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새롭게 바꾸려면 - 삶을 더 가볍게 하는 마흔 가지 방법
안셀름 그륀 지음, 황미하 옮김 / 성서와함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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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요한 5,8). 내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면, 나에게 힘이 있다면, 내가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안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랜 세월 동안 들것에 누워 지낸 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자신의 약함을 떨쳐 내고일어서야 합니다. 이 말을 나에게 적용하면 이런 의미입니다. ‘골똘히 생각하는 것을 놓아 버린다.‘ 그것을 떨쳐 내야합니다. 여기서 ‘들것‘은 나에게 의심과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나는 더 이상 무언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온갖 불확실함과 망설임을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앞에서 사례로 든 사람이라면 이제 이렇게 할 것입니다. 방금 눈에 띈 옷을 입습니다. 남들이 이 옷을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할지는 더 이상 고민하지않습니다. 또는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의식적으로 택하여 ‘나는 똑바로 서 있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이어서 결심합니다. ‘오늘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하루 종일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 거야?‘

고대 그리스인들은 보는 것을 신(하느님) 체험과 관련지었습니다. ‘하느님‘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테오스theos‘는 ‘보다‘라는 뜻의 ‘테아스타이theastai‘에서 유래했습니다. 물론 그리스인들은 신(하느님)을 직접 볼 수 없다는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보는 것 자체에서 저자신을 잊고, 존재하는 만물 안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봅니다. 초기 수도승 가운데 신비가로 알려진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Evagrius Fonticus는 ‘자연적 관조theoria physike‘에 관해말하는데, 이는 그에게 자연의 신비를 의미합니다. 저는 주변의 나무와 꽃들, 풍경을 바라봅니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봅니다. 그런 가운데 하느님의 아름다움, 사랑과 애정, 힘과 생기를 지각합니다.

어떤 것이 현명한지 숙고해 보세요.
현실에 적합한 것, 실제적인 것, 자신이 잘 실행할 수 있는 것이면 좋습니다. 너무 힘들지 않은 것이면 그 역시 적합합니다. 당신은 아침에 무조건 일찍 일어나기를 바라지만 너무 힘들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당신에게 현명한 것인지 숙고하세요. 그런 다음 당신이 결심한 것을 실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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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새롭게 바꾸려면 - 삶을 더 가볍게 하는 마흔 가지 방법
안셀름 그륀 지음, 황미하 옮김 / 성서와함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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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예전의 판에 박힌 일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합니다. 저는 지속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두 가지 답을 내놓습니다. 먼저 이렇게 조언합니다. "계획을 너무 많이 세우지 마세요. 과도한 계획을 세우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니까요." 저는 결심에 관해 말하는 것도 삼갑니다

이런 속담이 있지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결심들로 포장되어 있다." 저는 오히려 연습에 관해 말합니다. "몇 주간 한 가지만 연습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당시에 그는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어느 스웨덴 사람에 관해 들려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중심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는 제대로 서 있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모든 게 흐릿했지요. 이런 그에게 뒤르크하임은 한 가지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날마다 잠시 똑바로 서서 자신이 나무처럼 서 있는 모습을, 땅속 깊이 뿌리를 박고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는 모습을 그려 보라고 한것입니다. 이 스웨덴 사람은 그 말을 명심했습니다. 그리고집으로 돌아가 하루도 빠짐없이 이 과제를 실행했습니다.
1년 뒤 뤼테에 돌아온 그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컨디션이 좋았고 중심도 잡고 있었습니다.

제가 영성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 제시하는 둘째 대답은 이렇습니다. "날마다 실행하고 싶은 의식을 택하세요." 의식은 신앙을 구체적으로 일상생활에 가져올 수있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자신의 삶은 신앙과 분리되어 있고 믿음은 일상에서 실제로 표현되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이 한탄합니다. 그러나 신앙을 토대로 일상을 살겠다고,

예컨대 더 많이 기도하거나 더 자주 묵상하겠다고 결심만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너무 추상적입니다. 그러나날마다 행하는 의식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데 도움이되고 내가 하느님 앞에 서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의식은 하루를 형성합니다. 의식에는 하나의 형태가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의식은 거룩한 시간을 만들어 낸다."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세상의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거룩합니다. 의식이 나에게 허용하는 거룩한 시간은 오롯이 나의 것입니다. 이때 이런 생각이듭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나 자신으로 살고 있다. 그렇습니다. 나는 타인의 기대나 일상의 요구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자유롭습니다. 나는 나 자신으로 있으며 하느님과 친교를 이룹니다. 하느님이 나를 지탱하고 계십니다.

시작과 관련하여 두 문장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모든시작은 어렵다"라는 문장과 헤르만 헤세가 쓴 "모든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다"라는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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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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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보면 도달하게 되는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저절로 온다. 먼 미래에 도달하면 모두가 하는 일이 있다.
결말에 맞춰 과거의 서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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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희망 - 프란치스코 교황 공식 자서전
프란치스코 교황.카를로 무쏘 지음, 이재협 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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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영혼을 껍데기로 포장하지 마세요! 끝까지 마야인으로 살아가세요. 예수회 사제이면서 동시에 마야인으로 한 걸음도 물러섬 없이 살아가세요."
토착화란 결코 자신의 뿌리를 저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뿌리에서 더 풍성한 꽃을 피워 내야 합니다. 우리는 끝까지 자신의 뿌리를 간직하며 거기서 꽃을 피워야 합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말 세 마디가 있습니다.
"고마워요."
"미안해요."
"이래도 될까요?"
이 말들은 우리 삶을 평화롭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열쇠입니다.
이 세 마디를 우리 가정의 가훈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허락을 구하는 마음은 섬세한 영혼의 표현입니다. 이는 한 사람의자유와 존엄을 인정하며, 그 사람의 삶이라는 문을 조심스레 두드리는 것과도 같죠. 저는 포촐리 신부님에게서 그런 마음가짐을 수없이보았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화를 모은 <잔꽃송이>에는 이런아름다운 구절이 있습니다.
"예의가 하느님의 본성 중 하나임을 깨달으십시오.
랑의 누이이니, 미움을 녹이고 사랑을 키워 냅니다."
예의는 사우리가 사는 세상이 거칠고 오만함으로 가득하다면, 그만큼 더 많은 예의가 필요한 법입니다. 그리고 이는 가정에서, 바로 우리 자신에게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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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 - 철학자 박구용, 철학으로 시대를 해석하다
박구용 지음 / 시월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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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효과적 수단만을 고민합니다. 이고민은 생각이 아니라 계산입니다. 무사유는 단순한 ‘생각 없음‘이 아닙니다. 무사유는 정신의 소극적인 활동도 아니고, 의식의 무기력증도 아닙니다. 무사유는 적극적인 무시의 활동입니다. 이 적극적인 무시의 활동을 하는 것이 바로 도구적 이성입니다. 한마디로 이익계산에 혈안이 된 도구적 이성의 활동이 무사유입니다. 이 맥락에서 아이히만은 명령의 정당성을 따지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익계산은 능숙하게 수행한 악마, 가장 악랄한 악마였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면서 ‘악의 평범성‘이라는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아이히만처럼 악마는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포착한 것입니다. 이는 곧 모든 평범한 사람이 언제든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목적에 관해 의심하지 않으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도 악마가 될수 있습니다. 악마는 한 사람의 속성이 아니라 사유하지 않고 계산만하는 사람의 활동입니다.

악마가 되지 않으려면 비판적 이성이 왕성하게 활동하도록 훈련을 해야 합니다. 비판적 이성은 부정적인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잘못된 명령이 내려오면 그 잘못을 부정하는 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게 되면 헤겔이 염려했듯이 혁명 안에 반혁명을 키우게 됩니다. 헤겔은 모든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부정하라고 합니다. 이를 철학에서는 ‘규정적 부정 Die bestimmteNegation‘이라고 합니다. ‘저 사람은 나쁜 놈이야!‘가 아니라 ‘저 사람의무엇이 나쁜 행동이야!‘라고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모든 걸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냉소주의입니다. 냉소주의는 언뜻 보면 멋있습니다. 하지만 냉소주의는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부정적인 것을 제대로 부정하려면 끈질긴 노력이 필요합니다.
규정적 부정은 부정적인 것을 한 번에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부정적인 것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부정해야만 합니다.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 Theodor Adorne의 말처럼 부정적인 것은 사라질 때까지 부정적입니다. 그러니 한 번의 전면적인 냉소적 부정이아니라 계속해서 부정하는 끝없는 부정이 필요합니다. 이 활동이 비판적 이성의 활동입니다.

의식을 지배하는 방식입니다. 둘 혹은 다수의 선택지를 주고, 그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통치술입니다. 통치술에 길든 사람은 하나를 선택합니다. 실제로 우리 교육이 이런 통치술에 적응하는 기술을가르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간혹 ‘나는 늑대가 나타났다는 걸사슴에게 알리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 그 사이에서 사고한 결과입니다. 이것이 바로 비판적 사고입니다. 비판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자신이 사슴이면서 동시에 늑대일 수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기준에 따라 나는 사슴일수도 있고 늑대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비판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그 기준이 무엇이고 얼마나 타당한지를 따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떤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대부분 자주 가는 단골 카페가 있겠지만, 간혹 다른 카페에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두 가게의 커피의 향이나 맛 또는 가게의 분위기나 서비스를 비교하기 마련입니다. ‘어? 이번에 온 카페의커피가 더 맛있네? 앞으로는 여기 와야겠다.‘ 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집에서만 30년 동안 커피를 마신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이런 경우 다른 집 커피가 더 맛있으면 안 됩니다. 그럴 때 인지왜곡을 시켜버립니다. 이 커피는 틀림없이 뭔가 잘못된 게 들어 있을거야‘라는 식입니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한 조직에서만 생활한 사람에게서 이런 경향이 자주 나타납니다. 윤석열이 바로 그 전형적인인물입니다. 그저 카페를 결정하는 수준이었다면 그래도 다행이었을텐데 안타깝게도 윤석열은 대한민국 곳곳을 빠짐없이 망가뜨릴 수있는, 아니 망가뜨린 최고 권력자였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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