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전설적인 제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가 혈연 중심 사회를 기능 중심 사회로 바꾸기 위해 ‘파기‘라는 공동체를 설립하면서 로마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로마는 파기를 통해 거주민을 목수조합,천공조합, 염색공조합 등 직업에 따라 분류했고, 출신 지역이 달라도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협력해 다른 직종의 사람들에게 공동으로 대응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했다. 다시 말해 씨족과 민족 이외의 새로운 결속체를 제시함으로써 부족 간 대립을 완화한 것이다. 파기가 효과를 발휘하면서 부족이나 씨족 간 갈등은 완화되었고, 결과적으로 조합간의 경쟁만 남게 되었다.
내적 갈등이 줄어들자 로마는 급속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개방성이높아지면 성과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로마 지도자들은 자신들이정복한 부족에게도 개방성을 정책 기조로 제시했다. 로마인은 정복한 부족을 죽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해당 부족의 권력자에게 원로원 의석까지 제공하면서 로마 지배 계층으로 끌어들였다.
이런 방식이 새로운 부족민의 역량, 즉 외부적 역량을 내부화하는 길이며, 새로 편입된 부족민 과 공존하며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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