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정서적 반응이달라진다. 크다, 넓다와 같은 눈에 보이는 요소만작용하는 게 아니다. 세월의 흔적, 칠해진 페인트의색깔, 빛의 느낌, 요소요소에 심어진 풀과 나무,공간을 채운 냄새까지 영향을 준다. 감각은구체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그 차이를 확연히드러낸다. 경험의 장소와 공간의 분위기가 곧감각의 수용을 이끄는 요인이 된다.
무엇이 아름다움인지,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아는취향은 자신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린 경험에서나온다. 그 경험을 이끄는 바탕은 교양(敎養)이다.
녹사평역에선 지하철만 타고 내리지 않는다.
지하 4층에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지하 건물의 밑바닥에서 식물이 자란다. 빛이 닿아 생기는 일이다. 숲을 이룰 정로 무성한 식물을 보면 마음까지 안정된다. 녹색의 싱그러움또한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감흥이 전혀 달라질 수 있음을알게 된다.
아름다움이란 결국 그 자리에 있어야만 느끼게되는 감정이다. 지하철역이 카페보다 더 멋진 공간을 연출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일상의 관성을 벗고 잠시 멈추는 여유를 제안한다.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아 쾌적한 휴식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녹사평역에선 지하철만 타고 내리지않는다.
녹사평역은 2000년에 개통된 이래 지금까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역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몇 년전의 녹사평역을 기억하고 있다면 달라진 실내의 모습에 당황할지 모른다. 최근에 정원이 있는 미술관을 표방하며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있다. 역 구내 전체가 미술작품 전시장처럼활용된다. 벽의 타일로 형태와 색채를 보여 주거나 모니터에서 비디오 작업이 펼쳐진다. 개표구 뒤편을 가득 메운 나무더미는 자연을 상징하는 설치 작업이다. 천장에 손으로 짠그물을 이어 능선이 중첩된 숲처럼 보이는 설치 미술이 있다. 의외의 공간에서 만나는 미술품은 신선하다. 공공미술은 은연중에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