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미米 자에 팔십팔八十八 자가 숨어 있잖아. 건조한 숫자라도 보기에 따라서 풍부한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어. 아라비아의 숫자 8은 또 어떻고, 옆으로 눕히면 수학의 무한대의 기호가 되지. 그리고 안과 밖이 연접되어 있는 뫼비우스의 띠가 되기도 해. 둘 다 일상의 생각을 뛰어넘는 신비한 세계의 이야기잖아. 한자의 팔도 마찬가지야. 글자 모양을 보면 끝이 열려있어. 그래서 앞날이 환히 열린 개운開運을 상징하고, 그 발음 역시 ‘펼 발자와 같아서 발전發展, 발재發財의 뜻과 통해, 중국 사람들은 자동차 번호나 전화번호에 팔자가 겹친 것이 있으면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해요."

"눈에 선해요. 코로나 때문에 작은 일상의 행복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운 뒤통수가 보이는 것 같아요."
"별것 아닌 모임, 사사로운 오후의 대화, 이런 일상의 작은욕망도 무참히 짓밟혀버린 코로나 팬데믹의 격리 생활, 그게바로 솔제니친의 굴라크 군도 정신병동이거나 안네가 겪었던유태인 구역의 은신처이거나 나치의 집단 수용소 아니겠어. 아니면 전쟁 때의 포로수용소와 방공호 속이거나. 우리는 지금그 같은 격리된 감금의 역사를 살고 있는 거지. 코로나가 아니라도 벌써 그런 상황은 이미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었던 거지.
이 눈물 없는 황무지의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얻었는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가.

"내가 만약 유럽에서 태어났고 누군가 내게 우리 가문의 문장을 만들라고 했다면 나는 이걸로 정했을 거야. ‘왜?‘ 어떻게?‘ 하는 물음표가 있어야 ‘아!‘ 하고 무릎을 탁 치는 느낌표가 생기지. 물음표가 씨앗이라면, 느낌표는 꽃이야."
"어른이 되어서도 물음표는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았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우엉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내 인생은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고 가는삶이었어. 누가 나더러 ‘유식하다, 박식하다고 할 때마다 거부감이 들지. 나는 궁금한 게 많았을 뿐이거든.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여겨도 나 스스로 납득이 안 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어.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오가는 것복하면 산 게 아니지."
어제와 똑같은 삶은 용서할 수 없어. 그건 산 게 아니야. 관습적 삶을 반이 내 인생이고 그 사이에 하루하루의 삶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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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대로 피노키오는 진실이 아닌,
혹은 논리학자들의 표현대로라면 ‘참이 아닌 이야기를 해야만코가 길어진다. 그렇다면 "지금 내 코가 길어지고 있어" 라는 피노키오의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참일까, 거짓일까? 만약피노키오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면 코는 길어지지 않을 것이다.따라서 "지금 내 코가 길어지고 있어" 라는 말은 거짓이다. 반대로 피노키오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면 코는 길어질 것이다. 따라서 그의 말은 참이다. 그렇다. 이것은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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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고 지혜를 쥐어짜서 떠올려보라고, 중심이 여러 개 있고둘레를 갖지 않는 원을, 그렇게 진지하게 피나는 노력을 하고서야 비로소 조금씩 그게 어떤 것인지 보이거든."
"어려울 것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당연하지." 노인은 무슨 단단한 것이라도 뱉어내듯이 말했다. "이 세상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치고 간단히 얻을 수 있는게 하나라도 있는가." 그러고는 행을 바꾸듯 간결하게 헛기침을한 번 했다. "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크림?"

"인생의 크림." 그가 말한다.
내가 말한다.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빠져나갈 때처럼."

어떤 것인지 대충 알겠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더 깊이 생각하다보면 다시 알 수 없어졌다. 그러기를 되풀이한다. 아마 그것은구체적인 도형으로서의 원이 아니라, 사람의 의식 속에만 존재하는 원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를테면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무언가에 깊은 연민을 느끼거나, 이 세상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거나, 신앙(혹은 신앙 비슷한 것)을 발견하거나 할 때, 우리는 지극히 당연하게 그 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되는 게 아닐까 ㅡ 어디까지나 나의 막연한 추론일 뿐이지만,자네 머리는 말일세, 어려운 걸 생각하라고 있는 거야. 모르는걸 어떻게든 알아내라고 있는 거라고,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크림이 되거든.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백발의 노인은 그렇게 말했다. 가을이 끝나가는 흐린 일요일 오후, 고베의산 위에서. 그때 나는 작고 빨간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지금도 여전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 특별한 원에 대해, 혹은 하찮고 시시한 것에 대해, 그리고 또 내 안에 있을 특별한 크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우린 누구나 많건 적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가면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악령의 가면 밑에는 천사의 민낯이 있고, 천사의 가면 밑에는 악령의 민낯이 있어. 어느 한쪽만 있을 수는 없어. 그게 우리야. 그게카니발이고, 그리고 슈만은 사람들의 그런 여러 얼굴을 동시에볼 줄 알았어 - 가면과 민낯 양쪽을, 왜냐하면 스스로 영혼을 깊이 분열시킨 인간이었으니까. 가면과 민낯의 숨막히는 틈새에서살던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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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필리프 J. 뒤부아 외 지음, 맹슬기 옮김 / 다른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새들의 삶에는 우리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크고 작은 소멸과 재생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털갈이가 바로 그 예다. 원래 있던 깃털이 빠지는 이유는 더 아름답고 튼튼한 깃털을 얻기 위해서다. 새들은 이렇게 해마다 자신을 새롭게 하는 법을 배운다. 그 과정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재생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다.

재생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 안에서 무언가가 소멸하도록 놔둘 줄 알아야 한다. 새들처럼 말이다. 낡은 깃털을 건강하게 빛나는 새 깃털로 바꾸기 위해 새들은 소멸을 받아들인다. 사실 털갈이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완벽한 깃털 없이 새는 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인간도 마찬가지다. 털갈이처럼 과거의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발전할 수 없다.

Eclipse4라고 부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빈 시간을 가리키는 멋진 표현이다. 새들은 소중한 깃털이 새로 자라나기를 기다릴 뿐이다. 신중한 태도로, 자신의 나약함을 인식하며, 고요를 흐트러뜨릴 수 있는 움직임은 자제하며, 그렇게 새는 기다린다. 인내한다. 재생이 일어나고 마침내 힘과 아름다움을 되찾을 때까지.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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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과 삼손의 위기는 긍정적인 ‘멈춤‘입니다. 그 멈춤은 이탈리아어로 ‘베네세레 benessere‘라고 하는 세속적인생각, 자기중심적인 자기만족으로부터 우리를 끌어내기때문입니다. 방종한 삶은 불임의 원인입니다. 오늘날 많은 서구 국가가 겪고 있는 인구통계학적 위기는 이기적인행복에 만족하는 문화의 결과입니다. 베네세레‘의 사전적의미는 ‘안녕‘으로, 바람직한 단어처럼 들리는데, 이 단어가 우리가 어떻게든 벗어나야 할 상태를 뜻하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한 깨달음이 우리가 솔로몬과 삼손의 운명에서 얻을 수 있는 주된 교훈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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