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미리 체험하는 것은, 아니 미리 죽는 것은 삶의방식을, 존재의 방식을 바꾼다. 주어진 세계에서 사물처럼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나의 관심이나 목적에 따라 세계를 만들며살아가는 본래적인 자유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게 한다. 죽음을 미리 체험하는 실존적 결단을 통해 본래적인 삶의 방식으로돌아오면, 죽음은 모든 것을 잃게 하는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방식을 바꾸면서 세계를 ‘나의 세계‘로 고유하게 드러내는 창조의 원천이 된다. 나는 본래적인 나의 삶을 살아가는 온전히홀로 선 실존하는 존재가 된다.

뼈만 남았으니 노인은 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소유의 관점에서 보자면 물고기가 없어졌으니 노인은 결국 물고기를 못 잡은 셈이다. 그러나 물고기 fish는 없어도 노인에게는 물고기를 잡는 fishing 체험이 남았다. 어쩌면 노인이잡으려 한 것은 큰 물고기 자체라기보다 큰 물고기를 잡는 위대한 삶 또는 그러한 삶을 향한 의지가 아니었을까. 그에게 소중한 것은 물고기라기보다 물고기를 잡는 행위였다.

많은 사람이 산다는 것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대부분은 물고기에 관심이 있다. 성취하고 소유하는 데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성취와 소유만 추구하면 내가 소유한 것만남고 정작 나의 삶, 나의 존재는 없다. 나의 삶이나 그 삶을 사는 나의 존재는 목적이 아니라 성취하고 소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주인과 손님이 뒤바뀐 셈이다.

다이너마이트의 원조인 화약은 중국에서 발명되었다. 처음에 중국인들은 화약을 멋진 불꽃으로 세상을 빛내는 폭죽으로 사용하며 삶을 즐겼다. 하지만 소유가 중요해지자 화약을 남의 땅을 강제로 빼앗아 소유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삶은 다이너마이트다. 엄청난 에너지 그 자체다. 이를 서로 다투어 뺏고 뺏기며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얻는 수단으로 쓰기보다BTS처럼 나의 삶과 존재와 세상을 아름답게 빛내는 멋진 불꽃으로 쓴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멋질까?

삶의 아름다움은 억대 집과 자동차를 소유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신발을 신고 우유한잔을 마시고 드럼을 치고 노래를 부르고 전화하고 아이스티를 마시고 탁구를 치고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하며 수다를 떨고 새벽이 올 때까지 미친 듯 춤추며 일상을 사는 데 있다. 평크와 소울로 도시를 빛내는 데 있다. 삶은 샤이닝shin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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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여행은 그곳을 보여주는 것이아니다. 그곳을 통해 기존의 장소와 상황을 바라보는 다른시선, 다른 견해를 갖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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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의 모든 길들은 바다를 향한다.
오름으로 가는 길도, 산으로 가는 길도,
숲속으로 가는 길마저도 바다를 향하고 있다.
바다로 닿아 수평선을 잇는 그 너머의 길.
내가 산티아고의 아주 먼 길을 오래 갈 수 있었던 힘.
사람에게 가는 길, 결국 나에게 돌아가는 길,
그것이 서귀포의 길이었다.
당신이 가고 있는 그 어떤 길도 하찮은 길은 없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이 바로 세상의 중심이다.
서귀포의 중심에서 나는 외친다.
"그 길로 계속 가라."

길이 사람을 바꾸고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걸어본 자들은 알리라.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가슴에 저마다의 아름다운 길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걸어만 가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길들을마음 안으로 자신만의 길들을 내고 있었다. 참 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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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서로 한 손, 다섯 손가락을 부딪는 건 하이파이브, 두 손, 열 손가락을 모두 부딪는 건 하이텐이라 한다고 합니다. 두 여성의 하이파이브는 이미 자주 해왔던 듯 호흡도 잘 맞고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녀들이 참으로 당당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맥주잔 앞에 놓고 한번 따라해보고 싶은 인생 동작. 그러려면 먼저 그걸 받쳐줄 만한 기쁘고 신나는 일과 친구가 있어야겠죠.

물 좋아하는 식물이라면 ‘연꽃이며 수련, 개구리밥, 부레옥잠’ 같은 수초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수초가 아닌데도 이름에 ‘물’이 들어갈 정도로 물 좋아하는 식물도 많습니다. ‘물달개비, 물배추, 물채송화, 그리고 물수선화며 물봉선……’ 모두 이름대로 물 좋아하고 그래서 물 흔한 여름에 핍니다.
그 꽃 이름들 들여다보자니 사람에겐 없을 것 같은 ‘물씨’ 성을 아는 이름들 앞에 얹어보게 됩니다. 물경미…… 물정혜…… 물민석…….
언제부턴가 이름 앞에 ‘물’을 얹는다든지 물로 본다는 말은 소신이나 존재감이 너무 없는 사람을 뜻하거나 그 사람을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말로 쓰이죠.
그러나 물꽃 이름들을 들여다보고 있어설까요. 이름 앞에 물씨 성을 얹자 그 이름을 바라보는 마음도 그 사람들도 더없이 순하게 맑아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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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넓은 세상에서 나보다도 더 구름을 잘 알고 나보다도 더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혹은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나에게 보여다오."

공중전화부스 앞의 긴 줄 맨 끝에 서서 초조한 마음으로 줄이 빨리 줄어들기를, 앞사람의 통화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려본 기억이 혹시 있으신지요.

그 기억 때문에 한동안은 텅 빈 공중전화를 보면 무조건 들어가서 누구에게든 전화를 걸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젠 공중전화를 사용했다는 사실조차 낯섭니다. 길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공중전화부스도 무용지물의 버려진 폐공간 같아 보입니다.

유럽에선 그곳을 미니도서관이나 물고기들이 노니는 어항으로 바꾸기도 한다고 합니다. 영국의 어떤 마을에선 그곳을 아예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미니펍으로 바꿨죠. 딱 한 사람만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그 일인용 펍에서 술 한잔 마시고 싶어하는 마을 사람들이 많아 공중전화 펍 앞에는 늘 길게 줄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줄 선 김에 서로 안부 인사도 나누고, 이런저런 얘기와 마을 정보도 나누니 무용지물의 공중전화가 오히려 직접대화기 역할, 사랑방 역할을 하는 셈이랄까요.

우리의 공중전화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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