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함‘은 오늘날 우리의 핵심 욕망이다. 인위적인 외부 소음, 갈등하는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하기 위해서다. 패션에서 조용한 럭셔리, 일에서 조용한 사직, 조용한해고, 조용한 고용, 조용한 휴가, SNS에서 조용한 숏폼, 여행에서 조용한 여행, 스텔스 캠핑, 리더십에서 내향적 리더, 경제에서 내향성 경제 등이 조용하지만 강력한 힘으로 우리의 라이프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밖에서 하는 사회 활동이나 모임, 야외 활동이 줄어드는 반면 집안에서 하는 콘텐츠 소비는 늘어난다. 유튜브나 틱톡에서 더 많은 영상을 보고,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외식을 하기보다 배달 음식을 더 많이 시켜 먹고, 회식은 꺼리지만 혼술은 즐긴다. 온라인 게임, 웹툰, 온라인 쇼핑에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쓰고, 사람보다 반려동물, 반려식물, 반려로봇에 대한수요와 지출이 더 많아질 것이다. 자기계발, 건강, 안티에이징, 패션 등개인을 둘러싼 다양한 영역에서 내향성 소비의 특성이 반영되는 이슈들이 계속 등장하고 새로운 유행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는 시장과 뜨는시장, 지는 소비 트렌드와 뜨는 소비 트렌드를 분석할 때, 공교롭게도외향성 소비와 내향성 소비로 구분해서 보면 꽤 많은 것이 설명된다.
하지만 이제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미국의 소비와 내수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 엘리슨 슈래거의 주장이다. 그 근거로 든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의 전체 소매 쇼핑 중 온라인 쇼핑의 비중이 계속올라가고 있으며, 뉴욕 레스토랑의 오후 5시 30분 예약률은 급증한 반면 오후 8시 예약률은 감소했다. 공교롭게도 두 시간대의 증가와 감소를 합치면 거의 제로가 된다. 즉 8시에 예약하던 사람이 5시 30분으로약속시간을 당겼다는 의미다. 8시 예약 시 식사와 함께 술자리까지 하
산업 사회와 달리 지식 정보 사회에서는 내향적인 사람의 역할이갈수록 중요해졌고, IT 산업을 이끈 창업자이자 테크 리더 중에는 내향적인 사람이 많았다. 내향적인 사람은 앞으로 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유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혁신하는힘은 활발한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과 실행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어릴 적 내향적인 성격에 대부분 집에서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빌 게이츠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 그는 방에서책 읽고 사색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외향적인 어머니는 이를 문제가 있다고 보았는지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고 여겼다고 한다. 어머니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빌 게이츠는 성공 비결로 자신의 내향적 성격을꼽기도 했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는 영업력이나 인맥, 정치력으로성공한 것이 아니다. 둘 다 내향적이지만 새로운 도전 앞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세상에 없었던 독보적이고 탁월한 기술과 제품을 만들어 성공할 수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시가 총액 세계 1, 2위에 오르는 회사를 창업했다.
조용한 럭셔리나 스텔스 웰스 둘 다 영국 부자들의 기본적 소비 태도였고,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부자들의 소비에 위화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었다. 영국에서는 초호화 저택을 짓거나 말도 안 되는 비용으로 결혼식을 치러도 ‘위화감을 느낀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 관심이 없다. 부자가 자기 돈으로 무엇을 하든 신경도 안 쓴다. 그냥 그들만의 리그로 여기고 그만이다. 사실 사람들은 타인과 비교를 하면서 불행해진다. 하지만 부자도 타인과 비교 우위로 과시하려 들지 않고, 서민도 타인과 비교하며 위축되지 않는다면 부의 양극화가 물질적 차이로만 다가올 뿐 정신적·심리적 차이로까지 다가오지는 않을 수 있다
조용한럭셔리와 스텔스 웰스에 대한 관심은 올드 머니old Money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고, 올드 머니가 그동안 누려왔던 패션, 인테리어, 운동,여행, 취미를 비롯해 의식주와 라이프스타일 전반이 새로운 트렌드의욕망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새롭게 부자가 된 사람들이 먼저 올드 머니의 라이프와 소비를 따라갔고, 지금은 실제로 부자는 아닌 20대가 올드머니 스타일을 따라가고 있다. 올드 머니 트렌드는 미국의 2세대가먼저 시작해 전 세계로 번져가 메가 트렌드로 계속되고 있다. 패션에서만 유행했으면 금세 열풍이 꺼졌을 텐데 인테리어, 여행 스타일, 운동으로 계속 확산되고 단독 주택, 고급 가구, 고급 식자재, 기부 등 의식주와 삶의 방식 전반으로까지 확장되면서 올드 머니는 트렌드를 넘어 문화로 자리 잡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휴가와 일은 명확히 구분되었다. 그런데 ‘조용한 휴가Quiet Vacation-ing‘는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마치 휴가를 가 있는 것 같은 상황을 일컫는다. 원격 근무 또는 하이브리드 워크를 하는 직장에서 가능한 조용한 휴가는 엄밀히 휴가를 따로 신청하지 않았지만 휴양지나 집에서 최소한의 일만 소극적으로 하면서 마치 휴가를 보내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근무 중이지만 몰래 쉬는 셈이다. 이렇게 요령껏 쉴수 있는 것은 원격 근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들과 직접 마주하지 않고 회사의 메시징 플랫폼에서 소통하며 근무 시간동안 일하고 있다는 흔적만 보여주면 실제로 일하는지 노는지 알 수가없다. 사실 이런 방법의 원조는 외근 나간다고 하면서 사우나 가거나아예 놀러 다니다가 조기 퇴근하는 것일 것이다. 출근해서 사무실 의자에 재킷 걸어두고 컴퓨터 켜놓고 책상 위에 일거리를 펼쳐둔 채 나가서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며 한두 시간 허비하거나, 심지어 하루 종일 밖
세계적 가전 전시회에서 ‘스텔스가전‘을 수년 사이 계속 선보이고 있다. 점점 화면 사이즈가 커진 TV는 집에서 큰 공간을 차지한다. 아무리 얇아져도 사각형의 검은 화면은 실내 공간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평소에는 안 보이다가 필요할 때만 화면이 나오는 TV, 벽에 걸어둔 대형 그림이나 사진 액자처럼 평소에는 아트 작품처럼 보이는 TV다. 냉장고도 주변 벽이나 벽지와 색상을 같게 하고,문손잡이도 없애서 냉장고가 아니라 그냥 벽이라고 인식하게 만든다(필요시 음성 인식으로 문을 여닫을 수 있다). 가전과 가구의 결합도 많다.
테이블처럼 생겨 위 판은 테이블로 쓸 수 있는데 아래는 냉장고인 제품도있고, 테이블과 공기청정기가 결합된 제품, 테이블과 스피커가 결합된제품, 천장 조명이 빔프로젝터도 되고 스피커도 되는 제품도 있다. 크고 고가의 가전제품일수록 집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보니 디자인이 중시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있는 듯 없는 듯 잘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 진화 중이다. 아무리 가전이 생활필수품이라고 해도 집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다. 이렇듯 조연처럼, 때로는 엑스트라처럼 존재감을 지워가는 것이 스텔스가전이다. 기능은 그대로이나 우리 눈에 두드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스텔스 가전 덕분에 좁은 공간이 더 넓어보이기도 하는데, 일본에서 유독 스텔스가전 시도가 많다. 한국에서도1인 가구 증가나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 증가가 스텔스가전에 대한 수요로 이어지는 배경이 된다.
하지만 캠핑카가 늘어나면서 해수욕장이나 캠핑장에서 논란이 되는 일도 많아졌다. 전망 좋은 해변이나 산 가까운 도로변, 무료 공영주차장에 장기 주차하는 캠핑카는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을 만큼 캠핑카에 대한 시선도 곱지 못하게 변했다. 그래서 대형 캠핑카보다 일반 차량을 내부만 개조해 조용히 티 나지 않게 캠핑하려는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을 ‘스텔스 캠핑카‘라고 부른다. 캠핑은 좋지만 굳이 남의 시선을 끌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이렇듯 카페, 서재, 술집 등에서 대화 금지, 침묵을 콘텐츠화하고있다. 갈수록 혼밥, 혼술, 혼커, 혼영, 혼여 등 혼자서 하는 활동이 늘어가고, 타인과의 관계나 교류보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을 원하는이들도 늘어가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타인의 대화는 소음일 뿐이다. 소음 없이 자신에게 집중하며 커피 마시고 술 마시고 음악 듣고 책 읽고사색할 수 있는 기회는 ‘돈을 내고서라도 이용하는 서비스가 되어버린 시대다. 소음이 기본값인 시대에 침묵은 돈이다. "침묵은 금"이라는격언과 의미는 살짝 다르긴 해도 결과는 같아졌다. 침묵을 돈으로, 금으로 만드는 비즈니스는 계속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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