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과 김원영은 각자의 몸을 둘러싼 테크놀로지와 세계를 관찰하면서과연 누가, 어떤 방식으로 사이보그가 되는지 묻는다. 이들은 ‘장애인을 위한따뜻한 테크놀로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테크놀로지와 사회가어떻게 재설계되어야 하는지 상상하고 제안한다. 그 재설계는 깜짝 놀랄만한 테크놀로지가 나올 50년 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 장애인의 삶을 중심에두고 시작되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소수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와 그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질문한다. 자신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사회가 보는 시선으로 자기 밖에서 자기를바라본다. 이 이중 삼중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괴물‘ 그리고 ‘사이보그‘ 이다. 그러나 ‘괴물들은 또한 안다. 그 ‘괴물 됨‘의 경험이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사유하고 질문하게 함을, 『사이보그가 되다』를 읽으며 상상한다. 모두가각자의 방식으로 일어나고, 걷고, 듣고, 보고, 말하고 춤추는 장관을 각자의방식으로 자신의 상태에 따라 도움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는영토를, ‘결여‘가 아닌 ‘압도적인 고유성‘을 가진 이 아름다운 ‘괴물들‘의시끌벅적한 축제를! - 김보라 (영화감독)
그러나 과학이 장애에 관한 정체성 물음을 ‘장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네가 인간이며, 조만간 그 장애는 극복될 것이므로 너는 더 온전한 인간 공동체에 포함될 수 있다고전제하는 이상, 장애 그 자체의 의미를 규정하지identify 않는다는점을 성찰해야 한다. 과학이 장애를 여전히 ‘없음의 상태(결여)’로만 바라본다면 휠체어는 기술적으로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여전히 보행 능력 ‘없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보조기기로만 간주될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더 발전된 휠체어를 타고 더 많은 일을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를 더 크게 결핍된 존재로 생각할지 모른다.
커다란 기계위에 앉은 유인원의 모습을 한 나를 없음(결여)’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있음‘에 해당하는 존재로서 만나려는 순간, 과학기술은 장애를 가진 내가 최첨단 휠체어나 로봇 외골격을 장착한 채 계단을 오르고, 장애의 유전 가능성은 철저히 소거된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장애 언론 비마이너』에 실린 「농인이 왜 음성 언어로 말해야하는가?‘라는 글은 이 광고를 보는 농인 및 청각장애인의 입장을 보여주는데, 가족들이 수어를 배워 김씨와 소통하기보다 김씨가 ‘말을 하고 듣기를 바란 것은 전형적인 청능주의Audism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밖에도 많은 농인과 청각장애인들이 농인에게 목소리를 선물한다는 발상의 청인 중심적인 관점을 비판했다.
무엇보다 ‘인간적인 기술‘을 홍보하는 이 영상들은 장애와 기술에 대해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지워버린다.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실제로 이 기술을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어려움을 맞닥뜨리는지, 이 기술이 정말로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인지와 같은 질문들 말이다. 사람들은 영상에서 장애인이 목소리로 말하는 순간, 소리를 듣는 순간, 휠체어에서 일어서는 순간을 볼 뿐 평소에도 음성 합성 기술이 소통을도와주는지, 처음으로 들은 소리가 정말로 기쁨인지 아니면 불쾌함인지, 웨어러블 로봇이 일상에서도 사람들을 걷게 하는지는볼 수 없다. 연출된 영상은 감동과 희망을 보여주지만, 현실은연출 바깥에 있다.
주체란 일종의 테크놀로지다. 마크 와트니와 같은 주체로 자신을 계발해야만 친절하지 않은 행성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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