있냐는답이 돌아온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농부들은 해야 할 일을 할 따름이었다. 젖소의 젖을 짰으며, 밭의 잡초를 뽑아 주었고, 사이사이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저녁이면 아코디언 연주를 즐겼다. 뭐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고 무엇이 놀이인지 구분하지 않았다.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된다면 무엇을하고 싶으냐는 물음에 산골 사람들은 "지금처럼 똑같이!" 하고 대답했다. 우유를 짜고 풀을 베며 옛날이야기와 음악을 즐기겠노라는 한가로운 표정으로 말이다.

"시간 부족이라는 느낌은 시간과는 별 관계가 없으며, 어떤 태도와 관점을 갖느냐에 달린 것이다. 과학 전문 기자 슈테판 클라인stefanklein이 자신의 책 《시간zeit)에서 한 말이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신의 삶이 어떤 조건을 가져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게 분명하다. 자신이 무얼 해야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은 그만큼 덜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며, 더욱 건강했다. 얼마나 많은 일을 어느 정도 시간 안에 처리해야 좋은지하는 물음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업무량의 정도보다는 스스로결정할 수 없다는 게 더욱 우리를 힘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근심 걱정에 시달리며 위궤양을 앓는 사람은 항상 바쁜 경영자가 아니라, 쉬지도 않고 이러저런 지시를 해대는 상관에게 시달림을 받는 부하 직원이었다.

자신의 성공 비결을 털어놓으며 산장 주인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등산로를 보세요." 그가 말문을 열며 계곡 아래로 이어지는돌투성이의 길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차를 타고 산장으로 오게 만들려면 벌써 포장을 했겠지요!" 그러나 그랬다면 산장의 마법은 씻은듯 사라졌으리라. "내 집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면 두 시간의 산행은피할 수가 없소. 대기업 총수가 두 시간 동안 땀을 흘리면, 이곳이 낙원처럼 보일 것이고 와인 한 모금 한 모금이 시구절과 같을 거요."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산장 주인에게서 그동안 까맣게 잊었던 여유로움을 되찾고 배고픔과 갈증을 진정으로 해소하는 느낌을 갖는것이다. 바로 그래서 산장 주인의 지인들은 거듭 이곳을 찾는다. "만약 내가 길을 닦아 놓았더라면, 내 치즈 맛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을것이며 내 와인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불평을 해댔겠죠

그러나 우리 가운데 매 식사 전에 두 시간에 걸친 산행을 해야만한다거나 해도 좋은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다. 흐트러지지 않는 주의력을 발휘하는 기술은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이를 위해필요한 것은 오직 사고방식의 철저한 전환이다. 항상 더 많이 하고 욕심을 내는 대신, 행복이란 무릇 바로 이 절제 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 정말 제대로 맛볼 수 있는가 하는문제는 그 맛봄의 대상에 달린 게 아니다. 오히려 온전히 그것에 집중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좌우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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