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야학은 제가 초·중·고등학교, 대학까지 다 합쳐서 12년간 배운 모든 것을 다 제로로 만드는 학교였어요. 여기에서는 누군가를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다 쓸모없어졌고, 국어,영어, 수학, 사회 다 필요 없고, 교육은 너무나 할 게 많은 거예요. 이 학생이 야학에 오게 만드는 것. 그러려면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이 바뀌어야 되고요. 그래서 투쟁도 해야 하고요. 학생의 자신감이 많이 위축되어있는데, 그 자신감도 함께 끌어올려야 하고요.

왜냐하면 20년, 30년을 다 집 안에만 있었고 집에서도 자기 혼자니까 장애인은 장애인을 알 것 같지만 장애인도 장애인을 만나본적이 없어요. TV에 나오는 장애인은 다 불쌍하거나 아주 뛰어난 사람밖에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장애인은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는구나 생각하고 살던 사람들이 여러 가지 우연이 겹쳐서 노들야학까지오는 거예요.
14일단 오면 자기 탓이 아니라는 걸 빠르게 공감해요. 우리는 권리가 있고 나가서 싸울 수 있다. 집에서도 주눅 들어 있던 사람들이밖에 나가서, 광장에 나가서 자기 몸을 펼쳐 보이고 세상을 향해서외치는 순간, 자신감이 아주 빠르게 회복이 돼요.

노들 생활을 말할 때 그가 술만큼 자주 언급하는 단어가 ‘저항‘
이다. "노들은 차별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저항하는 사람들"임을 강조한다. 흔히 노들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그 노들은 차별받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그렇기만 한 게 아니라저항하는 사람들이라고.

"차별받는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은 너무 다른데, 사람들이 당연한 인과관계로 생각해요. 차별받으면 누구나 저항하는 것처럼요.오히려 반대죠. 차별받으면 저항할 수 없게 돼요. 저는 노들을 그만두고 나서 알게 됐어요. 내가 노들에서 십몇 년간 한 모든 것이 차별을 저항으로 만드는 일이었구나. 차별과 저항이 얼마나 멀고 이어지기 어려운지 알았죠. 그게 얼마나 어렵냐면 내 청춘이 거기 다 들어간 거예요, 우리의 청춘이.

"화상 경험자 정인숙 님이 화상 입고 새 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하거든요. 그분의 인생을 들어보면 정말로그래요. 처음 걸음마를 하고 처음 꽃을 만져보고 처음 친구를 만들고 이런 과정을 다시 밟는 것 같은, 눈부신 게 있거든요. 저는 불안이나 공포가 큰 편인데, 제가 인터뷰하는 사람들이 어쨌든 한번 인생의 큰 경험들을 하신 거잖아요. 시련들을 먼저 겪었고요. 회복하는 데 5년이 들고 20년이 들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살 수 있어, 그게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그렇게 생각하면 저도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천성이 착해서가 아니라 질문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나는 왜 아빠를 신경 쓰지? 아빠가 이렇게 된 게 정말 아빠만의 책임일까? 우리는 희생이나 배제 없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 답을 구하기 위해 온갖 책을 팠고 차츰 아버지를 혈연 넘어 한사람의 사회적 신체적 약자로 보는 눈을 얻었다. 인생의 짐이 곧 힘이 되고, 가족관계가 시민관계로 확장되는 돌봄의 의미, 그 치열한사회적 탐색의 결과물이 한 권의 책이 됐다.

그는 얼마 전 서울대 의과대학 4학년들이 듣는 ‘의료 접근성과사람 중심성‘이라는 수업에 초대됐다. 차상위계층이 의료급여를 받는 과정에서 겪은 사례를 말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기회를 가졌다. "언제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겪었지만 이야기되지 않는경험"이 곳곳에서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달려드는 저 태양은 피를 말리고/ 모래알처럼 흩어진 눈물의 기도들/ 우 위로해주는 사람 어디 있나/ 예 위로해주는 신은 어디있나/ 이곳에서 축복이란 오래 참는 마음이겠지 (・・・) 깊어가는아버지의 한숨/ 이뤄질 수 없는 것들의 삶이여(이승열, <너의 이름〉)

영화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영화 <가버나움>의 감독 나딘 라바키는 말했다. 좋은 영화는 현실을 바꾸진 못해도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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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는 시간은 선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삶은 선 위의 하나의 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원인과 결과의 연쇄 고리가 가득한 세상에서, 혹은 이루어야 할 목표, 해결해야 할 문제가 가득한 세상에서 이 생각이 낯선 것일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 순환적인 시간관 안에서 우리의 자리는 선 위의 점이 아니라 원의 중심이다. 그러나 실수하지는 말자. 이 말은 자아를 매사의 중심에 두라는 말이 아니다. 무엇인가가 우리를 둥글게 에워싸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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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면서 몇 번쯤이고 자문하는 앞서의 질문들은 사실상 ‘감정‘에 대한 물음이다. "네 마음이 어때?"라는 질문보다
"네 감정이 어때?"라고 묻는다면 희미하게나마 가닥을 잡는다.
그러나 쉽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당연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감정‘을 깊숙이 파묻고 ‘이성‘이라는 널빤지로 못을 쳐놓고 살았다.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버려야 한다고까지 세뇌 받았다. 감정은 숨기고 다스리고 제어해야 할 작은 악마 같은 취급을 받았다.

이러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자기 삶의 나침반이다.
자신의 감정을 ‘좋다‘, ‘싫다‘, ‘나쁘다‘ 정도로 뭉뚱그리지 않고기쁨, 슬픔, 분노, 증오, 불안, 기대, 신뢰, 놀람 등으로 구별하고그에 알맞은 어휘를 붙여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후련해진다. 나아가 나침반이 되어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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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그림을 갖고 산다. 그 그림들은 어제의 회고이거나, 오늘의 일기이거나, 내일의 희망이거나, 먼 미래의 꿈이다. 산다는 건 수많은 그림들을 차곡차곡 마음에 남기는 일이다. 런던에서 보낸 하루하루는 이제 내게 그림이 되었다. 그리고 벌써 그날의 그림들이 무척 그립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그리운 마음이 새로운 오늘을 떠받치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벌써 그리워졌거나 언젠가는 그리워질 나날들을 자신도 모르게 그림처럼 그려서 마음속에 고이 간직한채 새로운 하루를 살고 있을 누군가가 이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비슷한 그림들을 품고 산다면, 그 마음들이 이어져 서로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화가의 그림들과 수줍게 써내려간 나의 글들을 전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보는 것도 모두 내 전공은 아니다. 하지만 그림 보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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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경제적·사회적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는 것만으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인식하는 것만큼 상황이 어둡고 힘들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스코세이지 감독은영화 속 예수의 모습에 대해 "예수는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수동적인 존재"라고 말했다. 예수가 영화 속에서 그랬던것처럼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는 사고를 멈출 때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삶을 능동적으로 바라보고, 힘들고 불편한 상황일지라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한 경범죄로 끝나지 않았다. 흑인들은그녀의 석방을 요구하며 들고일어났다. 미국 전역으로 들불처럼번진 이러한 움직임은 흑인 인권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흑백분리법 역시 1년 뒤 폐지되었다.
이 사건은 법을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법을 어기는 것도 상황에 따라서는 옳은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법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때론 무고한 사람이 아닌, 살인자를 보호하는 법을 지키는 것이 이치에 맞을 수도 있다. 또한 차별적인법들, 이를테면 젠더 이슈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거나 전쟁·폭력에 반대해 병역을 거부하고 평화적인 복무 선택권을 주장하며 법에 대항하며 싸우는 행동이 옳은 일일 수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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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의 숟가락에 관한 우화는 너무도 명확하게 삶의진실을 짚어준다. 인생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 천국과 지옥은 같은 곳이라는 점.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 세상의 어둡고 부정적인 것만 확인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사람은 지옥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곳 같은 자리에 있는 누군가는 천국을 누리고 있다. 인식을 바꾸고 깨달은 사람에겐 지옥도 천국이 된다.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 중 <법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이런말을 썼다.
내가 그들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다만 그들도 햇빛 아래 서 있지만 태양을 등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뿐그들은 오직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그 그림자를 자신의 법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인 것을.
그렇다면 그들에게 태양이란 그림자를 던져주는 것 외에 무엇인가?
이 글에서 태양은 마주 보는 자에게 따뜻한 빛을 주지만 등진자에게는 그늘만 드리우는 존재다.

나의 스승인 혜원 스님은 예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셨다. 인간들이 막 걷기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다. 인간은 자신들이 걸어야 할 대지가 날카로운 가시와 돌로 덮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걷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신발을 만들어신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의 모든 땅을 부드러운 가죽으로뒤덮는 것이었다. 신발을 신는 것은 발에 신발을 착용해야 하는변화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두 번째 방법은 아무런 변화 없이 원래대로 걸어다니면 되었다. 스승님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끝마쳤다.
"이 세상 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 세계가 가죽으로 뒤덮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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