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정서적 반응이달라진다. 크다, 넓다와 같은 눈에 보이는 요소만작용하는 게 아니다. 세월의 흔적, 칠해진 페인트의색깔, 빛의 느낌, 요소요소에 심어진 풀과 나무,공간을 채운 냄새까지 영향을 준다. 감각은구체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그 차이를 확연히드러낸다. 경험의 장소와 공간의 분위기가 곧감각의 수용을 이끄는 요인이 된다.
무엇이 아름다움인지,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아는취향은 자신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린 경험에서나온다. 그 경험을 이끄는 바탕은 교양(敎養)이다.

공공시설에서 마주치는 디자인의 수준이 곧 그 사회의 품격을 드러낸다. 도시 구성원들의 심미안이 구체화된 표현인 까닭이다. 세련된 디자인을 수용하고 사용하며 반복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미의식은 당연히 높아지게 마련이다. 짧지만 강렬하게 아름다움을 감각할 수 있는 장소가 전철이다.
멋진 전철을 갖고 있다는 건 결국 도시와 시민의 교양이 높다는 걸 뜻하는 것이다.

매일 보고 이용하는 전철이 친근하고 아름답게 다가와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도시 생활의 시작과 끝은 집에서 떠나 다시 돌아오는 일의 반복이다. 일상이 곧 우리의 삶이다. 삶이 메마르고 지루하지 않도록 즐거움과 아름다움을느끼게 해 줘야 한다. 느껴지지 않는 감각이란 별 소용이 없다.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쾌감으로 다가와야 한다. 아름다움이란 형태를 보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체험해야 제 것이 된다. 전철이 아름답다면 하루의 즐거움 또한 커지게 마련이다.

녹사평역에선 지하철만 타고 내리지 않는다.
지하 4층에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지하 건물의 밑바닥에서 식물이 자란다. 빛이 닿아 생기는 일이다. 숲을 이룰 정로 무성한 식물을 보면 마음까지 안정된다. 녹색의 싱그러움또한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감흥이 전혀 달라질 수 있음을알게 된다.
아름다움이란 결국 그 자리에 있어야만 느끼게되는 감정이다. 지하철역이 카페보다 더 멋진 공간을 연출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일상의 관성을 벗고 잠시 멈추는 여유를 제안한다.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아 쾌적한 휴식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녹사평역에선 지하철만 타고 내리지않는다.
녹사평역은 2000년에 개통된 이래 지금까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역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몇 년전의 녹사평역을 기억하고 있다면 달라진 실내의 모습에 당황할지 모른다. 최근에 정원이 있는 미술관을 표방하며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있다. 역 구내 전체가 미술작품 전시장처럼활용된다. 벽의 타일로 형태와 색채를 보여 주거나 모니터에서 비디오 작업이 펼쳐진다. 개표구 뒤편을 가득 메운 나무더미는 자연을 상징하는 설치 작업이다. 천장에 손으로 짠그물을 이어 능선이 중첩된 숲처럼 보이는 설치 미술이 있다. 의외의 공간에서 만나는 미술품은 신선하다. 공공미술은 은연중에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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