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사회에서 ‘근본적인‘ 위기는 인간 ‘마음의 위기다.
물론 엄밀히 따져보면 예나 지금이나 ‘마음의 위기가 없었던적은 없다. 하지만 현재 사회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마음의 위기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바뀌어 가는 사회 환경의 변화와 가면 갈수록 심해지는 물질만능주의는 우리를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뒤처지지 않는 것, 또 이를 위해서 나의 ‘스펙‘을 끊임없이 쌓아나가는것밖에는 없다. 우리는 대체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프롤로그나 좋다고 평가하는 것을 쫓으면서 살아간다. 다시 말해 ‘진정 한 자기가 실종된 삶을 산다.
니체와 장자가 우리에게 베풀어 준 중요한 가르침은 이런것이었다. 우선 니체와 장자는 남의 호흡에 끌려 다니지 말고 자기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남의 평판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곧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에리히 프롬E. Fromm 은 이런 말을 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만이 같이 있을 수 있는사람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함께 있을 가치가있는 사람이다. 애인과 헤어지면 당연히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너무 많이 사랑했어"라고 되된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많이 사랑해서 괴로운 것이라기보다는, 많이 의지했었기에 괴로운 것일지도 모른다.

니체와 장자는 과거와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 의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은 우리를 아주 불편하게 한다. 니체와 장자의 관점에 의하면, 반성이나 성찰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반성이나 성찰은 잘못 살았다는 증거다. 반성이나 성찰 대신 좋은 음식을 먹고 충분한 잠을 취하고 나면 새롭게 일을 도모할 힘을 얻는다. 반성이나 성찰보다 이게 훨씬 낫다. 니체와 장자는 반복해서 이 순간에 ‘충실’할 것을 설파한다. 하나하나의 시간이 시작이며 또한 끝이라고 생각하라.
얼마나 오래 만나느냐 하는 것보다 하나하나의 시간을 어떻게 만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에 듣는 음악 등을 통해 행복할 수 있는 나 자신이 있다. 기쁨의 싹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경험하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아주조금, 관점을 바꾸는 순간 나의 삶은 많은 것이 긍정적으로 변한다.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 우리는 남이나 외부 상황 에 휘둘려 살아가는 태도로부터 탈피해, 자기 삶의 주도권을쥐고 원하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 자기가 하는 일을 삶의 가운데에 놓고 다른 모든 일은 그것을 위한 방향으로 다시 세팅해 야만 한다. 중앙아시아의 위구르족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의 나라에서 왕이 되지 말아라. 자신의 나라에서 자신이어라." 또 2019년 2월 19일에 유명을 달리한 전설적인 패션 디 자이너 칼 라거펠트 Karl Lagerield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을 살라. 그것이야말로궁극적인 럭셔리다."

Nietzsche
결코 후회하지 말라. 후회는 한 가지 어리석음에 또 다른어리석음을 더하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라. 만약 후회할만한 나쁜 일을 저질렀다면 앞으로는 좋은 일을 하겠노라다짐하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장자의 아포리즘에서 대붕과 작은 새는 각각 자신들의 입장에서 삶을 전망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자신이 속한 틀의 한계 내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으며, 단지 자신이 대상과관계 맺고 있는 물리적 거리나 심리적 거리에 따라 이것과 저것을 구분할 뿐이다. 관찰은 그 관찰자가 위치한 좌표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모든 인식이란 인식하는 자의 위치에 따라 내려지는 제약된 해석일 수밖에 없다. 대붕을 비웃는 작은 새는 자신의 입장에서 삶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자기의 생의 조건에 걸맞게 살아야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장자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적한다. 동시에 이 양방향의 입장이 모두 의미가있다고 보는 가치의 확장성을 강조한다. 장자는 어떤 필요를 충족시키는 유일한 최선의 길을 제시하려고 하진 않았다. 필요를충족시키는 길은 다수이며 그 어느 것도 최선의 길일 수 없다.

니체 또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나의 길이다. 너희들의 길은 어디 있는가? 나는 내게길을 묻는 자들에게 이렇게 대꾸해왔다. 왜냐하면, 모두가 가야할 단 하나의 길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몸이 불편한 ‘지리소支離疏‘가 건강하게 태어난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역설적 발언은 사회적 안전망이 망가져 어디에서도 최소한의 평안함을 보장받을 수 없는 엄혹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다. 동시에 몸이 불편해 권력의 입장에서는 별 쓸모가 없는 지리소가 그 덕에 오히려 자유로웠다고 말함으로써 권력의 잔인성을 폭로하기도 한다 사실 인간에게 나타나는 불완전함이란 상대적이다. 이를테면 축구장에 곱게 깔린 잔디밭에서는 옥수수가 잡초 취급을 받겠지만, 일반 텃밭에서는 필수 작물일 뿐이다.
생명 그 자체나 자연 사물에 나쁜 원칙이란 존재하지 않는제1장 삶과 죽음다. 마찬가지로 자연 사물로서의 인간에게도 나쁜 원칙이란 없다. 어떤 형태를 지니는 이미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불완전한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을 치료하려는 사람은 비뚤어진 마음을 똑바른 마음이 되도록 고치는 것이 아닌, 비뚤어진 마음을 당사자가 익숙하게 받아들이고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자연의 눈으로 보면 모든 인간은 나름대로 자기 존재 의의를 지닌다. 원활한 소통이란 자신이 비뚤어져 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닫고 수용할 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가 현재 간직하고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타자와의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니체는 ‘반응하지 않기‘ 능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 계획안을 말하기도 했다.
"보는 법을 배우는 것. 습관적으로 자신의 시선을 고요함, 인내,
내면 성찰에 집중하는 것, 개별 사례를 검토하는 방법과 각사례의 모든 측면을 파악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은 정신을중시하는 삶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박하고 고립시키는 본능을 통제하는 것."
(우상의 황혼)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니체에 따르면,
"밝아지고자 한다면 오랫동안 구름으로 머물러야 한다"(『유고(1883)』). 행동의 과잉이라는 경거망동으로 자신의 값어치를 갉아먹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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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엔 그처럼 누군가를 깊이 좋아하는 마음, 그러한 감정적인 몰입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무의식적인 감성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맞닥뜨린 감각적인 쾌락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대신 그보다 더 중대하고 본질적인 이 세계의 현실 논리에충실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하죠. 이런 사회적인 압력은, 우리에게 훗날 진정한 너 자신이 되기 위하여 지금 나를 사로잡은 욕구를 억누를 것을, 주위의 유혹거리에 한 눈을 팔지 말것을 강요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감성은 내 자아가 추구해야 할미래의 어떤 바람직하고 완성된 모델을 제시해 두고, 지금 나의감각적인 선호를 하찮은 것이자 떨쳐내야 할 어떤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이 암묵적인 공감대는 ‘지금 네가 즐기고 있는 것은 한낱 가벼운 오락거리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이 사회의 집단 무의식입니다.

아이돌이든 아이돌이 아니든, 세상이 간편하게 단정해 둔 저마다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자리에서, 사회의 편견들과 규정들에 짓눌린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순간 그 두꺼운 벽을 깨나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저 어딘가에서 우리를 구원할 참된 이데아,
완벽한 무언가를 통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의 눈으로 깊이 성찰하는 일을 통해서, 그리고 나와 함께 이 세계를 이뤄가는 타인의 얼굴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그들의 소중함을깨달아 가면서 말이죠.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좋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모든 생명은 평생 자신을 아끼고, 자기만의 길을 찾아 꾸물꾸물 길을 걸어갑니다. 결코 자신의 아픔에 지지 않으면서, 이 고통 많은 세상에서도 내 곁에 있는 이들과 같이 깔깔대면서 말이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내뿜는
‘아모르 파티‘로 가득한 곳입니다. 저마다 다양하게 못생기고,
흉도 많고, 상처투성이의 존재이지만, 그래도 자기 운명을 기어이 긍정하며 삶을 꿋꿋이 살아나가는 생명들이 내뿜는…….

도겐(道元) 선사는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불성(佛性)의 체현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꽃을 좋아하고 잡초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는 또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랑해도 꽃은 지고
사랑하지 않더라도 잡초는 자란다고,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하겠느냐가 문제 아닌가요? 할 수 있을까를 말하고 있다간 우린 아무것도 못하고 말아요. 캘리포니아에도 못 가고, 아무것도 못해요. 하지만 하겠다 마음먹으면 할 수 있어요. 우린 한다면 하는 거예요."
-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혜원출판사)

요컨대, 기도란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인간적 운명과 인간성에 대한 관조입니다. 멀리 있는 타인의 아픔을 듣고, 상상하고공감하는 일입니다. 멀리 있는 타인의 아픔의 깊이를 가늠하고,
그 앞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지를 인식하는 일입니다. 불교의 초기 경전인 법구경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인기척없는 빈집에 들어가 / 마음을 가라앉히고 / 바른 진리를 관찰하는 수행자는 / 인간을 초월한 기쁨을 누린다." 아마 우리 영혼을묵상하는 일은 이렇게 빈집에 들어가서 이 세상을 조용히 바라보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독일 작가 게오르그 뷔히너는 희곡 『당통의 죽음」에서, 어느비참한 이의 입을 빌려 "인생을 가장 잘 즐기는 사람이 가장 잘기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엔 『단순한 기쁨』을 쓴 피에르 신부의 말을 덧붙여야 할 겁니다. 그는 이 세상에 오직 ‘자신을 숭배하는 자‘와
‘타인과 공감하는 자‘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며, 타인을 향한 사랑과 공감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모르는 건 인생의
비극이라 했죠.... 타인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들과 진정으로 교감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좋은 기도라는 것입니다.

엑소는 〈Power>를 통해 "같이 한 목소리로 노래할 때,
나를 볼 때, 서로 같은 마음이 느껴질 때 우린 더 강해질 수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존 스타인벡은 『생쥐와 인간에서 "곁에 가까운 이가 하나도 없는 사람은 바보가 된다. 같이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건 중요치 않다. 그저 같이 있어주면 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사람들을 만나가는 일이 기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Power)의노랫말처럼 "아름다웠던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우리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린 그저 우리와 운명의 짐을 나눠진 한 사람이 그 ‘힘‘과 ‘열쇠‘를 찾는 일을 도울 수있을 뿐입니다.
같이 한 목소리로 노래하면서, 우리가 저 큰 영혼의 일부분임 을 확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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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펼쳐 들면 순식간에 나만 남습니다. 사람으로 가득 찬 한낮의 카페 한가운데 좌석에서는, 시계 초침 소리만이 공간을 울리는 한밤의 방 한구석에 홀로 기대 앉아서든, 모두 그렇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고독한 경험이지만, 그 고독은 감미롭습니다.
게다가 책을 읽을 때 그 고독은 사실 다른 고독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자 한 자 책을 쓰는 저자의 고독과한 줄 한 줄 책을 읽는 독자의 고독 사이. 그 책을 읽는 나의고독과 그 책을 읽는 너의 고독 사이. 물론 우리는 서로에게결국 남입니다. 그러나 홀로 된 채 책을 읽고 쓰는 타인들이느슨하게 서로 연결될 때, 그 끈은 세상의 다른 범주들과 달리 억압하지 않습니다. 그 작은 평화 속에 위엄이 있고 위안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연대를 꿈꿉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문성을 이야기하고 그 중요성도 높아집니다. 전문성이란 깊이를 갖추는 것이겠죠. 그런데 깊이의전제는 넓이입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아요. 넓이의 전제가 깊이는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깊이가 전문성이라면 넓이는 교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적인 영역에서 교양을 갖추지 않는다면 전문성도 가질 수 없죠. 사람들은 대체로 깊어지라고만 이야기하는데, 깊이를 갖추기 위한 넓이를 너무 등한시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국경과 시간적 제약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현대에는 넓이에 주목하는 게 더욱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넓이를 갖추는 데 굉장히적합한 활동이 바로 독서입니다.

문학은 오랜 세월 말에 쌓여 있는 수많은 먼지 같은 것을 털어서 그 말의 고유한 의미나 다른 의미를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 자체이면서 표현 방식이기도 한 언어를 가장 예민하게 다루는 문학을 대체할수 있는 건 없다고 봐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딸이 중학생이던 시절에 학교에서 가훈을 붓글씨로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고 해요. 우리 집 가훈이 뭐냐고 묻는딸에게 박찬욱 감독이 아님 말고‘라고 했다죠. 정말 명쾌하고 좋은 말 아닌가요? 아님 말고‘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정말 인생이 행복할 수 있어요. 내가 이것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면, 아님 말고‘라는 태도만 갖게 되면 다른 사람앞에서 당당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삶에서는 절박한상황 때문에 아님 말고‘를 외치기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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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깃발을 꽂으려고 산에 오르지 마세요. 맑고 신선한공기를 마시며 경치를 즐기세요. 세상이 당신을 보게 하려고 산에 오르지 말고, 당신이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산에 오르세요.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은 우리가 특별하지않다는 걸 느낄 때 찾아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성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다른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데서 오는 행복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과 성취감은 내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라는 데서오곤 합니다. 그 우월감과 독자성을 위해 우리는 참으로 많은 노력을 하지요. 그러나 머튼은 우리의 가장 큰 행복은 우리가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게 인간 존재에 속해 있다는 바로 그 진리에 있음을 알려줍니다. ‘특별하지 않음‘에서 오는행복감은 일상에서의 위안과 기쁨만이 아니라 내면적 존재에 닿은 매우 깊은 차원의 깨달음에서 오는 것이기에, 다함이 없고 헛되지 않습니다. 머튼은 이러한 영적 체험을 한 것이 깊은 밤, 고절한 수도원 성당에서가 아니라 사람으로 가득 찬 거리 한복판을 걷는 매우 일상적인 상황에서였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전해줍니다.

루이빌 상가 중심에 있는 4번가와 월넛가의 한 모퉁이에서 나는 감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거리를 오가는 이사람들을 모두 사랑하며 그들은 나의 것이고 나는 그들이것이며, 비록 서로 낯선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서로 이질적인 사람일 수 없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던 것이다.
머튼의 이러한 체험을 적어놓은 묵상은 그가 1956년부터1965년까지 영적 묵상과 수도원에서의 체험, 문화비평 등을적은 메모들을 편집해 출간한 『토머스 머튼의 단상』에 실려있습니다. 이 책은 머튼의 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성찰을 담고 있는 책 중 하나지요. 머튼은 그날 자신이 체험한 근본적깨달음을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다르다는 착각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에 너무도 안심하고기쁜 나머지 하마터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나의 행복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과 같고 다른 사람들 가운데 하나인 것에 감사드립니다."

러스킨은 ‘세상의 셈법‘이 아닌 포도밭 주인의 비유에 나오는 ‘하느님의 셈법‘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점점 더 비인간화되고 인간성은 파괴되리라는 것을 예언자적 직관으로보았습니다. 하느님의 셈법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쓸모없다고 내쳐진 사람의 곤란과 무너진 존엄에 대한 속 깊은 배려와 관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 셈법은 사람을 소모품이자 이윤을 내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여타의 경제학‘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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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은 "성공의 80퍼센트는 ‘등장‘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50여 편의영화에서 시나리오와 감독을 담당한 앨런은 분명 성취의 비밀을 알고 있는사람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등장할 것이냐‘는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데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위대한 창작자가 일상의 루틴을 고수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는 매일 동이 틀 때 일어나 택시를 잡아타고 헬스장으로 향한다.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의식儀이다. 화가 로스 블레크너Ross Bleckner는 신문을 읽고 명상을 한 다음 오전 8시쯤 화실에 도착한다. 이른 아침의 적막 속에서 일하기 위해서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하루에 500단어씩 썼다.
진정 위대한 성취에는 수백, 수천 시간의 작업량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날마다 짬을 내어 그 시간을 채워야 한다. 이를 실행하는 데 루틴이 도움을 준다.
루틴을 통해 우리는 기대치를 설정하고, 자신의 역량에 맞춰 업무 흐름을 조율하며, 규칙적인 창작의 리듬을 맞출 수 있다. 루틴의 형성에는 결국 인내와 지속성이 관건이다. 영감이 찾아오길 마냥 기다리지 마라. 영감을 담을 수 있는 뼈대를 먼저 만들어 둬라.

"우리 부부에게는 ‘10분 법칙‘이 있어요. 잘되는 날은 앉아서10분 안에 뭔가 괜찮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죠." 자주 하는습관이 생기면 이런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는 법도 터득할 수있다.

직장이나 가정의 무거운 책무를 안고서 또 다른 창조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할 때 자주 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프로젝트에 할애할 시간이 없다고 끝없이 좌절하기보다는 매일 스스로시간을 내라. 매일 조금씩 일을 진행하면서 수개월, 수년을 견디면 어느새 많은 일이 이뤄져 있을 것이다. 물론 ‘자주 하라‘고해서 반드시 ‘매일 하라‘는 뜻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지속성이다. 그러나 일하는 간격이 넓어질수록 그로 인해 누릴 수있는 혜택은 줄어들 것이다.

반복적으로 무엇을 하느냐가우리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탁월함은 행위가 아닌 습관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저는 자리에 앉아 글을 쓸 때면 늘 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물이나 차를 한 잔 마십니다. 자리에 앉는 시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요. 매일 아침 8시에서 8시 30분까지 30분간입니다.
비타민을 한 알 먹고 음악을 튼 다음 항상 같은 자리에 앉습니다. 신문 역시 같은 위치에 잘 놓아두죠. 이런 일을 매일매일 같
‘은 방식으로 해 나가는 목적은 제 마음에 대고 ‘자 이제 곧 꿈을 꿀 시간이야‘라고 말해 주려는 겁니다.
( 소설가 스티븐 킹)

지는 소설 쓰기 모드에 돌입했을 때 새벽 4시에 일어나 5~6시가 동안 작업합니다. 오후에는 10킬로미터 달리기나 1500미터수영을 한 다음(혹은 두 가지를 모두 한 다음), 책을 읽거나 음악을 감상하지요. 밤 9시에는 잠자리에 들고요. 이런 루틴을 변한 없이 매일 지속합니다. 반복 자체가 중요합니다. 반복은 일종의 최면이니까요. 제 자신의 깊은 내면에 접근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겁니다. 하지만 6개월~1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이런 반복적 생활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정신력과 체력이요구되지요. 이런 의미에서 장편 소설을 쓴다는 건 생존 훈련과도 같습니다. 예술적 감성만큼 체력이 절실한 일이지요.
(무라카미 하루키)

그는 "계속 행복하기위해 내가 하는 여섯 가지 일들"이라는 블로그 포스팅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밤 9시 30분이면 수없이 다녔던 길을 산책한다. 이미 정해진 코스에 따라 매번 똑같은 길을 걷기에, 걷는 것외에 다른 무엇도 하지 않는다. 이런 산책이 사색과 휴식을 유 도한다."

항상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진 사람은 아무것도하지 않는 시간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하지 않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말하자면 일상 속의 꿈꾸는시간, 일이 정리되고 재편되는 시간과 같다. 항상 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깨어 있으려고만 한다면 이런 현상이 벌어질 수 없다.
일을 하면서 휴식 시간을 확실하게 가져야 하는 이유는, 특정방향으로 내달릴 가속도를 얻기 위함이며 그래야 또 다른 가속 도가 저절로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남편과 기기 전원을 꺼 두려는 시도를 여러 번 해 왔지만좀처럼 성공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시간과 가족에 관해, 진정으로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법에 대해진지하게 생각해 봤죠. 덕분에 기기 전원을 꺼 두는 일을 진심으로 원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매주 기술 안식일을 가지기로 결정했어요.
우리는 신앙이 아주 깊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유대교도로서 안식일을 지킵니다. 금요일 밤이면 종교 의례를 치르듯모든 스크린 기기의 전원을 차단하지요. 이 의식이 시작되면 촛불을 켜고 휴대폰, TV, 컴퓨터를 전부 끕니다. 이후 토요일까지내내 그 상태로 생활하는 거죠.
안식일은 뿌리가 아주 오래됐어요. 하지만 옛 학자들이 안식일에 관해 기록했던 글을 보면 마치 오늘날의 세태를 얘기하는지한 착각이 들 정도예요. 일주일에 하루, 마음을 다르게 먹고
일을 중단하는 게 그 핵심입니다. 매주 당신의 두뇌와 영혼을재설정하는 거죠.

Responsibility 책임이란
반응Response과 능력Ability의 결합,
즉 자신의 반응을 선택하는 능력이다.
-Stephen Covey-

가장 곤란한 점은 우리가 ‘긴급함‘과 ‘중요함‘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해서, 모든 일이 긴급한 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소위 ‘긴급‘ 하지만 사소한 일이, ‘중요한 일보다 먼저 처리되기 훨씬 쉽다. 그러나 중요한 일보다 긴급한 일을 우선시하면 결국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우선시하는 일을 고르게 되고 만다. 매번 새로운 이메일이 올 때마다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미풍에도 이리저리 나부끼게 된다. 자신의 관심사는 어느새 옆으로 제쳐 둔 채 타인의 일에 매달리게 된다. 이런 바쁜 흐름 속에서 우리의 주의력은 시간을 들여생각하고 되새기고 상상해야 하는 ‘의미 있는 일‘로부터 멀어져버린다. 잠시 멈추는 그 시간이 우리 삶을 향상시키고 위대한업적의 기반을 제공해 주는데도 말이다.
-제임스 빅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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