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건물 내부는 비워져 있다. 전체로 보면 가운데를 비우고 주변의 테두리를 매장으로 채운 직육면체가 되는 셈이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격언을 누가 모를까. 알지만 꾹꾹 채워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게 우리네 삶이다. 그런데 스타필드는 돈이 되는 매장 수를늘리는 대신 시선의 여유를 위해 비워 두는 선택을 했다. 비워진 공간의 주변에 매장의 쇼윈도가 들어서 있다.
통로를 이어 기나긴 길이 만들어졌고, 좌우를 연결하니자연스럽게 순환로가 되었다. 진열된 상품과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걷는 일이 즐거워진다. 이동하기 위해 걷는 게 아니란 점이 중요하다.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앞쪽의 시선과비워져 보이는 위아래 층의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위층에 있으면 아래층의 브랜드숍 간판이 보인다. 아래층에선 위층의 디스플레이가 눈에 띈다. 교차의 시선은 발견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스타필드의 공간 기획자는 우리의 주거 환경이 서로르어떻게 단절시키는지 정확하게 읽었다. 인간의 마음을 헤이리지 못하는 공간은 형태를 걷어 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 안에 들어서면 좀 더 느리게 행동해도, 하릴 없이 머물러도 괜찮을 것 같다. 시간과 공간의 압축이 미덕인 시대에 조금 느슨해지고 여유의 시간을 보내길 바라고 있는지도모른다. 따뜻한 느낌과 긴밀함을 강조하기 위해 조명의 밝기와 색 온도까지 고려한 분위기로 실내를 채웠다. 활기 넘치는 공간의 곳곳에 몸과 마음을 쉬게 할 카페가 많다. 물건을사러 왔지만 얼굴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더느끼게 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장소가 생겼을 뿐인데 그 안에선 생각보다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같은 값이면 더 좋고 아름다운 걸 갖고 싶고, 보고 싶은욕구가 커지는 건 당연하다. 인터넷에서 비롯된 정보 격차의줄어듦이 준 혜택이다. 스마트폰으로 그 격차는 더욱 줄어들어 같은 내용을 모두 알게 된다. 감정과 체험마저 공유되는시대다. 게다가 해외여행의 경험이 늘면서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 멋진 건축과 아름다움이 배어나는 공간에 머물며 생기는 충족감을 경험했다. 멋진 장소의 기대를 스타필드가 앞서 제시하고 체험하게 해 주었다.
더 멀리 보고 느리게 걷게 만들어 머무르게 한 장치의 공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앤트러사이트 서교에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 서로의 말소리도 높지 않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누가 뭐라 하지 않는 침묵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된다. 이장소가 만들어 내는 힘 때문이다. 오래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창 밖에 보이는 풍경이 계속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댓진 공간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숨과 자세를 고르게 하고 스스로 정화되는 안정의 힘으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런 그가 내게 커피의 맛에서 그커피를 ‘어디‘에서 마시느냐로 바뀐 관심의 현장을 보여 주고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곳의 독특함과 분위기를 함께 공감했다.
기존 카페와 전혀 다른 접근의 파격은 상호에도 들어 있다. 앤트러사이트(Anthracite)는 탄소 함유량이 높은 석탄인무연탄을 뜻한다. 예전에 연탄의 재료로 쓰였던 석탄은 검은색의 단단한 돌덩이로, 태백 삼척에서 많이 나던 광물이다.
석탄이 다 똑같은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 이곳저곳을 다녀보니 성분과 탄화 정도에 따라 색과 경도가 다르고, 타는 냄새와 화력에 따라 종류도 여러 가지라는 걸 알았다. 앤트러사이트-무연탄은 품질이 좋은 우리나라의 산물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석탄은 당연히 무연탄뿐이다. 앤트러사이트란카페 이름은 중의적이다. 우리의 기억이기도 하고, 검은색광택이 로스팅된 커피와 겹치기도 하며, 공장의 에너지원이기도 했다. 주인장의 인문학적 감각을 읽을 수 있는 작명은묘한 여운으로 공간의 특징을 드러낸다.

연립주택과 아파트로 둘러싸인 낡은 공장 터의 분위기는 지금도 똑같다. 붙여 놓은 간판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출입문이 화장실 입구와 헛갈리는 이유다. 쇠로 붙여 놓은 앤트러사이트라는 글자는 그동안 녹슬어 원래 그 자리에 붙어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이곳에서 직접 볶는 커피의향은 여전히 풍부하다. 커피 집의 기본인 커피 맛도 훌륭하다. 공간의 분위기만으로 사람을 끌어모으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에서 낡은 공장을 개조한 카페의 원조라 할 ‘앤트러사이트 합정‘이다. 앤트러사이트는 합정점을 성공적으로 개점한 이후 2014년에 제주 한림에 두 번째 카페를 냈다.
지은 지 70년이 다 되어 가는 전분 공장을 개조하였다는데,
나는 아직 가 보지 못했다. 장소의 흔적과 시간의 의미를 지우지 않는 기본 콘셉트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앤트러사이트를 앤트러사이트로 부르지 못한다.
나는 한번 마음에 든 장소를 쉽게 바꾸지 않고 애용한다. 좋은 물건을 찾아낸 이후 애정을 더해 오래 사용하는 심성과도 통한다. 만든 이의 메시지를 읽어 내고 사용자의 용법이 더해져 시대의 흔적으로 남는 즐거움의 순환이다. 서로 필(Feel)이 통하는 공간 디자인도 비슷한 데가 있다.

새것이 아닌 헌것의 존재감이 이토록 짙을 줄 몰랐다. 배장도 요란하지 않다. 필요 최소한의 면적과 두께로 마무리된간결함이 보인다. 세련된 건물에 놓인 작고 간결한 디자인의나무 의자는 균형과 조화를 드러내는 중이다.
앤트러사이트 서교에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 서로의 말소리도 높지 않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누가 뭐라 하지 않는 침묵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된다. 이장소가 만들어 내는 힘 때문이다. 오래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창 밖에 보이는 풍경이 계속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멋진 공간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숨과 자세를 고르게 하고 스스로 정화되는 안정의 힘으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정서적 반응이달라진다. 크다, 넓다와 같은 눈에 보이는 요소만작용하는 게 아니다. 세월의 흔적, 칠해진 페인트의색깔, 빛의 느낌, 요소요소에 심어진 풀과 나무,공간을 채운 냄새까지 영향을 준다. 감각은구체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그 차이를 확연히드러낸다. 경험의 장소와 공간의 분위기가 곧감각의 수용을 이끄는 요인이 된다.
무엇이 아름다움인지,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아는취향은 자신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린 경험에서나온다. 그 경험을 이끄는 바탕은 교양(敎養)이다.

공공시설에서 마주치는 디자인의 수준이 곧 그 사회의 품격을 드러낸다. 도시 구성원들의 심미안이 구체화된 표현인 까닭이다. 세련된 디자인을 수용하고 사용하며 반복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미의식은 당연히 높아지게 마련이다. 짧지만 강렬하게 아름다움을 감각할 수 있는 장소가 전철이다.
멋진 전철을 갖고 있다는 건 결국 도시와 시민의 교양이 높다는 걸 뜻하는 것이다.

매일 보고 이용하는 전철이 친근하고 아름답게 다가와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도시 생활의 시작과 끝은 집에서 떠나 다시 돌아오는 일의 반복이다. 일상이 곧 우리의 삶이다. 삶이 메마르고 지루하지 않도록 즐거움과 아름다움을느끼게 해 줘야 한다. 느껴지지 않는 감각이란 별 소용이 없다.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쾌감으로 다가와야 한다. 아름다움이란 형태를 보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체험해야 제 것이 된다. 전철이 아름답다면 하루의 즐거움 또한 커지게 마련이다.

녹사평역에선 지하철만 타고 내리지 않는다.
지하 4층에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지하 건물의 밑바닥에서 식물이 자란다. 빛이 닿아 생기는 일이다. 숲을 이룰 정로 무성한 식물을 보면 마음까지 안정된다. 녹색의 싱그러움또한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감흥이 전혀 달라질 수 있음을알게 된다.
아름다움이란 결국 그 자리에 있어야만 느끼게되는 감정이다. 지하철역이 카페보다 더 멋진 공간을 연출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일상의 관성을 벗고 잠시 멈추는 여유를 제안한다.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아 쾌적한 휴식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녹사평역에선 지하철만 타고 내리지않는다.
녹사평역은 2000년에 개통된 이래 지금까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역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몇 년전의 녹사평역을 기억하고 있다면 달라진 실내의 모습에 당황할지 모른다. 최근에 정원이 있는 미술관을 표방하며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있다. 역 구내 전체가 미술작품 전시장처럼활용된다. 벽의 타일로 형태와 색채를 보여 주거나 모니터에서 비디오 작업이 펼쳐진다. 개표구 뒤편을 가득 메운 나무더미는 자연을 상징하는 설치 작업이다. 천장에 손으로 짠그물을 이어 능선이 중첩된 숲처럼 보이는 설치 미술이 있다. 의외의 공간에서 만나는 미술품은 신선하다. 공공미술은 은연중에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 그런데 도스또예프스끼가 작가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 정말로 그에게신분증을 요구해야만 할까요? 그의 아무 소설이나 펼쳐 다섯 페이지만 봐도.
신분증 없이도 작가와 상대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을 텐데요.
그리고 내 생각으로는 그에게는 아무 신분증도 없었어요!" (중략)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었어요."
여자가 그렇게 말했지만 썩 확신에 찬 모습은 아니었다.
"반대하오!" 베게모뜨가 열렬히 외쳤다.
"도스토예프스끼는 불멸이오! (중략) 작가는 신분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그가 쓰는 것으로 결정되는 거예요!"
미하일 불가꼬프, 《거장과 마르가리따》

드디어 목숨이 붙어 있는 것도 앞으로 5분밖에는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5분간이 한없이 긴 시간인 것처럼 그리고 막대한 재산이나 되는 것처럼 여겨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 5분 동안에 최후의 순간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을 만큼 충실한 생활을 할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동안에 할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우선 동료들과의 작별에 2분의 시간을 쓰고 이 세상을떠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데 2분 그리고 나머지 1분을 마지막으로 주위의 광경을 둘러보는 데 할당했다는 것입니다.
- 도스토옙스키, 《백치》

어느 책에선가, 네안데르탈인들을 비롯한 앞선 호모종과 사뭇달랐던 호모사피엔스의 최고 발명품이 ‘내일‘ 이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지구에서 명멸해간 수많은 호모종이 그날그날 그 시간만의 삶을 동물적으로 살아갈 때 어렴풋하게나마 ‘내일’이라는 관념을 갖게 된 호모사피엔스는 이어 ‘희망‘ 이라는 관념을 생각해냈을 테고, 긴 안목의 ‘인생‘ 이라는 개념까지 깨닫게됐을 터다. 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발견인가!!

베토벤이 모자를 벗지 않은 채 일군의 귀족들과 마주쳤다고 해서 그것이 곧 그 귀족들은 경멸스런 반동가들이고 그는 찬미할 만한 혁명가임을 의미할 수는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창조하는 자가 지배하는 자보다 더욱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창조가 권력의 우위에 있고, 예술이 정치의 우위에 있다는 것. 작품들은 불멸하지만 전쟁이나 왕자들의 무도회는 그렇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 밀란 쿤데라, 《불멸》

그러나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묘지는 묘지, 그 한 가지 명목만으로 만년 2백만 명의 여행자를 끌어들일 수는 없다. 프랑스 묘지 전문 인터넷 사이트에서 물었다. "당신에게 묘지는 어떤 곳인가?" 응답 결과(2002. 8. 6. 현재), 정원(72.2%), 박물관(26.4%), 기도하는 곳(25%), 산책하는 곳(20.8%), 죽음 (33.7%), 이 중 박물관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페르 라셰즈를 비롯 파리의 묘지는 박물관으로 지정된 문화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여행서에는 미술관과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묘지가 반드시 중요하게 안내되어 있다.
- 함정임,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족은 사사sasa와 자마니zamani라는 독특한 시간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죽은 이를 기억하는 한, 죽은 이는죽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사‘의 시간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그를기억하는 이들마저 모두 죽어서 더 이상 기억해줄 사람이 없을 때 망자는 비로소 영원한 침묵의 시간, 즉 자마니로 떠나게 된다. (중략) 기억은 관계 속에 생성되는 시간이며 또 다른 생의 공간이다. ‘요절‘ 이란 결코 낭만적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찍 세상을등진 이들에게 매혹당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그들과 함께 서서히발효해가기 때문이다.
- 전성원, 《길 위의 독서》

중대한 과학적 진리를 주장한 갈릴레이는 그 진리의 주장 때문에 생명이위태로워지자 자신이 주장한 진리를 너무도 쉽게 부인해버렸다. 어떤 의미에서는잘한 일이다. 그것은 화형을 감수해야 할 정도의 진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지구와태양 중 어느 것이 다른 것의 주위를 회전하느냐 하는 문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일이다. 말하자면 하찮은 문제인 것이다. 반면에,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생각한 나머지 죽는 사람들은 많다. (중략) 그러므로 내가 판단하건대, 삶의의미야말로 질문들 중에서도 가장 절박한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만약 자기 자신을 찾고 싶다면 그토록 즐거움이나 기쁨을 얻어야 할필요는 없을 거네. 되레 죽음을 생각해야지. 이런 생각만이 우리 자신을 인식하게 한다네. (중략) 죽음에 대한 생각은 놀라운 효과가 있네그 사고의 본질 자체로써 모든 것을 파괴하고,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을 보존하고 유지하고, 모든 인간 열정을 물리치게 하네. (중략) 죽음의 이미지를 담지 않은 생각이란 할 수조차 없네.
- 조반니 파피니,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2》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 알베르 카뮈. 이방인-

"내 깊은 내면에서는 ….… 카메라 안에 필름이 없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게 없어요.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은 피사체를 확보하고 정확한 순간에 셔터를 누르는 일입니다.
...… 몇 분의 1초 동안 지속될 뿐입니다. 하지만 그게 창조의 순간입니다."
앤드루 로빈슨, 《천재의 탄생》 중1962년 프랑스 기자와의 대담에서 브레송의 말

... 심지어 남미의 얀 네루다와 인도의 자와할랄 네르Jawaharlal Nehru 까지 모두가 이 세기의 눈의 피사체가 됐다. 또는 (흡사 암살당하기 다섯 시간 전의 존 레논을 찍은 애니 리버비치처럼 암살당하기 한 시간 반 전의 마하트마 간디를 찍었고, 1949년 중국 혁명의 현장에도 사진기를 들고 서 있었다. 그에게 따라붙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브레송의 사진을 흔히 우연과 행운의 결과물로 오해하지만, 그는 늘 치밀한연구와 계획 끝에 현장으로 향했고 만반의 준비 후 순간적으로프레임에 틈입해온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타고난 천재이기보다는 준비된 행운아였던 셈이다.
1940년대 초 브레송은 한 출판업자의 주선으로 〈프랑스 전통을 이어받은 20명의 화가들>이라는 전시에 쓰일 예술가들 사진을 의뢰받았다. 앙리 마티스를 포함해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피에르 보나르 Pierre Bonnard,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등이 선정됐는데 브레송은 누구보다 마티스를 먼저찍기로 한다. 사진 찍히기를 싫어했던 마티스의 작업실에서 그를 찍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가장 인상적이며개성적인 노년의 마티스 모습을 우리에게 남겨줬다.
마티스는 심하게 병을 앓고 있는 데다 사진을 찍히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까닭에 카르티에 브레송은 매우 참을성 있게 결정적) 순간을 기다려야 했고, 그렇게 해서 촬영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마
) 암살당하기 한 시간 반 전의 마하트마 간디를 찍었고, 1949년 중국 혁명의 현장에도 사진기를 들고 서 있었다. 그에게 따라붙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브레송의 사진을 흔히 우연과 행운의 결과물로 오해하지만, 그는 늘 치밀한연구와 계획 끝에 현장으로 향했고 만반의 준비 후 순간적으로프레임에 틈입해온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타고난 천재이기보다는 준비된 행운아였던 셈이다.
1940년대 초 브레송은 한 출판업자의 주선으로 〈프랑스 전통을 이어받은 20명의 화가들>이라는 전시에 쓰일 예술가들 사진을 의뢰받았다. 앙리 마티스를 포함해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피에르 보나르 Pierre Bonnard,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등이 선정됐는데 브레송은 누구보다 마티스를 먼저찍기로 한다. 사진 찍히기를 싫어했던 마티스의 작업실에서 그를 찍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가장 인상적이며개성적인 노년의 마티스 모습을 우리에게 남겨줬다.
마티스는 심하게 병을 앓고 있는 데다 사진을 찍히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까닭에 카르티에 브레송은 매우 참을성 있게 결정적) 순간을 기다려야 했고, 그렇게 해서 촬영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마티스의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했는데, 화가가 카르티에 브레송이 그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까지 방 한쪽에서 조용히 몇 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 앤드루 로빈슨, 《천재의 탄생》

지쳐빠진 네 맵시가, 그림자들과 자기 포기,
아낌없는 사랑 가지고 만드는,
귀여운 무덤, 감각 없는 묘비 위에서 나는,
겸손하게, 다정스레, 죽는다.
네 위에 넘어지고 쓰러져서,
그러나 낮은 무덤의 막힌 잿더미 공간에 이끌려,
내가 그 무덤 위에 쓰러지자마자,
이 겉만 죽은 여인은, 목숨이 되돌아와.
부르르 떨고, 두 눈을 뜨며, 나를 비추고 나를 깨물며,
목숨보다 더 값진 새로운 죽음 하나를여전히 내게서 앗아간다.
폴 발레리, 건성으로 죽은 여인‘, 《발레리 시전집》

내가 태어났을 때 / 나는 울었고 /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 웃고 즐거워하였다.
내가 내 몸을 떠날 때 / 나는 웃었고 /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 울며 괴로워하였다.
‘티베트 사자의 서‘ 중에서

티베트의 지혜를 담은 책에 적혀 있다는 이 구절은 삶(탄생)과 죽음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을 전해줍니다. 셰익스피어 역시그의 비극 《리어왕》에서 "참아라. 모두가 울면서 이 세상에 오지않았는가. 바보들만 있는 이 거대한 무대에 온 것이 슬퍼 운 거야."라며 인생을 통찰했습니다. 태어남이 마냥 행복하고 축복받을 일만은 아닐뿐더러 죽음이 전적으로 슬프고 두려운 것만은아니라는 생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듯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