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퇴임했던 그다음 날부터 똑같이여기 도서관에 나오고 그랬죠. (웃음) 저에게는 요즘도 그냥교수 생활의 연장이랄까, 그런 기분이에요. 제 주위 분들은저에게 "이제 좀 쉴 때도 되지 않으셨나." "이제 슬슬 정리하셔야죠." 같은 말씀을 하시는데, 잘 모르겠어요. 일단 지금은 제가 평생 살아오던 것과 똑같이 생활을 해나가려 해요.
젊었을 적처럼 힘이 넘치거나 속도가 빠르진 않더라도, 계속열심히 읽고, 또 쓰고, 변함없이 해오던 것을 천천히 이어가며, 그렇게 노년의 삶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글쎄요. 막상 서점에 가면 딱히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렇게 새롭고 다양한 책들이 많다는 건 늘즐겁고 흥분되는 일이니까요. 그 시간은, 저에게는 마치 하루하루 변화무쌍한 날씨를 보는 것과 같이 느껴지거든요.
지금도 서점에 가서 이리저리 거닐다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가곤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도 몇 시간을 서서 책을봤는데 그다지 힘들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책을 둘러보는 것은 매일의 날씨를 대하는 것과 같다. 멋진 말씀인데요. 대충 봐선 밋밋하고 새로울 것도 없는 듯하지만, 세심하게 집중해 보면 굉장히 멋진 것들이 숨겨져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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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건물 내부는 비워져 있다. 전체로 보면 가운데를 비우고 주변의 테두리를 매장으로 채운 직육면체가 되는 셈이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격언을 누가 모를까. 알지만 꾹꾹 채워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게 우리네 삶이다. 그런데 스타필드는 돈이 되는 매장 수를늘리는 대신 시선의 여유를 위해 비워 두는 선택을 했다. 비워진 공간의 주변에 매장의 쇼윈도가 들어서 있다.
통로를 이어 기나긴 길이 만들어졌고, 좌우를 연결하니자연스럽게 순환로가 되었다. 진열된 상품과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걷는 일이 즐거워진다. 이동하기 위해 걷는 게 아니란 점이 중요하다.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앞쪽의 시선과비워져 보이는 위아래 층의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위층에 있으면 아래층의 브랜드숍 간판이 보인다. 아래층에선 위층의 디스플레이가 눈에 띈다. 교차의 시선은 발견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스타필드의 공간 기획자는 우리의 주거 환경이 서로르어떻게 단절시키는지 정확하게 읽었다. 인간의 마음을 헤이리지 못하는 공간은 형태를 걷어 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 안에 들어서면 좀 더 느리게 행동해도, 하릴 없이 머물러도 괜찮을 것 같다. 시간과 공간의 압축이 미덕인 시대에 조금 느슨해지고 여유의 시간을 보내길 바라고 있는지도모른다. 따뜻한 느낌과 긴밀함을 강조하기 위해 조명의 밝기와 색 온도까지 고려한 분위기로 실내를 채웠다. 활기 넘치는 공간의 곳곳에 몸과 마음을 쉬게 할 카페가 많다. 물건을사러 왔지만 얼굴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더느끼게 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장소가 생겼을 뿐인데 그 안에선 생각보다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같은 값이면 더 좋고 아름다운 걸 갖고 싶고, 보고 싶은욕구가 커지는 건 당연하다. 인터넷에서 비롯된 정보 격차의줄어듦이 준 혜택이다. 스마트폰으로 그 격차는 더욱 줄어들어 같은 내용을 모두 알게 된다. 감정과 체험마저 공유되는시대다. 게다가 해외여행의 경험이 늘면서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 멋진 건축과 아름다움이 배어나는 공간에 머물며 생기는 충족감을 경험했다. 멋진 장소의 기대를 스타필드가 앞서 제시하고 체험하게 해 주었다.
더 멀리 보고 느리게 걷게 만들어 머무르게 한 장치의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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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러사이트 서교에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 서로의 말소리도 높지 않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누가 뭐라 하지 않는 침묵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된다. 이장소가 만들어 내는 힘 때문이다. 오래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창 밖에 보이는 풍경이 계속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댓진 공간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숨과 자세를 고르게 하고 스스로 정화되는 안정의 힘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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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내게 커피의 맛에서 그커피를 ‘어디‘에서 마시느냐로 바뀐 관심의 현장을 보여 주고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곳의 독특함과 분위기를 함께 공감했다.
기존 카페와 전혀 다른 접근의 파격은 상호에도 들어 있다. 앤트러사이트(Anthracite)는 탄소 함유량이 높은 석탄인무연탄을 뜻한다. 예전에 연탄의 재료로 쓰였던 석탄은 검은색의 단단한 돌덩이로, 태백 삼척에서 많이 나던 광물이다.
석탄이 다 똑같은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 이곳저곳을 다녀보니 성분과 탄화 정도에 따라 색과 경도가 다르고, 타는 냄새와 화력에 따라 종류도 여러 가지라는 걸 알았다. 앤트러사이트-무연탄은 품질이 좋은 우리나라의 산물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석탄은 당연히 무연탄뿐이다. 앤트러사이트란카페 이름은 중의적이다. 우리의 기억이기도 하고, 검은색광택이 로스팅된 커피와 겹치기도 하며, 공장의 에너지원이기도 했다. 주인장의 인문학적 감각을 읽을 수 있는 작명은묘한 여운으로 공간의 특징을 드러낸다.

연립주택과 아파트로 둘러싸인 낡은 공장 터의 분위기는 지금도 똑같다. 붙여 놓은 간판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출입문이 화장실 입구와 헛갈리는 이유다. 쇠로 붙여 놓은 앤트러사이트라는 글자는 그동안 녹슬어 원래 그 자리에 붙어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이곳에서 직접 볶는 커피의향은 여전히 풍부하다. 커피 집의 기본인 커피 맛도 훌륭하다. 공간의 분위기만으로 사람을 끌어모으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에서 낡은 공장을 개조한 카페의 원조라 할 ‘앤트러사이트 합정‘이다. 앤트러사이트는 합정점을 성공적으로 개점한 이후 2014년에 제주 한림에 두 번째 카페를 냈다.
지은 지 70년이 다 되어 가는 전분 공장을 개조하였다는데,
나는 아직 가 보지 못했다. 장소의 흔적과 시간의 의미를 지우지 않는 기본 콘셉트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앤트러사이트를 앤트러사이트로 부르지 못한다.
나는 한번 마음에 든 장소를 쉽게 바꾸지 않고 애용한다. 좋은 물건을 찾아낸 이후 애정을 더해 오래 사용하는 심성과도 통한다. 만든 이의 메시지를 읽어 내고 사용자의 용법이 더해져 시대의 흔적으로 남는 즐거움의 순환이다. 서로 필(Feel)이 통하는 공간 디자인도 비슷한 데가 있다.

새것이 아닌 헌것의 존재감이 이토록 짙을 줄 몰랐다. 배장도 요란하지 않다. 필요 최소한의 면적과 두께로 마무리된간결함이 보인다. 세련된 건물에 놓인 작고 간결한 디자인의나무 의자는 균형과 조화를 드러내는 중이다.
앤트러사이트 서교에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 서로의 말소리도 높지 않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누가 뭐라 하지 않는 침묵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된다. 이장소가 만들어 내는 힘 때문이다. 오래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창 밖에 보이는 풍경이 계속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멋진 공간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숨과 자세를 고르게 하고 스스로 정화되는 안정의 힘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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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정서적 반응이달라진다. 크다, 넓다와 같은 눈에 보이는 요소만작용하는 게 아니다. 세월의 흔적, 칠해진 페인트의색깔, 빛의 느낌, 요소요소에 심어진 풀과 나무,공간을 채운 냄새까지 영향을 준다. 감각은구체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그 차이를 확연히드러낸다. 경험의 장소와 공간의 분위기가 곧감각의 수용을 이끄는 요인이 된다.
무엇이 아름다움인지,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아는취향은 자신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린 경험에서나온다. 그 경험을 이끄는 바탕은 교양(敎養)이다.

공공시설에서 마주치는 디자인의 수준이 곧 그 사회의 품격을 드러낸다. 도시 구성원들의 심미안이 구체화된 표현인 까닭이다. 세련된 디자인을 수용하고 사용하며 반복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미의식은 당연히 높아지게 마련이다. 짧지만 강렬하게 아름다움을 감각할 수 있는 장소가 전철이다.
멋진 전철을 갖고 있다는 건 결국 도시와 시민의 교양이 높다는 걸 뜻하는 것이다.

매일 보고 이용하는 전철이 친근하고 아름답게 다가와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도시 생활의 시작과 끝은 집에서 떠나 다시 돌아오는 일의 반복이다. 일상이 곧 우리의 삶이다. 삶이 메마르고 지루하지 않도록 즐거움과 아름다움을느끼게 해 줘야 한다. 느껴지지 않는 감각이란 별 소용이 없다.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쾌감으로 다가와야 한다. 아름다움이란 형태를 보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체험해야 제 것이 된다. 전철이 아름답다면 하루의 즐거움 또한 커지게 마련이다.

녹사평역에선 지하철만 타고 내리지 않는다.
지하 4층에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지하 건물의 밑바닥에서 식물이 자란다. 빛이 닿아 생기는 일이다. 숲을 이룰 정로 무성한 식물을 보면 마음까지 안정된다. 녹색의 싱그러움또한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감흥이 전혀 달라질 수 있음을알게 된다.
아름다움이란 결국 그 자리에 있어야만 느끼게되는 감정이다. 지하철역이 카페보다 더 멋진 공간을 연출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일상의 관성을 벗고 잠시 멈추는 여유를 제안한다.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아 쾌적한 휴식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녹사평역에선 지하철만 타고 내리지않는다.
녹사평역은 2000년에 개통된 이래 지금까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역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몇 년전의 녹사평역을 기억하고 있다면 달라진 실내의 모습에 당황할지 모른다. 최근에 정원이 있는 미술관을 표방하며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있다. 역 구내 전체가 미술작품 전시장처럼활용된다. 벽의 타일로 형태와 색채를 보여 주거나 모니터에서 비디오 작업이 펼쳐진다. 개표구 뒤편을 가득 메운 나무더미는 자연을 상징하는 설치 작업이다. 천장에 손으로 짠그물을 이어 능선이 중첩된 숲처럼 보이는 설치 미술이 있다. 의외의 공간에서 만나는 미술품은 신선하다. 공공미술은 은연중에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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