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애도(사별의 슬픔을 극복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종교관보다 지금까지 살면서 인생을 얼마나 자신의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겨왔는지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하이테크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뭔가를 통제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연습이다. 그리고 바로 죽음은 인간의 우월성에 대한 절대적인 한계에 직면하게 한다. 죽음은 그 어떤 자연법칙보다 강력하게 우리 역시 우주의 여러 규칙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게끔 한다. 죽음은 우리를 지식의 한계와도 직면하게 한다. 이 일에누군가 책임이 있다면, 대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알아낼 수없기 때문이다. 왜 이 사람이 죽었는가?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왜 이렇게 일찍 또는 왜 이렇게 끔찍하게?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느끼는 얼토당토않은 부당함의 책임을 우리는 대체누구에게 물을 수 있을 것인가?

빛나는 지성인 루이스는 애도과정에서 지적 교만을 버렸고, 대신에 훨씬 더 포괄적인 지혜를 선물로 받았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종종 애도를 통해 그의 가치관이 변했다.
고 말한다. 전에 중요하게 보였던 것들이 갑자기 그리 중요하지않은 것이 되고, 전에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중심으로 들어온다.

초월의 경험은 스펙터클한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당사자의 사고 지평을 더 넓혀주고, 선입견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준다.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은 이 제 이런 특별한 감각적 인상을 자신의 신앙이나 세계관으로 편입하려고 할 것이다. 기독교건, 불교건, 이슬람교건, 힌두교건 또는 무신론자건 상관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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