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아델에게 머무는 엠마의 시선과 미소 속에 호기심의 감정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단 아델은 엠마보다 더 어렸고, 동성애자들이 드나드는 클럽에서의 기본적인 매너도 전혀 몰랐다. 그러나 클럽에 들어선 이 낯선 존재, 그곳에 늘 자리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아델의 모습이 엠마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된다.
이 만남에서 주목할 점은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미지의 낯선 사람에게서 이상하리만큼 친근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그런 순간이 아니라, 자기와 완전히 다른 사람을 향해 다가가려는 욕망을 품는 순간이다. 비록 그 ‘다름’이 친근하게 느껴지지는 않을지라도 말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가깝고 편하게 느껴지는 존재들 뿐 아니라 낯설고 생소한 존재들에게도 매혹을 느낀다.

나는 내 시선과 다른 관점을 지닌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 사르트르는 타자성이 몰고 오는 이 괴로운 경험을 규정하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 "타인이 나의 세계를 훔친다." 이 경험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관점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보는 자신의 시각이 계속 바뀌는 상황이 반드시 뒤따른다. 타자성에 대한 이런 발견은 하나의 만남이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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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냈던 이 시간의 한복판에서, 프란체스카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만남의 핵심을 표현한다. 이 말은 나흘 내내그녀를 따라다녔던 감정적인 동요를 연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더 이상 내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오늘 이 순간만큼 진정한내 자신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프란체스카와 로버트는 곧 사랑에 빠지고 자기들의 존재를 바꾸게 될 열정을 경험한다. 나흘이라는 시간 동안두 사람은 마치 인생 전체를 요약한 것 같은 정열적인 시간을 보낸다. 그럼에도 프란체스카는 가슴을 에는 듯한 괴로운 망설임 끝에 가정을 버리지 않기로, 로버트를 혼자떠나보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공유했던 모든것들은 평생 그녀의 기억 속을 떠나지 않는다. 농가에서로버트와 함께 보냈던 모든 ‘자잘한 추억들‘의 시간은 매일매일 그녀의 삶을 보듬어주는 자양분이 된다. 프란체스카가 마치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는 그 감정은 그녀가 아이오와주에 정착하게 되면서 뒤로 훌쩍 밀어놓았던 젊은시절의 꿈과 같은 연애 감정이었다.

르네 샤르는 자신의 저서 『모여있는 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우리가 공동의 세계 밖에서 무엇인가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엄청난 배고픔까지 감수한 상태로, 자신의 바깥에서 자신의 존재를 정립해야 한다. 더욱이 그것은 우리만을 위한 행동이다." 이 문장은 만남이 가져다주는 동요를 아름답게 정의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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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폴 비릴리오는 비행기의 발명은 추락의 발명이며 선박의 발명은 난파의 발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인생의 발명은 고단함의 발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행기나 선박의 운행에서 사고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듯, 삶의 운행에서 고단함의 제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삶이 고단하다는 것은상당 부분 동어 반복이다. 산다는 것은 고단함을 집요하게 견디는일이다.

나는 삶이나 정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혼한배우자와 다시 결합하기로 결심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인생이고단하고 허망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살아내기로 결심한다. 어떤 사람은 정치의 세계가 협잡과 음모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거의 유혹을 떨치고 정치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들의 인생이나 정치는 그러한 자각이 없는 인생이나 정치와는 다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그냥 사는 인생이나 마냥 권력을 쥐려는 정치가 아니라 반성된 삶과 숙고된 정치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정치적 동물의 길은 바로 그러한 삶과 정치에로 초청하는 작은 손짓이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의 문제이며, 정치는 그에 대한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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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을까? 아흔아홉 마리가 한마리보다 귀한 것 같지? 경중이 다를 것 같지? 아니야. 아흔아홉 마리도 다 한 마리씩이야."
"선생님! 아흔아홉 마리 양을 두고 길 잃은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예수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옵니까? 우리가 숫자의 논리에 현혹되어 있다는 말씀인가요?"
"이보게!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면 다른 아흔아홉 마리도 길을잃을 수 있어. 왜 그 생각을 못 하나? 길 잃은 한 마리가 아흔아홉마리와 다른 게 아니야. 똑같아. 똑같다.. 어려운 얘기가 아니야.
한 명의 죽음은 모두의 죽음을 예표하는 거야."

"맞습니다. 빈자들은 늘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에 이웃의 부탁을 선선하게 들어주는 한편, 부자들은 타인의 도움이 필요 없기에 이웃을 신뢰하지도 부탁을 들어주지도 않는다고, 데이비드 데스테노David DeSteno라는 사회심리학자가 그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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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의 손자인 아룬 간디Arun Gandhi는 자신의 주목할 만한 저서인 「분노 수업에서 자신의 할아버지가 치미는 분노를 생산적 에너지로 바꾸는 법을 자신에게 어떻게 가르쳤는지를 밝혔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분노를 전기와 비교합니다. "전기가 통제되지 않고 제멋대로 나오면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나 정해진 선을 따라 유도되어 나오는 전기는 빛을 만들고, 열기를만들어 낸다. 건강한 분노도 이와 같습니다. 건강한 분노는 인간에게 행동을 유발하고, 세상에서 삶의 여정에 중요한 변화를 도모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저 분노를 억제하기 위해 우리의 힘을 소모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분노를 건강하게 사용하도록 가르치는 데 더 많은 힘을 써야 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살아 있는 것은 물결을 타고 흘러가지 않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네. 관찰해보면 알아. 하늘을 나는 새를 보게나. 바람방향으로 가는지 역풍을 타고 가는지. 죽은 물고기는 배 내밀고 떠밀려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작은 송사리도 위로 올라간다네.
잉어가 용문 협곡으로 거슬러 올라가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지.
그게 등용문이야. 폭포수로 올라가지 않아도 모든 것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원하는 데로 가지. 떠내려간다면 사는 게 아니야.
우리가 이 문명사회에서 그냥 떠밀려갈 것인지, 아니면 힘들어도 역류하면서 가고자 하는 물줄기를 찾을 것인지…… 고민해야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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