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청 자는 귀 이, 임금 왕, 열 십, 눈 목, 한 일 , 마음 심으로구성되어 있다. 어진 임금의 가장 큰 덕목은 큰 귀와 밝은 눈으로 신하들의 말과 몸짓을 잘 듣고 살펴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데 있다는 의미다. 이 덕목을 가장 잘 실천한 임금이 세종이었다.
취임 후 세종의 첫일성은 "과인이 이르노니"가 아니라
"경들의 말을 듣겠다" 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더가 무위해야
일을 맡은 사람이 책임감을 느낀다".
- 장자 ‘천도’ 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팀장 세종은 시간 관리에도 능했다. 시간은 임금인 세종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것이라 생각해 촌음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천년의 세월도 일각의 어긋남 없음에서 비롯되고,
모든 공적의 빛남은 촌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 재위 16년 7월 1일의 《세종실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부 신하들이 세종에게 인사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하니 인사 담당자에 이인하지 말고 직접 챙겨야 한다고 건의하자 허조는 이렇게 말한다.
"일을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고,
의심이 가면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저하께서 대신을 선택해 육조의 수장으로 삼으신 이상 책임을 지워 성취 하도록 하는 게 마땅하며, 몸소 자잘한 일에 관여해 신하의 할 일까지 하시려고 해서는 아니 됩니다."
세종은 허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무위의 리더십을 선택한 세종은 조선왕조 최고의 군주로 남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마의 전설적인 제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가 혈연 중심 사회를 기능 중심 사회로 바꾸기 위해 ‘파기‘라는 공동체를 설립하면서 로마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로마는 파기를 통해 거주민을 목수조합,천공조합, 염색공조합 등 직업에 따라 분류했고, 출신 지역이 달라도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협력해 다른 직종의 사람들에게 공동으로 대응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했다. 다시 말해 씨족과 민족 이외의 새로운 결속체를 제시함으로써 부족 간 대립을 완화한 것이다. 파기가 효과를 발휘하면서 부족이나 씨족 간 갈등은 완화되었고, 결과적으로 조합간의 경쟁만 남게 되었다.
내적 갈등이 줄어들자 로마는 급속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개방성이높아지면 성과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로마 지도자들은 자신들이정복한 부족에게도 개방성을 정책 기조로 제시했다. 로마인은 정복한 부족을 죽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해당 부족의 권력자에게 원로원 의석까지 제공하면서 로마 지배 계층으로 끌어들였다.
이런 방식이 새로운 부족민의 역량, 즉 외부적 역량을 내부화하는 길이며, 새로 편입된 부족민 과 공존하며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