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푸(babopu)’, ‘비바포(bibapo)‘, ‘보피파(bopipa)‘ 등의 의미 없는 3음절 단어에서 첫째 음절의 음이 둘째 음절보다 낮으면 음이올라가는 이런 소리를 성인들은 유쾌한 소리로 판단하고 이 소리를 강아지, 아기, 하늘의 사진과 짝짓는다.
하지만 ‘타토쿠(tatoken))
‘디다고(didago)’, ‘도디가(dodiga)‘에서처럼 첫째 음절이 둘째 음절보다 음이 높으면 성인들은 음이 내려가는 이 소리들을 으르렁거리는 늑대, 뱀, 슬픈 얼굴 등의 사진과 짝짓는다. 미국 남자아이들의이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두 음절 이름인 제이콥(Jacob), 윌리엄(William), 이든(Ethan), 마이클(Michael)에서 첫째 음절이 둘째 음절보다 높은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반면, 여자 이름으로 제일인기가 많은 네 개 중 두 개인 소피아(Sophia)와 올리비아(Olivia)는첫째 음절이 둘째 음절보다 음이 낮아서 올라가는 소리로 들린다.
인기 많은 세 가지 자동차의 이름 쉐보레, 렉서스, 마쯔다는 자주사용되는 남자 이름의 소리 패턴을 닮은 반면, 아잘레아, 베고니아, 카멜리아, 카네이션 등 인기 많은 꽃의 이름은 여자 이름의 소리 패턴을 따른다.

초콜릿 케이크를 보면 단맛이 떠오르는 것이 그런 사례다. 아무런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고, 정신적 노력을 하지 않아도이런 연상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의 안토니오 다마시오(Antonio Damasio)는 반복해서 눈으로는 바이올린을보고, 귀로는 그 독특한 음향을 듣다 보면 그 두 사건 사이에 연결관계가 만들어진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바이올린의 사진만 봐도바이올린 연주자의 손동작이 표상되는 운동피질의 뇌 영역을 비롯해서 바이올린 소리에 정상적으로 활성화되는 뇌 영역들이 활성화된다.
두 번째는 교육을 받아야 알 수 있는 의미다. 우리는 왼쪽을 가리키는 주차장 화살표가 왼쪽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이고, 빨간 트럭이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를 내며 달려가면 어딘가에 불이 났다.
는 의미라는 것을 배워야 안다. 언어학자들은 화살표와 사이렌의 의미를 가리키기 위해 신호’라는 단어를 발명했다.

작은 마을에 사는 한 소년의 이야기가 적절한 비유가 대이야기가 적절한 비유가 되어줄것 같다. 이 마을에는 교회가 하나밖에 없었는데 소년은 매일 저오마다 교회 종을 울리는 사람은 정오가 된 걸 대체 어떻게 아느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어느 날 교회 꼭대기로 올라가 종치기에게 정확한 시간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종치기는 매일 아침 자기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난 후 마을로 내려가 시계제작공의 창가에 걸린 시계를 보고 자기 시계를 맞춰 온다고 했다. 소년은 이번에는 시계제작공을 찾아가 그에게 시계의 시간을어떻게 정확히 맞추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시계제작공은 이렇게 대답했다. "난 항상 정오에 울리는 교회 종소리에 내 시계를 맞춘단다."

말은 우리를 깨우치고, 안심시키고,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해줄스 이지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처음 마주하는 경험적 실체소에 존재하지도 않는 불확실성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우리의 과제는 일어났거나 일어날 만한 상당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사건에 대해 기술하는 단어와 문장을 자연적 산물과 상상의 경계를 넘지 않는 의미론적 발명과 가려내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이로운 결과와 강력한 이론적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상력의 힘을무시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매끄러운 말의 세상과 거친 사건의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심오한 차이를 인정하자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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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서운 게 경험이다. 하기 전까지는 막연히 두렵고던 것이 해보고 나니 그 속에 있는 장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해보니 괜찮은 점이 있다는 걸 느끼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직장을 한시적으로 폐쇄하고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시도했던 기업들이 이후에도 이 방식을 계속 적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5년 메르스 때도 재택근무를 시도해본 국내 기업들이 있었지만 잠시였을 뿐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때는 달랐다. 임시적 조처가 아니라,이를 계기로 업무 방식의 전환을 모색하는 기업이 늘었기 때문이다. 마침한국의 대기업들이 2019년부터 조직 문화 혁신, 성과 위주 승진, 수평화,애자일 agile을 더욱 적극 받아들이며 한국식 위계구조 중심의 조직 문화에서 탈피하려고 강력하게 혁신하던 중이었다. 그동안 재택·원격근무확산되지 못한 것이 한국식 조직 문화가 가진 문화적 장벽 때문이었다.
의도치 않게 코로나19가 기업에게 혁신의 계기를 만들어준 셈이

이렇게 100년여 동안 사무실 공간은 눈에 띄는 변화를 겪어왔다. 이건단지 공간의 변화만이 아니라 산업 구조와 조직 문화의 변화, 일하는 방식과 사회의 변화 얘기다. 20세기 컨택트 기반의 일하는 방식이 21세기언컨택트 기반의 일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도 이런 변화에 따른 것이다. 재택·원격근무는 결국 진화의 산물이다. 기업이 더 높은 생산성과효율성을 얻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지, 굳이 사무실 나오지 않고서도 일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하는 게 결코 아니다. 언컨택트는 수단이지목적이 아니다.

물리적으론 비대면, 비접촉이지만 네트워크 연결에선 과잉여결에선 과잉 대면, 과잉서 시간 관리와 커뮤니케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원격근무를 위해선 시간 관리와 기이션 관리가 중요하다. 경계를 확보하기 위해 업무시간 외에는 직장과 이부러 연결을 끊는 직원들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원격근무를 위한 법은 아니지만, 프랑스는 2017년 1월 1일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 right to disconnect‘를 발효시켰다. 말 그대로 퇴근 시간 이후에는 회사와 상사로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는다.
2013년 독일 노동부는 업무시간 이후엔 비상시가 아니면 상사가 직원에게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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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contact는 비접촉, 비대면, 즉 사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거나 접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에겐 사람과의 연결과 접촉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를 부정하는 것이 바로 언컨택트다. 언컨택트는 불안하고 편리한시대에 우리가 가진 욕망이자, 미래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메가 트렌드다.
언컨택트는 우리의 소비 방식만 바꾸는 게 아니라 유통 산업을 비롯, 기업들의 일하는 방식도, 종교와 정치, 연애도, 우리의 의식주와 사회적 관계, 공동체까지도 바꾸고 있다. 우린 지금 언컨택트의 시대를 맞이했다.
단어가 주는 첫인상 때문에 오해하면 안 된다. 언컨택트는 서로 단절되어 고립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 연결되기 위해서 선택된 트렌드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불안과 위험의 시대, 우린 더 편리하고 안전한 컨택트를 위해 언컨택트를 받아들이는 것이지, 사람에게 사람이 필요없어지는 것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가진 연결과 접촉의 방식이바뀌는 것일 뿐, 우린 앞으로도 계속 사람끼리 연결되고 함께 살고 일하는 서로가 필요한 사회적 동물이다

컨텍트 시대의 종교는 지도자의 권위를 중심으로 강화된다. 예배나 설교를위한 공간은 좌석 배치만 봐도 리더를 중심으로 일방향으로 되어있다. 수평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 관계로 일방적 권위가 만들어지기 쉬은 구조인 것이다. 하지만 언컨택트 시대의 종교에선 상호적 관계, 수평적 관계가 중요해질 수 있다. 일방적 권위가 아니라 신뢰에 따른 존중이더 중요해진다는 말이다. 기존 종교의 방식에선 이것이 분명 단점이 될수 있다. 하지만 넘어서야 할 숙제다. 당장은 아니지만 가야 할 방향임은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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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이것은 몽테뉴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던 질문,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를 보완하는 아주 중요한 주제다. 앞의 주체(knower)가 인간인 경우에는 이 질문이 특히 중요하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단어,
수학적 개념, 추론을 덧붙이고, 감각의 산물에 논리적 연역을 가하는 존재는 호모 사피엔스뿐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두 개념이 사실은 각각 진리의 한 측면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 이둘은 직접적으로 충돌하지 않으면서 각자 사실들을 표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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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애도(사별의 슬픔을 극복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종교관보다 지금까지 살면서 인생을 얼마나 자신의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겨왔는지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하이테크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뭔가를 통제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연습이다. 그리고 바로 죽음은 인간의 우월성에 대한 절대적인 한계에 직면하게 한다. 죽음은 그 어떤 자연법칙보다 강력하게 우리 역시 우주의 여러 규칙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게끔 한다. 죽음은 우리를 지식의 한계와도 직면하게 한다. 이 일에누군가 책임이 있다면, 대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알아낼 수없기 때문이다. 왜 이 사람이 죽었는가?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왜 이렇게 일찍 또는 왜 이렇게 끔찍하게?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느끼는 얼토당토않은 부당함의 책임을 우리는 대체누구에게 물을 수 있을 것인가?

빛나는 지성인 루이스는 애도과정에서 지적 교만을 버렸고, 대신에 훨씬 더 포괄적인 지혜를 선물로 받았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종종 애도를 통해 그의 가치관이 변했다.
고 말한다. 전에 중요하게 보였던 것들이 갑자기 그리 중요하지않은 것이 되고, 전에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중심으로 들어온다.

초월의 경험은 스펙터클한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당사자의 사고 지평을 더 넓혀주고, 선입견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준다.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은 이 제 이런 특별한 감각적 인상을 자신의 신앙이나 세계관으로 편입하려고 할 것이다. 기독교건, 불교건, 이슬람교건, 힌두교건 또는 무신론자건 상관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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