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 후 1교시가 시작돼 필통을 열면 아빠가 칼로 정성껏 깎아준연필들이 나란히 누워 있을 때, 안부를 묻기 위해 예쁜 편지지를 골라편지를 쓸 때, 이제는 몸집이 커져 입을 수 없게 된 조끼의 실로 엄마가 새 목도리를 만들어 줬을 때, 여름 밤 정전으로 인해 더워진 몸과마음을 달래려 대문을 나서면 약속이라도 한 듯 모여 있는 친구들을만날 때.
조금 불편하고 조금 느린 이때의 경험들이 과연 지워야만 하는 불편과 가난일까? 무엇이 인간다운 편안한 삶인가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다시 내리게 되었다.
샤프가 나오기 전에는 연필이 최고의 상품이었다. 지금은 시대가바뀌어 다양한 종류의 샤프를 고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필통가득 연필을 넣으면 촌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리지만 아직 연필이 존재하는 한 나는 필통 가득 칼로 깎은 연필을 넣어 다니고 싶다.

멋진 구두를 신을 수 없어 항상 가장 싼 흰 운동화를 사 신었던 우리아빠. 그 싼 운동화마저 제대로 신을 수 없어서 굵은 고무줄로 발등을감싸야만 했다. 아주 어릴 적에는 그런 아빠의 모습이 이상하지 않았다. 아무런 편견이 없었다. 어떤 모습을 하던 그냥 우리 아빠일 뿐이었다. 그러나 사춘기를 지나며 남들이 하는 말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유난히 크게 울리는 아빠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조용히 방에 들어가곤 했다. 아빠는 아팠을 것이다.

세상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어지러운 삶과 비통한 사람들을 떠올리니 이내 이 가난한 삶이 부러워졌다. 그러다 문득 이들의 삶을 어째서가난하다고 여기는 건지 그 알 수 없는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내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사용한 가치만큼 돈을 내기 때문에 절약하는 것이 오히려 궁색하게보였다. 누군가는 환경에 따라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할 것이다. 물이 부족한 곳에서는 아끼며 살고 풍부한 곳에서는 넉넉하게쓰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 넉넉함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인터넷 쇼핑몰을 들여다보며 이미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물건들인데도더 많이 가지려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여행자의 배낭보다도 더 적은 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우리 중 가장 평온하고 여유로워 보였고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있는 것처럼 보였다. 더 가지려 하지 않고 가진 것으로 아껴 쓰며 경쟁보단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내가 희망하던 삶이었다. 그리고 먼 땅의 조그만 동네에서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내게 이런 삶은 희망으로 꾸는 꿈일 뿐이었다. 실제로 가능한 삶이었으나 뜬 구름을 바라보듯 희망사항이라고만 되뇌였을 뿐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확신이 생겼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하는 삶에 대한 그림이 조금 더완성되었다. 그리고 점점 더 용기가 생겼다.

"아니,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보지 않아. 스마트폰이 없는 게 아니야.
그런데 지하철에서도 공원에서도 스마트폰을 계속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어. 젊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곤 하는데 그렇다고계속 게임을 하지는 않더라. 지하철에선 대부분 책을 읽고 공원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나 주변을 바라보고 있어."
얘기를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그러했다. 휴대전화는 전화 걸 용도로만 사용하고 공원에서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지나가는 사람들, 흘러나오는 소리, 새가 나는 모습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멕시코에오기 전 태국에 머물렀을 때, 길에서 상인들이 게임을 하느라 손님이말을 거는 줄도 몰랐던 장면이 떠올랐다. 또 여행을 떠나기 전 한국의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단 한 명,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사람은거의 전부였던 모습도 떠올랐다. 공원에 앉아 주변을 바라보던 사람들과 스마트폰에 매달려 있던 사람들은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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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있잖아요. 차마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버리려고 하는 이 물건이 누군가에겐 정말 필요한 물건일지도 모른다는생각이 들었거든요. 전 그동안 이 물건들을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배낭에 계속 넣고 다녔어요. 그리고 이제야 당신들을 만나게 된 거예요. 당신들이 남미로 내려가게 되면 제 말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비워내기만중요하게 생각했던 내가 누군가를 위해 채워 넣고 짊어지는 것 또한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누군가를 위해 짐을 짊어질 수 있다는 것. 그것만큼 숭고한 행위가 또 있을까.
여행을 하면 할수록 부끄러워지는 나를 대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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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역사에서 모든 종말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다." 아렌트는 우주를 창조한 신이, 이러한 사실을 확인시키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인간이 하나의 생명이 되어 이 우주로 올 때마다, 모든 우주가 새롭게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란, 탄생 그 자체로 우주가 새롭게 시작되도록 하는 기적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따라서 기적이 있다면그것은 우리들 각자의 손에서 시작될 것이다. 인간에게 ‘자유‘란바로 새롭게 시작하는 능력‘이다. 팬데믹이 한 시대를 우연히 끝냈다 할지라도,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라면, 우리는 또다시 새롭게시작할 수 있다.

"록펠러라면 자신의 공장, 철도, 유전 현장이 크고 육중하길 그리고 그것들을 오랫동안 소유할 수 있길 바랐을 수도있다. 그러나 빌 게이츠는 자신이 지난날 자랑스러워했던소유물들과 헤어지는 데 별다른 아쉬움이 없다. 오늘날 이윤을 창출하는 것은 생산품의 지속성과 오래 유지되는 신뢰가 아니라, 생산품의 순환과 재활용, 노화와 폐기와 대체과정이 지닌, 그 경탄해 마지 않을 속도다. (…) 오래가는들을 혐오하고 피하며 순간적인 것들을 아끼는 이들이 오늘날 높은 신분과 권력을 갖게 되었다. 온갖 어려움에 맞서자기 수중에 있는 보잘 것 없고, 하찮고, 일시적인 소유물들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그 역할을 하길 바라며 필사적으로억지를 부리는 이들은 저 밑바닥에 있다."

요즘 여러분들이 가장 많이 듣는 표현 중 하나가 ‘잉여‘라는 말이죠. 처음엔 여기저기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을 향해
‘잉여‘라고 지칭하는 걸 보며 깜짝깜짝 놀랐는데, 이제는 정말 무감각해질 정도로 많이 쓰이는 말이에요. 이 ‘잉여‘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넘쳐 나서 쓸모없다.‘는 뜻이죠. 그 넘쳐 나서 쓸모가없는 사람들, 다시 말해 자본도, 국가도, 동료 시민도 애착을 갖지못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생겨나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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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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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과 김원영은 각자의 몸을 둘러싼 테크놀로지와 세계를 관찰하면서과연 누가, 어떤 방식으로 사이보그가 되는지 묻는다. 이들은 ‘장애인을 위한따뜻한 테크놀로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테크놀로지와 사회가어떻게 재설계되어야 하는지 상상하고 제안한다. 그 재설계는 깜짝 놀랄만한 테크놀로지가 나올 50년 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 장애인의 삶을 중심에두고 시작되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소수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와 그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질문한다.
자신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사회가 보는 시선으로 자기 밖에서 자기를바라본다. 이 이중 삼중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괴물‘ 그리고 ‘사이보그‘ 이다.
그러나 ‘괴물들은 또한 안다. 그 ‘괴물 됨‘의 경험이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사유하고 질문하게 함을, 『사이보그가 되다』를 읽으며 상상한다. 모두가각자의 방식으로 일어나고, 걷고, 듣고, 보고, 말하고 춤추는 장관을 각자의방식으로 자신의 상태에 따라 도움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는영토를, ‘결여‘가 아닌 ‘압도적인 고유성‘을 가진 이 아름다운 ‘괴물들‘의시끌벅적한 축제를! - 김보라 (영화감독)

그러나 과학이 장애에 관한 정체성 물음을 ‘장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네가 인간이며, 조만간 그 장애는 극복될 것이므로 너는 더 온전한 인간 공동체에 포함될 수 있다고전제하는 이상, 장애 그 자체의 의미를 규정하지identify 않는다는점을 성찰해야 한다. 과학이 장애를 여전히 ‘없음의 상태(결여)’로만 바라본다면 휠체어는 기술적으로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여전히 보행 능력 ‘없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보조기기로만 간주될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더 발전된 휠체어를 타고 더 많은 일을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를 더 크게 결핍된 존재로 생각할지 모른다.

커다란 기계위에 앉은 유인원의 모습을 한 나를 없음(결여)’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있음‘에 해당하는 존재로서 만나려는 순간, 과학기술은 장애를 가진 내가 최첨단 휠체어나 로봇 외골격을 장착한 채 계단을 오르고, 장애의 유전 가능성은 철저히 소거된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장애 언론 비마이너』에 실린 「농인이 왜 음성 언어로 말해야하는가?‘라는 글은 이 광고를 보는 농인 및 청각장애인의 입장을 보여주는데, 가족들이 수어를 배워 김씨와 소통하기보다 김씨가 ‘말을 하고 듣기를 바란 것은 전형적인 청능주의Audism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밖에도 많은 농인과 청각장애인들이 농인에게 목소리를 선물한다는 발상의 청인 중심적인 관점을 비판했다.

무엇보다 ‘인간적인 기술‘을 홍보하는 이 영상들은 장애와 기술에 대해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지워버린다.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실제로 이 기술을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어려움을 맞닥뜨리는지, 이 기술이 정말로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인지와 같은 질문들 말이다. 사람들은 영상에서 장애인이 목소리로 말하는 순간, 소리를 듣는 순간, 휠체어에서 일어서는 순간을 볼 뿐 평소에도 음성 합성 기술이 소통을도와주는지, 처음으로 들은 소리가 정말로 기쁨인지 아니면 불쾌함인지, 웨어러블 로봇이 일상에서도 사람들을 걷게 하는지는볼 수 없다. 연출된 영상은 감동과 희망을 보여주지만, 현실은연출 바깥에 있다.

주체란 일종의 테크놀로지다. 마크 와트니와 같은 주체로 자신을 계발해야만 친절하지 않은 행성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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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난방 장치를 수리한 나이 든 보일러공 이야기와 같다. 보일러공은 난방 장치를 수리하기 전, 고객에게 질문을 몇 개던진다. 그리고 장치에 귀를 기울이다가 작업복에서 망치를 꺼내어 파이프 하나를 세게 친다. 그러자 난방 장치가 다시 작동한다.
이 모든 과정에 걸린 시간은 고작 몇 분이었는데, 그는 고객에게80만 원을 청구한다. 화가 난 고객은 망치 한 번 쓴 일에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달라고 한다며 보일러공에게 항목별로 금액을 청구해달라고 요구한다. 보일러공은 대답한다. "망치 사용값 8만 원, 어디를 두드려야 할지 아는 값 7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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