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런데 도스또예프스끼가 작가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 정말로 그에게신분증을 요구해야만 할까요? 그의 아무 소설이나 펼쳐 다섯 페이지만 봐도. 신분증 없이도 작가와 상대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을 텐데요. 그리고 내 생각으로는 그에게는 아무 신분증도 없었어요!" (중략)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었어요." 여자가 그렇게 말했지만 썩 확신에 찬 모습은 아니었다. "반대하오!" 베게모뜨가 열렬히 외쳤다. "도스토예프스끼는 불멸이오! (중략) 작가는 신분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그가 쓰는 것으로 결정되는 거예요!" 미하일 불가꼬프, 《거장과 마르가리따》
드디어 목숨이 붙어 있는 것도 앞으로 5분밖에는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5분간이 한없이 긴 시간인 것처럼 그리고 막대한 재산이나 되는 것처럼 여겨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 5분 동안에 최후의 순간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을 만큼 충실한 생활을 할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동안에 할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우선 동료들과의 작별에 2분의 시간을 쓰고 이 세상을떠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데 2분 그리고 나머지 1분을 마지막으로 주위의 광경을 둘러보는 데 할당했다는 것입니다. - 도스토옙스키, 《백치》
어느 책에선가, 네안데르탈인들을 비롯한 앞선 호모종과 사뭇달랐던 호모사피엔스의 최고 발명품이 ‘내일‘ 이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지구에서 명멸해간 수많은 호모종이 그날그날 그 시간만의 삶을 동물적으로 살아갈 때 어렴풋하게나마 ‘내일’이라는 관념을 갖게 된 호모사피엔스는 이어 ‘희망‘ 이라는 관념을 생각해냈을 테고, 긴 안목의 ‘인생‘ 이라는 개념까지 깨닫게됐을 터다. 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발견인가!!
베토벤이 모자를 벗지 않은 채 일군의 귀족들과 마주쳤다고 해서 그것이 곧 그 귀족들은 경멸스런 반동가들이고 그는 찬미할 만한 혁명가임을 의미할 수는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창조하는 자가 지배하는 자보다 더욱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창조가 권력의 우위에 있고, 예술이 정치의 우위에 있다는 것. 작품들은 불멸하지만 전쟁이나 왕자들의 무도회는 그렇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 밀란 쿤데라, 《불멸》
그러나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묘지는 묘지, 그 한 가지 명목만으로 만년 2백만 명의 여행자를 끌어들일 수는 없다. 프랑스 묘지 전문 인터넷 사이트에서 물었다. "당신에게 묘지는 어떤 곳인가?" 응답 결과(2002. 8. 6. 현재), 정원(72.2%), 박물관(26.4%), 기도하는 곳(25%), 산책하는 곳(20.8%), 죽음 (33.7%), 이 중 박물관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페르 라셰즈를 비롯 파리의 묘지는 박물관으로 지정된 문화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여행서에는 미술관과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묘지가 반드시 중요하게 안내되어 있다. - 함정임,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족은 사사sasa와 자마니zamani라는 독특한 시간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죽은 이를 기억하는 한, 죽은 이는죽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사‘의 시간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그를기억하는 이들마저 모두 죽어서 더 이상 기억해줄 사람이 없을 때 망자는 비로소 영원한 침묵의 시간, 즉 자마니로 떠나게 된다. (중략) 기억은 관계 속에 생성되는 시간이며 또 다른 생의 공간이다. ‘요절‘ 이란 결코 낭만적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찍 세상을등진 이들에게 매혹당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그들과 함께 서서히발효해가기 때문이다. - 전성원, 《길 위의 독서》
중대한 과학적 진리를 주장한 갈릴레이는 그 진리의 주장 때문에 생명이위태로워지자 자신이 주장한 진리를 너무도 쉽게 부인해버렸다. 어떤 의미에서는잘한 일이다. 그것은 화형을 감수해야 할 정도의 진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지구와태양 중 어느 것이 다른 것의 주위를 회전하느냐 하는 문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일이다. 말하자면 하찮은 문제인 것이다. 반면에,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생각한 나머지 죽는 사람들은 많다. (중략) 그러므로 내가 판단하건대, 삶의의미야말로 질문들 중에서도 가장 절박한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만약 자기 자신을 찾고 싶다면 그토록 즐거움이나 기쁨을 얻어야 할필요는 없을 거네. 되레 죽음을 생각해야지. 이런 생각만이 우리 자신을 인식하게 한다네. (중략) 죽음에 대한 생각은 놀라운 효과가 있네그 사고의 본질 자체로써 모든 것을 파괴하고,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을 보존하고 유지하고, 모든 인간 열정을 물리치게 하네. (중략) 죽음의 이미지를 담지 않은 생각이란 할 수조차 없네. - 조반니 파피니,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2》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 알베르 카뮈. 이방인-
"내 깊은 내면에서는 ….… 카메라 안에 필름이 없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게 없어요.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은 피사체를 확보하고 정확한 순간에 셔터를 누르는 일입니다. ...… 몇 분의 1초 동안 지속될 뿐입니다. 하지만 그게 창조의 순간입니다." 앤드루 로빈슨, 《천재의 탄생》 중1962년 프랑스 기자와의 대담에서 브레송의 말
... 심지어 남미의 얀 네루다와 인도의 자와할랄 네르Jawaharlal Nehru 까지 모두가 이 세기의 눈의 피사체가 됐다. 또는 (흡사 암살당하기 다섯 시간 전의 존 레논을 찍은 애니 리버비치처럼 암살당하기 한 시간 반 전의 마하트마 간디를 찍었고, 1949년 중국 혁명의 현장에도 사진기를 들고 서 있었다. 그에게 따라붙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브레송의 사진을 흔히 우연과 행운의 결과물로 오해하지만, 그는 늘 치밀한연구와 계획 끝에 현장으로 향했고 만반의 준비 후 순간적으로프레임에 틈입해온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타고난 천재이기보다는 준비된 행운아였던 셈이다. 1940년대 초 브레송은 한 출판업자의 주선으로 〈프랑스 전통을 이어받은 20명의 화가들>이라는 전시에 쓰일 예술가들 사진을 의뢰받았다. 앙리 마티스를 포함해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피에르 보나르 Pierre Bonnard,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등이 선정됐는데 브레송은 누구보다 마티스를 먼저찍기로 한다. 사진 찍히기를 싫어했던 마티스의 작업실에서 그를 찍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가장 인상적이며개성적인 노년의 마티스 모습을 우리에게 남겨줬다. 마티스는 심하게 병을 앓고 있는 데다 사진을 찍히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까닭에 카르티에 브레송은 매우 참을성 있게 결정적) 순간을 기다려야 했고, 그렇게 해서 촬영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마 ) 암살당하기 한 시간 반 전의 마하트마 간디를 찍었고, 1949년 중국 혁명의 현장에도 사진기를 들고 서 있었다. 그에게 따라붙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브레송의 사진을 흔히 우연과 행운의 결과물로 오해하지만, 그는 늘 치밀한연구와 계획 끝에 현장으로 향했고 만반의 준비 후 순간적으로프레임에 틈입해온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타고난 천재이기보다는 준비된 행운아였던 셈이다. 1940년대 초 브레송은 한 출판업자의 주선으로 〈프랑스 전통을 이어받은 20명의 화가들>이라는 전시에 쓰일 예술가들 사진을 의뢰받았다. 앙리 마티스를 포함해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피에르 보나르 Pierre Bonnard,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등이 선정됐는데 브레송은 누구보다 마티스를 먼저찍기로 한다. 사진 찍히기를 싫어했던 마티스의 작업실에서 그를 찍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가장 인상적이며개성적인 노년의 마티스 모습을 우리에게 남겨줬다. 마티스는 심하게 병을 앓고 있는 데다 사진을 찍히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까닭에 카르티에 브레송은 매우 참을성 있게 결정적) 순간을 기다려야 했고, 그렇게 해서 촬영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마티스의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했는데, 화가가 카르티에 브레송이 그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까지 방 한쪽에서 조용히 몇 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 앤드루 로빈슨, 《천재의 탄생》
지쳐빠진 네 맵시가, 그림자들과 자기 포기, 아낌없는 사랑 가지고 만드는, 귀여운 무덤, 감각 없는 묘비 위에서 나는, 겸손하게, 다정스레, 죽는다. 네 위에 넘어지고 쓰러져서, 그러나 낮은 무덤의 막힌 잿더미 공간에 이끌려, 내가 그 무덤 위에 쓰러지자마자, 이 겉만 죽은 여인은, 목숨이 되돌아와. 부르르 떨고, 두 눈을 뜨며, 나를 비추고 나를 깨물며, 목숨보다 더 값진 새로운 죽음 하나를여전히 내게서 앗아간다. 폴 발레리, 건성으로 죽은 여인‘, 《발레리 시전집》
내가 태어났을 때 / 나는 울었고 /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 웃고 즐거워하였다. 내가 내 몸을 떠날 때 / 나는 웃었고 /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 울며 괴로워하였다. ‘티베트 사자의 서‘ 중에서
티베트의 지혜를 담은 책에 적혀 있다는 이 구절은 삶(탄생)과 죽음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을 전해줍니다. 셰익스피어 역시그의 비극 《리어왕》에서 "참아라. 모두가 울면서 이 세상에 오지않았는가. 바보들만 있는 이 거대한 무대에 온 것이 슬퍼 운 거야."라며 인생을 통찰했습니다. 태어남이 마냥 행복하고 축복받을 일만은 아닐뿐더러 죽음이 전적으로 슬프고 두려운 것만은아니라는 생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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