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1750년 《과학과 예술론》에서 이미 비슷한 관찰 결과를 내놓았다. 루소는 과학과 예술은 인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그 까닭은 그것들은 인간의 욕망이 아니라 자존심과 명예욕만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질적 성장은 진정한 우정을 파괴하고 그 자리 를 질투와 공포, 불신으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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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리 SNS 친구를 많이 모으는 사람에게는 노출즈적 나르시시즘의 경향이 관찰됐다. 그들의 계정에선 미화된 자아상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착취하려는 욕망이 도드라졌다. 우리는 나르시스 신화의 결말을떠올릴 필요가 있다.
님프들은 나르시스가 빠져 죽은 호수 가에 앉아, 님프 에코가 나르시스로부터 매몰차게 거절당했을 때 쉬었던 큰 한숨 소리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인터넷에 셀피를 올리는 사람들도 그 사진이 영원토록 온라인 상에 떠돌아다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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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나이·계층 등에 따라 살아가야 할 때 공간과시간은 아주 다르다. 식당, 화장실, 대중교통 등에서의분리와 차별에 맞서, 일상의 사소한 공간을 둘러싼 권리 투쟁이 인권운동의 역사를 채워 왔다. 이 투쟁에는특정 ‘장소‘의 출입자와 그에 따른 의미를 바꾸는 것도포함된다. 포함되기 위한 투쟁이 있다면 박차고
나오기 위한 투쟁이 있다. 부엌은 어느 쪽에 해당할까?
"너는 혼자라서 좋겠다."
내가 자주 듣는 말이다. 이 말은 "너는 밥 안 해도돼서 좋겠다"는 말과 동의어다.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잘 알지 못하겠지만, ‘홀몸(?)인 나에게도 부엌의 역사가 있고 그 사연은 제법 길다.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은 한 장소를 무대로 만들어진다.
몸이 있어야 한다고 강요받는 곳, 그런 몸의 경험과 맥락이 나의 정신적 관점을 낸다. 내가 경험한 부엌은 다른 이들의 부엌과는 다른 정체성을 형성해 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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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all that was happening to him, his voic was strong and inviting, and his mind was vibrating with amillion thoughts. He was intent on proving that the word "dying" was not synonymous with "use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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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리로 가는 길>에서 주인공들은 차로 엑상프로방스를 지나며 세잔의 인생 자체였던 생 빅투아르 산을 바라본다.
세잔이 20년 이상 그리고 또그린 수많은 생 빅투아르 산 회화와 실제 산이 겹쳐 보이는 순간, 그 돌산은 더 이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무뚝뚝한 돌산이 아니게 된다. 어쩌면 그 산은우리에게 다정하게 다가와 비밀스러운 언어를 조용히 속삭여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언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목숨과 바꿀 정도로 오래, 그리고집요하게 이 산을 그렸던 세잔의 마음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 세잔의 영혼을 그토록 뒤흔들었으며, 화가가 이 산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를, 영국 시인 콜리지 famuel Taylor Caleridge 가 말했던 것처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던 " 자연과 예술의 언어가 우리에게 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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