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가 내게 커피의 맛에서 그커피를 ‘어디‘에서 마시느냐로 바뀐 관심의 현장을 보여 주고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곳의 독특함과 분위기를 함께 공감했다.
기존 카페와 전혀 다른 접근의 파격은 상호에도 들어 있다. 앤트러사이트(Anthracite)는 탄소 함유량이 높은 석탄인무연탄을 뜻한다. 예전에 연탄의 재료로 쓰였던 석탄은 검은색의 단단한 돌덩이로, 태백 삼척에서 많이 나던 광물이다.
석탄이 다 똑같은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 이곳저곳을 다녀보니 성분과 탄화 정도에 따라 색과 경도가 다르고, 타는 냄새와 화력에 따라 종류도 여러 가지라는 걸 알았다. 앤트러사이트-무연탄은 품질이 좋은 우리나라의 산물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석탄은 당연히 무연탄뿐이다. 앤트러사이트란카페 이름은 중의적이다. 우리의 기억이기도 하고, 검은색광택이 로스팅된 커피와 겹치기도 하며, 공장의 에너지원이기도 했다. 주인장의 인문학적 감각을 읽을 수 있는 작명은묘한 여운으로 공간의 특징을 드러낸다.

연립주택과 아파트로 둘러싸인 낡은 공장 터의 분위기는 지금도 똑같다. 붙여 놓은 간판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출입문이 화장실 입구와 헛갈리는 이유다. 쇠로 붙여 놓은 앤트러사이트라는 글자는 그동안 녹슬어 원래 그 자리에 붙어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이곳에서 직접 볶는 커피의향은 여전히 풍부하다. 커피 집의 기본인 커피 맛도 훌륭하다. 공간의 분위기만으로 사람을 끌어모으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에서 낡은 공장을 개조한 카페의 원조라 할 ‘앤트러사이트 합정‘이다. 앤트러사이트는 합정점을 성공적으로 개점한 이후 2014년에 제주 한림에 두 번째 카페를 냈다.
지은 지 70년이 다 되어 가는 전분 공장을 개조하였다는데,
나는 아직 가 보지 못했다. 장소의 흔적과 시간의 의미를 지우지 않는 기본 콘셉트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앤트러사이트를 앤트러사이트로 부르지 못한다.
나는 한번 마음에 든 장소를 쉽게 바꾸지 않고 애용한다. 좋은 물건을 찾아낸 이후 애정을 더해 오래 사용하는 심성과도 통한다. 만든 이의 메시지를 읽어 내고 사용자의 용법이 더해져 시대의 흔적으로 남는 즐거움의 순환이다. 서로 필(Feel)이 통하는 공간 디자인도 비슷한 데가 있다.

새것이 아닌 헌것의 존재감이 이토록 짙을 줄 몰랐다. 배장도 요란하지 않다. 필요 최소한의 면적과 두께로 마무리된간결함이 보인다. 세련된 건물에 놓인 작고 간결한 디자인의나무 의자는 균형과 조화를 드러내는 중이다.
앤트러사이트 서교에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 서로의 말소리도 높지 않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누가 뭐라 하지 않는 침묵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된다. 이장소가 만들어 내는 힘 때문이다. 오래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창 밖에 보이는 풍경이 계속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멋진 공간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숨과 자세를 고르게 하고 스스로 정화되는 안정의 힘으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