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지가 말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 귀에 들리는 것 대부분은 소음이다. 우리가 무시하면 그 소음은 우리 마음을 휘저어놓는다. 그러나 귀 기울여 들으면 그 소음이 아주 매력적이라는 걸 알수 있다."
케이지에게 침묵은 반드시 모든 소리의 부재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는 트럭이 내는 소리를 좋아했고, 라디오 잡음과 앰프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물에 물이 부딪히는소리를 좋아했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의 소란한 삶 때문에 압도당하거나 들리지 않는 소리를 음미할 줄 알았다.
1951년, 케이지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방음실이라고 정평난 무반향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의 엄청나게 민감한 귀가 그안에서도 어떤 소리를 들었다.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은 서로 다른두 개의 소리였는데, 잠시 후 그는 엔지니어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두 소리가 본인의 신경계에서 나는 소리와 혈액이 순환하는 소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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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서 있는 건 가능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강을 가로지르는배도 없었고, 도로를 달리는 트럭도 없었고, 매미 한 마리조차 없었다. 뉴스를 듣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나는 뉴스를 듣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침묵을 두려워하고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처럼 고요 안에 있어야만 현재에 집중하고 마침내 진실을 볼수 있게 된다. 그제야 비로소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는 시간만큼자기 양심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까? 사람들이 주머니 안에 든 작은 기계의 띠링 울리는 소리에 반응하는 속도만큼 양심의 가책이 부르는 소리에도 빠르게 반응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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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우편물이 밀리는 상황을 즐겼다. 그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화나게 할 수도 있고 중요한 가십거리를 놓치는 일이 생기더라도 말이다. 사소한 문제들은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해결되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실시간으로 뉴스를 받아들일 게아니라 나폴레옹처럼 여유를 갖는 태도, 유행에 한두 계절쯤 뒤처지는 태도, 내 삶을 받은편지함의 노예로 만들지 않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당신이 알게 되는 순간까지도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면 당신에게 닿기전에 사라지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질 것이다. 그러면 불필요한 조급함이나 피로에 찌들 일 없이 내적으로 고요를 유지하며 관심이 필요한 사안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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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한다. 굉장한 일이 미래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일은 없다. 명료함도 통찰력도 행복도 평화도 마찬가지다. 오직 지금 이 순간만 존재할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이 문자 그대로 1, 2초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지금‘이란 과거에 집착하거나 미래를 염려하지않고 우리가 존재하기로 선택한 순간을 뜻한다.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일 또는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대한 희망이나 걱정을우리가 원하는 만큼 멀리 밀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은몇 분이 될 수도 있고 오전 몇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몇 년이 될 수도있다. 당신이 그만큼 버틸 수만 있다면 말이다.
초등학교 교사이자 작가인 로라 잉걸스 와일더Laura Ingalls wilder 의말처럼 지금은 지금뿐이다. 결코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을 붙잡아라!
자신의 일부만 떼어내서 그것에 어떤 문제나 기회를 짊어지게 할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있을까?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서 유지할 수 있는 끈끈한 관계라는 게 있을까? 다른 기회가 또있을 거라고 확신해서 지금 이 순간의 기회를 자신 있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며 낭비하는에너지가 적을수록 눈앞에 놓인 일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는 더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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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현대미술관 모마 MoMA에서 열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40년 회고전 예술가가 여기에 있다 (The Artist is Present)라는 제목 자체로 기념비적인 퍼포먼스를 예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마리나는 어떤 식으로든 전시장 내에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녀가 정말 말 그대로 그곳에 있기만 할 거라고, 그게 전부일 거라고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사람이 79일, 총 750시간 동안 1545명의 낯선 사람을 코앞에마주하면서 아무런 도움 없이, 방해 없이 화장실조차 가지 않은 채의자에 가만히, 정말로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마리나라는 예술가가 이런 일을 계획하고 정말로 이를 해내리라고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마리나의 퍼포먼스는 제목에서 알 수 있을 만큼 단순했다. 땋은머리를 어깨 앞으로 가지런히 내린 예순여섯의 마리나가 휑뎅그렁한 전시실로 걸어 들어와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은 뒤에 자신의 맞은편에 앉는 관람객을 그저 바라보는 것, 그게 전부였다. 거의 석달 내내 이 전시를 찾는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마리나는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에 매번 새로운 얼굴로 고개를들어 새로운 사람을 마주했다.
마리나는 본인의 작품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서 저는 그저 자신을 비우자고 제안하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집중할수 있도록 말이죠."
현재에 집중한다는 게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인가? 뭐가 그렇게특별하다는 걸까?
마리나의 퍼포먼스를 직접 관람한 사람들은 운이 좋았다. 그것은가히 종교적이라고 할 만한 경험이었다. 찰나의 순간에 타인을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마치 세상에 이보다더 중요한 일이 없는 것처럼 타인과 맞물리는 느낌을 가져보는 것, 상대의 모든 에너지를 받아보는 경험은 더욱 더 드물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토록 열정적으로 집중하는 타인의 모습을 언제 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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