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엔 그처럼 누군가를 깊이 좋아하는 마음, 그러한 감정적인 몰입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무의식적인 감성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맞닥뜨린 감각적인 쾌락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대신 그보다 더 중대하고 본질적인 이 세계의 현실 논리에충실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하죠. 이런 사회적인 압력은, 우리에게 훗날 진정한 너 자신이 되기 위하여 지금 나를 사로잡은 욕구를 억누를 것을, 주위의 유혹거리에 한 눈을 팔지 말것을 강요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감성은 내 자아가 추구해야 할미래의 어떤 바람직하고 완성된 모델을 제시해 두고, 지금 나의감각적인 선호를 하찮은 것이자 떨쳐내야 할 어떤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이 암묵적인 공감대는 ‘지금 네가 즐기고 있는 것은 한낱 가벼운 오락거리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이 사회의 집단 무의식입니다.
아이돌이든 아이돌이 아니든, 세상이 간편하게 단정해 둔 저마다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자리에서, 사회의 편견들과 규정들에 짓눌린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순간 그 두꺼운 벽을 깨나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저 어딘가에서 우리를 구원할 참된 이데아, 완벽한 무언가를 통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의 눈으로 깊이 성찰하는 일을 통해서, 그리고 나와 함께 이 세계를 이뤄가는 타인의 얼굴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그들의 소중함을깨달아 가면서 말이죠.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좋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모든 생명은 평생 자신을 아끼고, 자기만의 길을 찾아 꾸물꾸물 길을 걸어갑니다. 결코 자신의 아픔에 지지 않으면서, 이 고통 많은 세상에서도 내 곁에 있는 이들과 같이 깔깔대면서 말이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내뿜는 ‘아모르 파티‘로 가득한 곳입니다. 저마다 다양하게 못생기고, 흉도 많고, 상처투성이의 존재이지만, 그래도 자기 운명을 기어이 긍정하며 삶을 꿋꿋이 살아나가는 생명들이 내뿜는…….
도겐(道元) 선사는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불성(佛性)의 체현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꽃을 좋아하고 잡초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는 또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랑해도 꽃은 지고 사랑하지 않더라도 잡초는 자란다고,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하겠느냐가 문제 아닌가요? 할 수 있을까를 말하고 있다간 우린 아무것도 못하고 말아요. 캘리포니아에도 못 가고, 아무것도 못해요. 하지만 하겠다 마음먹으면 할 수 있어요. 우린 한다면 하는 거예요." -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혜원출판사)
요컨대, 기도란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인간적 운명과 인간성에 대한 관조입니다. 멀리 있는 타인의 아픔을 듣고, 상상하고공감하는 일입니다. 멀리 있는 타인의 아픔의 깊이를 가늠하고, 그 앞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지를 인식하는 일입니다. 불교의 초기 경전인 법구경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인기척없는 빈집에 들어가 / 마음을 가라앉히고 / 바른 진리를 관찰하는 수행자는 / 인간을 초월한 기쁨을 누린다." 아마 우리 영혼을묵상하는 일은 이렇게 빈집에 들어가서 이 세상을 조용히 바라보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독일 작가 게오르그 뷔히너는 희곡 『당통의 죽음」에서, 어느비참한 이의 입을 빌려 "인생을 가장 잘 즐기는 사람이 가장 잘기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엔 『단순한 기쁨』을 쓴 피에르 신부의 말을 덧붙여야 할 겁니다. 그는 이 세상에 오직 ‘자신을 숭배하는 자‘와 ‘타인과 공감하는 자‘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며, 타인을 향한 사랑과 공감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모르는 건 인생의 비극이라 했죠.... 타인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들과 진정으로 교감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좋은 기도라는 것입니다.
엑소는 〈Power>를 통해 "같이 한 목소리로 노래할 때, 나를 볼 때, 서로 같은 마음이 느껴질 때 우린 더 강해질 수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존 스타인벡은 『생쥐와 인간에서 "곁에 가까운 이가 하나도 없는 사람은 바보가 된다. 같이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건 중요치 않다. 그저 같이 있어주면 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사람들을 만나가는 일이 기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Power)의노랫말처럼 "아름다웠던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우리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린 그저 우리와 운명의 짐을 나눠진 한 사람이 그 ‘힘‘과 ‘열쇠‘를 찾는 일을 도울 수있을 뿐입니다. 같이 한 목소리로 노래하면서, 우리가 저 큰 영혼의 일부분임 을 확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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