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심리 치료사는 집안일을 ‘묵상의 길‘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는 일은 우리의 성격뿐 아니라 삶 전체의 질에도영향을 미친다는 것이겠지요. 매일 집안에서 해야 할 일, 밥 짓는일에서부터 방을 쓸고 닦고, 의복을 세탁하는 일들이 우리의 영혼에 생기를 줍니다. 집안일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집안 구석구석과 사용하는 물건 하나하나가 우리의 심상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벽에 걸어놓은 십자고상이나 화가의 그림을 바라보는 일, 그것 자체가 묵상이 됩니다. 빨래를 널고 거둬서 개키는 순간에도우리는 가족들을 삶을 떠올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 매체와 책에서 ‘고독‘이나 ‘외로움‘, ‘혼밥‘ 등은 부정적인 단어로 쓰입니다. 하지만 위의 그림책 주인공처럼 고독 속에서 자기내면으로 들어가 일상을 편하게 지내는 모습은 오히려 자신의 영혼과 잘 지내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문득 우리나라 옛이야기 『팥죽할멈과 호랑이』가 떠올랐습니다. 산속에서 홀로 살던 할머니를 호랑이가 나타나 잡아먹으려고 할 때집안에 있던 밤톨, 맷돌, 쇠똥, 지게, 멍석 같은 사물들이 머리를 써서 할머니를 구해주는 내용입니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저자인 류시화 시인은 "정원사가 있는 곳에 정원이 있다"는 말을 하였는데, 저는 이 말을 아주 좋아합니다. 일상 안에서 스스로를 기쁘게 만드는 공간의 창조자가 되라는 뜻일 겁니다. 영혼을 만나려면, 즉 영혼을 잃지 않으려면 소박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정성을 다해야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멈춤과 묵상이 필요함을 다시 깨우치게됩니다.
실제로 2013년 런던에서 두 명의 코미디언이 무신론자들의 교회를 만들었는데, 그들은 노래 부르기, 소집단 유대감 형성,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하면서 모임을 가진다고 합니다. "더 잘 살고, 자주돕고, 더 많이 감탄하라"가 그들의 모토이고, 자신들을 ‘인본주의 신비가‘라고 부릅니다. 또 다른 무신론자로 반종교적 논쟁가로알려진 샘 해리스는 열성적인 명상가입니다. 그는 깨달음의 방법으로 명상을 적극 추천하면서 온라인으로 명상 강의를 합니다. 그는 명상하기 위해 꼭 경전을 외거나 종교에 귀의할 필요는 없으며, 그저 고요함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는 것이면 충분하다고주장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를 쓴 세계적인 영성가 에크하르트 톨레는 생각과 감정, 마음, 의식이라는 말의 개념을 조금 구분지어설명합니다. 생각과 감정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의식적으로 외부의 사물과 사건에 반응함으로써 형성된 것들입니다. 주로 과거에 경험한 기억에 의해 재생되고, 강화되며, 종래에는 습관으로 남아버립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과 감정은 미래에 대한 온갖 시나리오들을 만들어냄으로써 두려움과 불안과 같은 파장을 일으킵니다. 마음이란 이러한 생각과 감정들의 집합체인데요, 불행한 마음,행복한 마음과 같은 말들처럼 우리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반면 ‘의식‘은 근원적인 에너지와 같습니다. 생각과 감정의 숲을 헤치고 더깊이 들어가면 순수의식의 세계를 만날 수 있고, 톨레는 그것을 ‘영혼‘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베네딕트회 사제로 수많은 영성 책을 낸 안셀름 그륀은 영혼이자리 잡고 있는 그곳을 옹달샘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어린 왕자』에서 왕자가 사막에서 우물을 찾아냈던 것처럼 우리의 내면 어딘가에 있는 영혼을 ‘우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물론 영혼은 어떤공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편의상 그렇게 설명하는 것뿐이지요
첫째, 푹 자고 걷기: 어느 저명한 강연자는 이런 말을 했다. "20킬로미터를 걸은 날에는 절대 연설에 실패하지 않는다" 푹 자고걷기가 중요하다. 둘째, 편지쓰기: 생각이 고갈되었다고 느낄 때 오랜 친구에게 편지를 써보라. 편지를 쓰면서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솟아날 것이다. 셋째, 양질의 대화 나누기 : 좋은 대화는 와인처럼 우리를 도취시킨다. 공감의 불 주위에 모이면 우리의 마음은 따뜻해지고 활발해진다. 지적인 활동은 전염성이 있다. 넷째, 고독한 시간 갖기: 숲속에 혼자 있는 시인이 적은 내밀한언어가 도시의 북적이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듯이 가장사적이고도 개인적인 것이 보편적인 진실이다.
다섯째, 아침을 성스럽게 유지하기: 위대한 사상가들은 아침마다 한 시간씩 명상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발견했다. 여섯째, 자연 속에서 시간 보내기: 어떤 음악가의 작품도 바람의소리에 견줄 수 없다. 자연의 목소리를 영혼의 목소리다. 이 소리는 어떤 교회의 오르간도 도달하지 못한 신성한 곳으로 우리를 들어 올린다. 일곱째, 한 걸음 물러나기: 특정한 문제나 프로젝트로 인해 답답할 때 필요한 것은 풍경의 변화이다. 때로 익숙한 일상을 떠나는것만으로 창조성에 불이 붙는다. 여덟째, 새로운 책 읽기: 좋은 문학 작품은 삶을 긍정하고 신뢰하게 해준다. 우리의 감각과 영혼이 조화를 이루도록 돕는다. 최고의 책은 영감을 주는 책이다. 아홉째, 인내하기: 의지력은 영감의 적이 아니라 협력자이다. 신의 은총을 품은 바람은 항상 불고 있지만 당신이 돛을 높이 올려야만 소용이 있다.
철학자 움베르트 에코가 "태초에 장미는있었고 장미라는 이름은 없었지만, 이제는 장미는 없고 장미라는이름만 있다"라고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실재로서의 장미를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게 아니라, 이미 머릿속에 심어진 장미에대한 상징체계를 갖고 장미를 대한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선물받은 꽃이 장미였을 때와 민들레였을 때 우리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장미와 민들레에 대한 상징체계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윌버가 지적한 대로 언어가 만든 세상속에 살면서 ‘환상 속 경계‘를 만들었고, 그 경계가 만들어낸 대립으로 인해 전쟁터를 만들고 말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윌버의 강의는 페르소나, 에고, 심신 통합 단계에 이어 이제 ‘초월적인 나‘라는 개념으로 넘어갑니다. 초월적인 나에 대해 윌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몸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몸이 아니다. 나는 욕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나의 욕망이 아니다. 나는 감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감정이 아니다. 나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생각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일까요? 윌버는 한마디로 정리해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뒤에 남아 있는 순수한 자각의 중심이며, 모든 생각, 감정, 느낌, 욕구에 대한 부동의 주시자이다.", "내 불안은 내가아니다"라는 깨달음이 강해질수록 그 불안에 위협당하지 않게 될것이라고 윌버는 단언합니다. 불안이 현존해 있더라도 더 이상 그불안에만 묶여 있지는 않기 때문에 불안에 압도당하는 일은 없을거라는 뜻입니다. 불안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철저히 수용하고,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허용하면 됩니다. 불안이 사라져가는 것을 단지 보고 있기 때문에, 나는 불안이 존재하든 안하든 잃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괴로움의 한가운데서, 다만 ‘무선택적 자각‘으로 머물러있어보라.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괴로움도 ‘진정한 나‘ 를 이루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했을 때이다. 그것들이 나의중심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때, 비로소 자신의 괴로움을 비난하거나, 그것들에 분개하고, 원망하는 일도, 거부하거나 탐닉하는 일도 하지 않게 된다."
그는 켄 윌버의 모든 것의 이론이라는 책에서 "그리스 사람들은 ‘코스모스 Kosmos‘라는 아름다운 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육체적, 감정적, 지적, 영적 영역을 모두 포함하는 모든 존재의 질서 있는 전체 Whole를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 불쌍한 현대인들은 이 코스모스 Kosmos를 코스모스 cosmos(물질적 우주)로 축소시켰다. 물질과몸과 마음과 혼과 영을 물질 한 가지로 축소시킨 것이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인간이 영혼을 박대할 때마다 생명의 생기가 우리에게서 빠져나간다. 이로 인해 인간은 신경쇠약과 격분, 정신의 불모 등의대가를 치른다"( 칼 융)
인간이 지닌 깊은 슬픔에 관한 어떤 표현도 나에게는 낯설지않았다. 나는 두려움 없이 그들의 눈에서 그들이 지닌 고통을 바라보았다. 하루가 다 끝나는 시간에 나는 항상 이런 느낌을 가졌다. 나는 이 사람들을 사랑한다. 가혹한 짐을 어떻게 견디어야하는지 아무런 준비도 없었지만 그냥 묵묵히 참아내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가해진 박해에 대한 비통함보다는 ㅇ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사랑을 느낀다. 삶은 아름답다. 그리고나는 하느님을 믿는다. 나는 사람들이 ‘공포‘라고 부르는 상황에서도 바르게 서기를 원하고 여전히 삶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기를 원한다."
에티의 일기에서 가장 놀랍고 경이로운 구절은 "우리를 도울 수없는 신을 우리가 돕고 보살펴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이 계시다면 이 비참한 일들에 침묵하실 리 없다"라고 절망하며 신의 부재를 부르짖던 때에 에티는 우리가 신을 보살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돕기 위해 당신을 도와야 한다" 라는 에티의 말에서 그 의미를 헤아려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영혼을 돌봄으로써 곧 신을 도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에티의 이런 마음은 그가 재스민 꽃을 보면서 신과 나눈대화에 나와 있습니다. "지난 며칠간 비바람이 치더니 집 뒤에 피었던 재스민 꽃이 모두 떨어져버렸습니다. (...) 하지만 내 속 어딘가에는 재스민 꽃이 지지 않고 예전처럼 우아하게 활짝 피어 있습니다."
"모든 이데올로기에는 반드시 거짓의 요소가 침투한다"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혼란스럽고 끊임없이 변하는 삶에서 확실성을 얻고자 고정관념을 형성한다. 하지만 그 결과 미묘한 차이와 놀람의 요소를 지닌 실제 삶을 경시하고 희생시킨다"라고 통찰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진실을 희생시키는 이유는 자신들이 만들어놓았던 이념이라는 건물을 부수는것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훌륭한 시민이 되기 위한 방법이 나옵니다. 그는 이 광란의 세계에서 훌륭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하루에 한 번, 집이나 사무실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디지털 기기의 전원을 끄고, 일을 내려놓고, 외적으로만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스스로를 침묵시키고, 자기 안에서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를 잠시 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잘 알게되고, 그럴수록 세상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하지요.
제가 소로에 대한 일화 중에서 가장 크게 웃었던 대목이 있습니다. 어느 날 소로는 병아리들이 화단을 파헤쳐서 속상하다고 말하는 에머슨 부인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자 소로는 헝겊을 잘라병아리들의 발을 감싸는 양말을 만들어 신겼다고 합니다. 병아리들을 우리에 가두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였지요. 귀여운 병아리들이 자유롭게 다니도록 하려고 양말을 만들어 신기는 소로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터졌습니다. 앞으로 소로를 생각할 때면 항상그 장면을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