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 박준의 시를 읽는 마음
박준 지음 / 난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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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그것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김수영은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 인상적인 것은 시라는 말자리에 다른 낱말을 넣어도 뜻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자유를넣든 혹은 사랑이나 이별이라는 말을 넣든 말입니다.

한국 현대시의 역사는 이제 백 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학창시절 국어 시간을 잠시 떠올려보면 우리는 이 현대시를 자유시라는 이름으로 배웠습니다. 시조 등 이전의 정형시와는구별되는 새로운 것. 형식이든 내용이든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것. 다만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은 자유도 아니고 시도 아니라는 것. 자유라는 말 안에는 나와 너는 물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들까지 공존해야 한다는 것.

시를 읽는 순간은 문득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오를 때와 닮았다. 예감도 기색도 계기도 없었는데 딱히 골똘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어떻게 이 생각을 떠올렸지? 하고 스스로 기특함이 들 정도의 생각, 거창하고 대단하지는 않지만 살갑고 세심해서 성글기만 했던 내 지난 시간의 빈 곳을 채워주는 생각.

이를 위해서는 잦아들어야 한다. 비어 있어야 한다. 내가 나인 것이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내 삶 주변의 숱한 거짓 사이에서도 진실한 마음 하나가 까치발을 들고 서 있어야 한다.

세상 아름다움은 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는 것이다.
우리는 한 번도 아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잊고 사는 날이 많았을 뿐.

아름다움에 한발 다가가거나 손을 뻗어 당겨오는 것.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힘은 언제나 나의 안녕으로부터 온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1938~)
1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느긋하되 늘어지지 않는, 편안하되 흐트러짐 없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결국 스스로가 기다리고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야 한다. 너무 긴 기다림은 종종 상대를 향한 원망으로 변할 위험이 있기에. 그렇다고 해서 긴 기다림을 환상으로 바꾸어서도 곤란하다. 멀리 있는 것들은 끝이없고 기다림은 다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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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거나, 반대로 나의 정제되지 않은말이 누군가를 아프게 할 때에도 박준의 문장을 찾았다.
그의 글에서 적절한 말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사람의 태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문장.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살아남는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을나의 언어가 ‘가시 박힌 말‘이 아니라 부디 ‘따뜻한 말‘ 이기를.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또읽었다.

물리적으로 따지면 하루 중 시인으로 사는 시간,
그러니까 시를 쓰거나 시적인 것을 끄적이거나 시적인생각을 하는 시간은 길지 않아요. 10분에서 30분? 그런데 이 시간은 귀해요. 다른 글쓰기와 달리 내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하는 유일한 일이거든요. 짧더라도, 이게 있으면 나머지 시간을 견딜 수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에 기울이는 시간이 없으면 다른 시간도 무너지는 것 같고요. 그래서 캐릭터 중 가장 적은 시간을 쓰지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시인은.

시인이나 작가라고해서 우리가 잘 안 쓰는 말을 구태여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쓰지 않는 게 아까운 말들이 있어요. 그런말들은 찾아내서 먼지 털어 쓰는 것도 작가의 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조용하다‘를 ‘고요하다‘, ‘고적하다‘, ‘적요롭다‘로 바꿔 쓰면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져요. 어떤 생각을 하나의 단어로만 표현하는 것과열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 건 다르죠.

‘쓰지 않는게 아까운 말‘이라는 표현을 듣자마자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미인(美人)‘이 떠올랐다. 박준 시인에게미인은 ‘아름다운 존재‘를 총칭한다. 세상을 떠난 누이,
옛 애인,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 등이 그의 시에서 ‘미인‘
으로 호명되곤 했다.
미인이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좁은 의미로 오염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탈탈 털어 쓴 측면이 있어요. 아름다운 여성을 지칭할 때만 쓸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말이어서 작정하고 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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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쓴 글이 떠올랐다. "나쁜 질문을 던지면 답을 찾아낸다 해도 그다지 멀리 가지 못하게되지만, 좋은 질문을 던지면 끝내 답을 못 찾더라도 답을찾는 와중에 이미 꽤 멀리까지 가 있게 된다"라는 글이.

"세상엔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말할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저는 그 말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해요.
시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대부분 잘 정의되지 않는 것들을 놓고 고민하는 거예요. "시간이란무엇인가가 아니라, "시간은 측정 가능한가?"라고 질문했을 때 인류는 드디어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었죠.
그 일을 한 사람이 뉴턴이고요. 그러니까 뉴턴은 물리학자로서만 위대한 게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한 사람이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을 읽으며 여러 번 밑줄 그은문장이 있다. "죽음이란 원자의 소멸이 아니라 원자의 재배열이다. 이렇게 우리는 원자를 통해 영원히 존재한다."
두렵기만 했던 죽음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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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 과르디니가 묵상한 예수 그리스도
로마노 과르디니 지음, 김형수 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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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생애는 자기 자신 안으로의 끊임없는 침잠이었고 자기 자신을 벗어나는 자기 확장이었으며, 늘 더 높은 자신의 높이로의 자기고양이었고, 자기 의미의 실현이자 
자기 충만의 점유였습니다. 외부를향한 모든 말씀, 모든 행동과 투쟁 역시 자기 자신 안으로, 인간 예수님께서 고유한 자신의 신적 존재 안으로 끊임없이 전진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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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자세가 아름다웠다. 김상욱 교수는 "과학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
이라고 말한다. ‘물포자(물리 포기자)‘인 내가 과학에서삶을 엿볼 수 있었던 이유다.

제가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건,
물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래요. 겸손 떠는게아니라 물리 분야엔 천재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천재들은 남들이 왜 모르는지 잘 몰라요. 자신이 모르는사실을 더 알아가는 게 중요하지, 남이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건 큰 관심사가 아닌 거예요. 반면 저는 이해안 되는 것들이 많은 사람이에요. 직관적으로 납득이안 되면 이해를 잘 못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과학자로서 좋은 성향은 아니에요. 추상적인 사고로도 척척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저는 뭔가가 막히면 고민하는 포즈를 취하며) 이러거든요. 모르는 것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하다보니 더 쉬운 설명법을 찾게 된 거죠.

결과적으로 교수님의 결함이 타인들에겐 큰 축복이 됐군요. 덕분에 대중이 물리에 쉽게 접근하고 있으니 말이죠.
흥미로운 건, 모를 땐 모르는 방식도 여러 가지라는 거예요. 이게 참 놀라운 진리인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번째 문장이 그거잖아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다. 그러나 불행한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유사해요. 아는 사람은 딱 한 가지로 정확하게 아는데 모르는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로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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