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덕이 뛰어나면, 그 외형은 잊히기 마련이다. 사람이 잊어도 되는 것을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는 것, 그야말로진짜 ‘잊음‘이라 할 것이다.
-「덕충부」

사람의 외형은 타고나는 것이며, 일반적으로 이 외형적인모습은 수많은 변화의 가능성을 지닙니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적인 수양은 전적으로 그 자신의 마음가짐과 노력 여하에달려 있지요. 이 두 가지 표현이 밖으로 드러나면, 하나는 외모의 아름다움이 되고, 다른 하나는 기질의 아름다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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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서 일어나는 이 과정을 알아챌 기회가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북적이는 방에서 한쪽 구석에 있는 누군가가 당신 이름을부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해보자. 뇌에서 그 방 안의 수많은 대화를 걸러내고 당신의 안녕에 중요할 수 있는 대화를 알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뇌는 우리를 위해 이야기를 만든다. 우리를 둘러싼혼란스러운 정보를 추려서 중요한 정보만 보여준다. 이처럼 서사를 이용해서 복잡한 내용을 단순하게 만드는 방법은 기억에도 적용된다. 인간의 기억은 삽화적’(무질서한 과거를 인과관계가 있는 지극히 단순한 순서로 경험하는 경향)이고 ‘자전적이다.

우리 주위의 넘치는 정보가 뇌에서 단순한 이야기로 변환되는과정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려면 스토리텔링의 주요 원칙을 알아야 한다. 뇌의 이야기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구조를 따른다. 기억이든 종교든 혼령들의 전쟁이든, 뇌는 뒤죽박죽인 현실을 한 가지 사건이 다른 사건을 유발하는 단순한 논리로 재구성한다. 인과관계는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근간이며 뇌는 원인과결과를 연결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자동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제 실험을 해보자. 바나나. 구토,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Kahneman 교수는 방금 전에 당신의 뇌에서 일어난 현상을 이렇게설명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당신의 마음은 자동으로 시간의 순서를 전제하고 바나나와 구토라는 단어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상정하여 바나나가 구토를 일으키는 대략적인 시나리오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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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전례 없는 인류의 자연 침범, 그리고바이러스에게 역대 최고의 전성기를 제공하는 공장식 축산과인구 밀집, 지구 온난화. 이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어냈다. 이를 반성하고 고치는 것이 생태백신이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 앞에서 지금까지 삶의 자세를 성찰하고 자연과 공존하며, 기후 변화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행동백신이다. 생태백신과 행동백신 없이는 어떤 방역체계와 화학백신도 바이러스 팬데믹의 재발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
최재천

"현 사태는 주객이 전도된 경제체제의 모순을폭로하고 있다. 무한 이윤 추구와 성장이라는 수단이 모든 국민을 잘살게 하자는 목표, 즉 공공·복지 · 생명을 앞질러서는안 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시민권에 기반한보편적 복지국가라는 것. 이 두 가지이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로 분류되면서도 국민의료보험이 없는 비효율적 의료복지시스템의 미국, 보수 정권과 극우파 등장에 따른 복지 축소와재정 긴축으로 의료서비스가 부실화된 유럽 국가들의 코로나19 재앙이 그러한 모순을 여실히 보여준다."
장하준

"생존율 높은 길을 선택하는 인간의 DNA는 코로나19 사태로 결국 언택트 문화를 본격화할 것이다. 그것이바로 4차 산업혁명이 가속 페달을 밟게 되는 이유다. 결과는
‘포노 사피엔스‘ 문명으로의 전환이다. 온라인을 통한 초연결사회에서 포노 사피엔스는 영역과 경계 없이 만난다. 팬데믹쇼크에서도 살아남고, 그 안에서 더 넓은 관계를 형성하는포노 사피엔스가 몰려올 것이다."
_최재붕

"현 세계를 떠받치던 체제, 즉 산업의 지구화,
생활의 도시화, 가치의 금융화, 환경의 시장화라는 네 개의기둥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이제 어떤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
새로운 길은 선명하다. 시장근본주의의 극복, 포용적이고 효율적인 민주주의 구축,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방역, 욕망에 대한 질서 부여, 인간 서식지 무한 확대의 방지, 도시적 공간집약화 해소가 그 이정표다. 그 길 위에서 포스트 코로나 문명을 만들어내야 한다. 인류가 붕괴하지 않으려면."
홍기빈

코로나19가 생각의 틀을 바꾼다. 세계적으로는미국 헤게모니의 쇠퇴, 국내적으로는 미국화 신화의 종언을의미한다. 코로나19에 대한 한국의 민주주의 대응 모델은 중국형 권위주의 대응과 일본형 관료주의 대응, 구미형 자유방임대응을 넘어서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한 세대에 걸쳐 위기대응의 공공 인프라를 초토화해온 신자유주의는 더 이상 당연시되지 않을 것이며, 그동안 우리를 지배해온 생각들은 뒤바뀔것이다. 남은 건, 그 생각의 방향을 어디로 향하게 하는가다. 문제는 생각이다.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 22세기는 오지 않는다."
김누리

"원트want에서 라이크like로 행복의 척도가 바뀐다. 코로나19 사태를 낳은 지금의 문명은 사회가 주입한 경쟁, 비교의 원트를 기반으로 한다. 원트에는 만족감이 없고무한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원트를 정당화하고 제도화한 문명은 원트를 더 갖기 위해 찌르고 파괴했다. 인류는 사회가 심은 원트가 아닌 내가 정말 좋아하는 라이크로, 새로운 행복의 척도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라이크는 만족감을낳는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고, 더 적은 것으로 함께 공존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만든다."
김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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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도인답지 않게 이런저런 이유로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를 단호히 거절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게다가 아주 사소한 이유 때문에도 다른 사람들을사랑할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물론 우리가 그들을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우리 마음에 그들을 받아들이고 의심 없이 완전히 터놓고 그들을 대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에들지 않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그들에 대해 자비롭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어떤 냉담함과 의심, 그리고심지어 경멸조차도 감추고 정당화하기 위해 ‘자애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냉혹한 거부로 인해 응징을 받는다.
행복은 우리가 거부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받아들임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어떠한 형태의 행복이든 거부하는 방어적 거부 논리에얽매이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삶을 복잡하게 한다. 만일 사람이몹시 편협하면 결국에는 그것이 모든 행복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우리가 늘 ‘가치‘라는(누구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고 누구는그럴 가치가 없다는 잣대를 쓰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누구는 의롭다고 하고 누구는 받아들일 가치가 있고 누구는 신자들에 의해 묵인될 수 있는지에 대한(그것은 얼마나 가당찮은 생각인가!) 간접적인 질문조차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암암리에 의미한다. 그런데도 세상은 유다인들,흑인들, 신앙이 없는 자들, 이단자들, 공산주의자들, 이교도들, 광신자들 같은, 자신들이 거의 묵인할 수 없는 사람들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음을 아는 신자들로 가득하다.
하느님께서는 하잘것없는 사람인 나에게, 나의 하찮음과 내 형제들의 하찮음을 잊어버리고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고 우리 모두를 당신의 모상으로 새로 나게 하신 그 사랑으로 감히 전진하라고당부하신다. 그리고 결국은 ‘가치‘라는 가당찮은 생각을 무시하라고 당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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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편지를 받은 샹탈의 변화에 장마르크는 당혹스럽기만 하다.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혹은 누군가가 찬양하고 숭배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샹탈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편지에 진주목걸이가 아름답다고 쓰자 장마르크의 선물이지만 너무화려하다며 자주 착용하지 않았던 진주목걸이를 자랑스럽게 걸고외출하는 것이다. 빨간 옷을 언급했더니 샹탈은 빨간 잠옷을 입고그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여자로 변신한다. 지금 샹탈은 자신의 정체성‘마저 바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진주목걸이를 싫어하던 여자에서 좋아하는 여자로, 붉은색 옷을 경멸하던여자에서 붉은색을 좋아하는 여자로 변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샹탈을 찬양하는 스토커의 편지 내용이 전적으로 그녀와무관한 것은 아니다. 찬양과 숭배의 편지를 쓰기 위해 장마르크는예전보다 훨씬 더 치밀하게 샹탈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스토커의 편지, 그러니까 장마르크의 편지는 샹탈로 하여금망각하고 있던 자신의 매력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것에 지나지않는다. 그렇지만 이 스포트라이트가 샹탈에게 엄청난 자기만족,혹은 자긍심이라는 감정을 부여한 것이다.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보석이 있는지를 알았을 때, 그녀가 어떻게 자신의 삶에 자긍심을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긍심(acquiescentia in se ipso)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활동 능력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금방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다. 내 자신이 충분히 소중하고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타인이 나를 사랑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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