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일하기를 원한다면 젊은 세대가 기피하는 노동과 직무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과거 익숙했던 일만 찾을것이 아니라, 낯설고 또 보수가 적은 직업이라도 기꺼이 맡아 일과 삶의 의미를 추구하려는 적극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 미래세대에 압력을 가하는 게 아니라 협력하고 공존하려는진정성이 바탕에 깔려야 한다.

한국 노인이 더 일하고 싶어 하는 데에는 ‘폐 끼치고 싶지 않다‘
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한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관성에서 탈피해, 사회 · 경제 · 문화적으로 독립적인 삶, 스스로를 책임지려는 ‘액티브 시니어‘는 이제 노년문화의 대표명사가 되었다. 여기에 더해 수명 증가로 인해 필수 생애주기가 연장되고, 경제 욕구는 커졌지만 대부분 하우스푸어인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청년에겐 지옥, 은퇴자에게 천국‘으로 알려진 이탈리아는 복지지출의 60% 이상을 노인 복지에 쓰고 있는 나라이다. 극심한세대 간 갈등을 경험한 대표적 사례로 언급된다. 복지예산 대부분을 고령층에 집중한 탓에, 청년과 일반 시민에 대한 복지예산은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청년 실업률이 30%에 육박하고, 희망을 잃어버린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매년 이탈리아를 떠나고 있지만, 복지 의존도를 줄여 미래세대의짐을 덜어줘야 한다는 생각은 기성세대로부터 외면받는 실정이다

청소 하나만 봐도 세대 간 인식 차이는 이토록 크다. 청소를 교육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 기성세대와 청소는 당연히 누군가가해주는 것인 줄 알고 자라온 세대 사이에는 낯설고 익숙지 않은것들로 가득하다. 마음을 열고 이해해 보라는데, 참 말처럼 쉽지가 않다. 젊은 세대에게 어른들과의 관계는 마치 청소 같은 느낌을 준다. 꼭 해야만 하나 싶은, 누가 대신해 줬으면 하는, 거의 경험이 전무한 새로운 활동을 수행해야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가까이 하고 싶은 어른, 멀리하고 싶은 어른은 분명 따로 존재한다. 종종 학생들과 대화하다 보면, 기본적으로 ‘따라하고 싶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끌림을 주는 어른이 따로 있다는 걸알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따르고 싶은 ‘멋진 어른‘에는 두 가지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우선 일적으로는 자신의 직업을 충실하고훌륭하게 해내는 ‘본업 천재‘이다. 그리고 사적으로는 섣부른 조언을 하지 않는다. 후배나 나이 어린 사람이 먼저 물어보지 않는이상 조언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자기 분야에서 확실한한 획을 그은 사람이면서 아무리 나이 차이가 나더라도 간섭 혹은지적 없이 온전히 존중해 주는 사람이 ‘멋진 어른‘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구글은 2006년부터 실패한 서비스의 비석을 한곳에 모아 전시하는 ‘구글 공동묘지‘를 공개했다. 구글은 직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게끔, ‘20% 규칙‘을 운영해 왔다. 일터에서 주어진 시간 중 20%를 자신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에 몰입하게 함으로써, 창의적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궁극적으로 혁신적인 제품이 개발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전 세계인의 이메일 표준이 된 Gmail도 이렇게 탄생했다고 한다. 실리콘벨리에는 매년 10월에 창업자들이 실패담을 공유하는 실패 콘퍼런스(Fail Con)가 열린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Elon Reeve Musk)는 ‘무언가 실패하고 있지 않다면 충분히 혁신하고 있지 않다‘라는 말로 실패와 혁신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JeffreyPreston Bezos)는 아마존을 ‘실패를 발명하는 회사‘라고 칭하며 실패를 대규모 혁신을 위한 필수적인 부분으로 바라보는 조직문화를 장려한 리더로 손꼽힌다

흥미롭게도 ‘쌤‘ 호칭과 ‘말 놓기‘ 관행 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나이에 대한 저항‘이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질서를 부여한 것은 나이였다. 나이로 위계를 만들고 관계의 질서정연함을유지했다. 사람들은 나이를 앞세운 이 질서정연함을 신뢰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서열주의 사회가 되어버렸다. 한두 살 차이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한 것이 나이라는 문법이었다.

나와 가까운 곳에 있지는 않더라도 공통 관심사 하나만으로도쉽게 결속할 수 있다는 점이 팬덤의 주요 특징이다. SNS를 비롯한 온라인 매체의 발달이 팬덤 결속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하나의 야구팀을 응원하기 위해 전국의 야구팬들이 한데 모이거나,
아이돌을 응원하기 위해 전국의 팬들이 집결하는 현상은 이들 모두가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공통적인 관심사가 있다는 것만으로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고 또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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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이란 누구를 위한 시설일까? 인간의 실체는 영, 혼, 육,
체,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육 flesh‘과 ‘체skeleton‘는 죽으면 사라지고 만다. 특히 화장을 한다면 형체도 없게 된다.
‘혼‘은 영어로 ‘soul‘이나 ‘mind‘ 혹은 열정과 감성 같은 것인데, 육체의 소멸과 더불어 죄다 없어지게 마련이다.

남는 것은 ‘영spirit‘인데, 이는 우리가 살아있을 때도 육신에 얽매이지 않는 경우가 있는 만큼, 죽으면 육신을 떠나 하늘이나 다른 세계로 간다. 그러니 무덤에는 죽은 자가 남아있을 도리가 없다. 그에 대한 기억만이 머물 뿐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아메리카 인디언은 이미 이 사실을 알아 다음과 같이 시를 읊었고, 현대에 와서 많은 가수가 ‘천 개의 바람‘이라는 제목으로 노래하며 전한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오. 나는 거기 있는 게 아니라오,
나는 잠들지 않는다오. 나는 숨결처럼 흩날리는 천의 바람이라오. 나는 눈 위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라오. 나는 무르익은 곡식 비추는 햇빛이라오. 나는 부드러운 가을비라오. (...) 내 무덤 앞에 서서 울지 마오. 나는 거기 있는 게아니라오, 나는 죽지 않는다오."
그러니 무덤은, 죽은 자를 기억하며 남은 자인 우리를성찰하는 게 그 본령의 기능이며 진실인 게다. 다시 말하면 무덤은 결국 우리, 산 자를 위한 시설이며 그렇게 조성하는 게 옳다고 여겼다.

그곳이어야 했다. 마을이 끝나고 산으로 이어지는 지형으로,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기 위한 적격의 장소였다. 종묘의 월대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 월대는 영정을 모시는정전과 우리가 삶을 사는 지면 사이 중간 영역에 위치한다.
그래서 산 자인 우리가 월대에 올라 정전의 혼령을 부르고만난다. 다시 말하면, 삶과 죽음이 만나는 공간, 그렇게 매개하고자 늘 비어있는 광장의 공간. 그 월대의 광장을 여기에 만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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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어진 다락의 바닥을 들어내어 지붕의 목구조를 그대로 노출하자 놀라운 풍경이 만들어졌다. 지나간 역사가 현현한 듯하였으니, 모두를 귀한 존재로 여기게 한 것이다.
"역사적 기억이 없으면 아름다움도 존재할 수 없다." 아도르노가 문화적 풍경에 대해 남긴 이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2024년 8월 11일 ‘성 베네딕도 문화영성센터‘(수도원은 새 피정센터와 마오로관을합해서 이렇게 이름하였다) 준공을 기념하는 축복식과 감사 미사가 열렸는데,왜관 수도원의 모원인 독일 오틸리엔 연합회 예레미아스 슈뢰더 총재 아빠스가특별히 참석하여 축사를 했다.
"교회는 젊어야 합니다. (...) 단호히 현대적인 이 피정센터 건축은 우리를 연대하게하는 시대정신을 나타내며 왜관 수도원의 새로운 출발을 뜻합니다. (…)그리고 정직한 재료인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함으로써 우리 수도자들을솔직하게 하여 겸손으로 향하게 합니다."

명례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서른여덟의 나이로 순교한 복자 신석복 마르코를 기념하기 위한 장소다. 신석복은소금과 누룩으로 장사를 하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한번얻은 신앙을 배반하지 않아 처형당하고 만다. 박해의 시대가 끝나자 그의 출생지였던 이곳에 한옥 성당이 지어졌으나 1936년 태풍으로 전파되었고, 파괴된 성당의 잔해들을모아 규모를 축소하여 1938년에 다시 지은 게 현재까지 남아있다. 성당 기능을 수행하는 목적의 한옥으로 지은 이건축은 규모도 작고 결구 방식도 수수하지만, 시간의 흔적이 쌓인 모습이 상징적이고 기품 있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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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스케이프 SOULSCAPE - 사유하고 성찰하는 건축 풍경에 관하여
승효상 지음 / 한밤의빛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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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는 늘 영성이 충만한 삶을 살았다. 집 안 거의모든 곳에 영성이 가득했던 것을 보면 틀림없이 그렇다.
우선 집터에는 터줏대감이 산다고 여겨 집을 짓거나 터의형상을 바꿀 때면 제사를 지냈다. 집의 마루에는 성주신이살았으며 부엌에는 조왕신, 심지어 화장실에도 측신이 산다고 여겼다. 또 문마다 문신이 산다고 믿어 문을 넘을 때조심했다. 이들이 잡신이라고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우리를 다스린다고 여기며 항상 삼가며 살았다.

마을마다 입구에는 으레 당산나무가, 그 아래에는 신당이 있어오가며 늘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으니, 우리들 공동체도 그러했다. 이뿐만 아니라 큰 집에서는 사당까지 두어 조상의영혼을 모셨고, 심지어 뒷산에는 무덤을 두어 죽은 자와 같이 살기도 했다. 죽음과 신들을 목격하며 사는 게 일상이어서 우리 선조의 삶 자체가 종교였다. 자계戒하며 신독愼獨하고 청빈으로 독락獨樂하는 선비의 삶, 조선 500년을지탱하며 아름다운 문화를 일구어내는 바탕이었다. 그런데 결국, 이 모두를 물신 하나가 쫓아내고 만 것이다.

이 장소들을 한 줄로 이으면 400킬로미터 가까운 거리가 된다. 이렇게 묶을 수 있다. 사유원(1박)-하양 무학로교회-독락당-만취헌-통도사-구덕교회 - 부산 바다(1박)-봉하마을-명례성지 - 왜관 수도원 (1박). 이 빠듯한 사나흘여정을 순례길이라 여기고 한꺼번에 다닐 수도 있겠지만,
이 장소들이 서로 기승전결을 갖지 않으니 몇 군데를 적절히 묶어서 각자 편의대로 간다 해도 무방하다. 어쩌면 한장소를 찾아 오래 머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아마 혼자 가시는 게 좋을 것이다. 스스로 말미암는 게 자유일지니....

수목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주가 되어야 하는 장소이므로 건축은 특별한 형태가 되지 않아야 했다. 그저 집지을 장소만 잘 선택하면 주변 풍경을 잘 감상하게 하는 시설로서 족한 일이라, 내 건축을 되도록 드러내지 않으려했다. 그래서 이곳의 첫 번째 집인 현암을 비롯해 내가 설계한 거의 모든 시설은 땅속으로 들어가게 하거나 묻거나구태여 나무를 심어 가렸다. 강력히 희망하기로는, 마치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건축 그래서 이미 풍경이 된 건축이고자 한 것이다.

『장소의 혼』을 쓴 건축가이자 이론가 크리스티안 노베르크-슐츠는 "건축의 기본적인 행위는 어떤 장소의 소명을이해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내가 이 수목원의 장소가 가진 소명을 다 이해했을까? 노력했지만 부족했을지 모르고,
더러는 소명을 배반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장소가가진 생명력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아무리 할퀴고 찢어도 땅은 스스로 치유하고 이겨내며, 다음에 살게 되는 세대에게 그 고통마저 아름다운 언어로 들려준다. 그리고 횔덜린의 시구처럼, 그곳에 인간은 시적으로 거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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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호명사회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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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로의 출발점은 고유성을 지닌 자신만의 무대입니다. 본진에서의 깊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호오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과업을 찾으며, 숙련을 바탕으로 시간의 부가가치를 끌어올리는 과정은 무엇보다 자기자신에서 시작한 질문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처럼 ‘내 일‘이 편해지면 결국 ‘나‘는 불필요해지는 것입니다. 일을 하고 임금을 받는 것은 정당하지만, 일을 하지 않고임금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예전에는 임금을 받고 하던 일들에 로봇이 하나둘씩 다가오며 갈수록 그 분배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은 생업의 현장에서 ‘수고스러움‘이 바로 우리의 존재 이유라는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노동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직원들이 외근을 나가면 서로 위치를 알 수 없었고 보고도 주 1회에 그쳤기에 삶의 속도가 지금처럼 빠르지않았습니다. 지금은 협업 도구가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개인의 위치도 언제든 전화를 걸어 확인할 수 있으니, 잠깐의 휴식에도 즉각적인 독촉이 쏟아집니다. 업무가 구조화되었다는 것은 결국 쉼표를 없앤 것이고, 그만큼 노동의 강도는 높아집니다.

이 중심에는 콘텐츠가 있습니다. 태어난 장소를 일컫는출신지와 함께 공부한 장소인 출신 학교로 한정되던 예전의 정체성은, 전 세계로 확장된 모든 이들의 새로운 삶의 범주에서 바라보면 너무나 제한적이라 느껴집니다. 무엇보다100년이 넘는 생애에서 초기 20년의 경험과 선택이 그의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서사는 AI와 초연결로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그 이후 삶의 관점에서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무엇인가를 학교에서 먼저 배운 후 삶에 적용하는것이 아니라, 항상 삶 속에서 배우며 적응하는 것이 21세기의 생존법임을 이해한다면 출신 학교를 명시하는 지금까지의 관행이 유효기간을 다했음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제 도구의 인간인 호보 파베르homo faber가 AI와 3D프린터로 강화되며 장인의 인간인 호모 아르티장 homo artisan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이 경지에 이르면 돈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버는 것으로 상승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속하는 것이므로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팔리는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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