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상호작용은 실재를 공유하면서 그 존중을 강화한다. 모르는 척해주는 익명의 대학생이 고마워서 그를 존중하며 자신을 존중하려 애쓰는 자폐아 부모의 노력을 아는 대학생은 더더욱 무심한 척 책으로 눈길을 돌린다. 타인이 나의 반응에 다시 반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게 되며, 나를 존중하는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다시 존중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대인 나의 두 지인(한 사람은 장애가 있고, 다른 한 사람은 .
한 사람은 없다)은결혼한 사이인데, 어느 날 그들이 함께 택시를 타자 기사가 말해 "세상에 장애인이랑 결혼하신 거예요?
사모님이 진짜진짜 대단하시네. 내 택시 30년 몰면서 장애인이랑 결혼한 여자는 또 처음 보네. 어머니, 아버지도 아시나?
대단하네, 대단해. 택시비 안 받을게요! 아내가 도망가기 전에 빨리 애 낳으세요!"두 사람은 그대로 택시에서 내렸다. 어떻게 더 노련해지란 말인가. 노련함의 가장 고차원적 단계는 바로 이 모든 모욕적 대우로부터 자아를 보호하는 기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가 나를 쳐다보면 나는 먼저 나를 두 개의 나로 분리시킨다. 하나의 나는 내 안에 그대로 있고, 진짜 나에게서 갈라져 나간 다른 나로 하여금내 몸 밖으로 나가 내 역할을 하게 한다.
내 몸 밖을 나간 다른 나는 남들 앞에 노출되어 마치 나인 듯
행동하고있지만 진짜 나는 몸속에 남아서 몸 밖으로 나간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나로 하여금 그들이 보고자 하는 나로
행동하게 하고 나머지 하나의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 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와 나자신이 바라보는 나‘로 분리된다.
물론 그중에 진짜 나는 ‘보여지는 나‘가 아니라 ‘바라보는 나‘ 이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강요를 당하고 수모를 받는 것은 ‘보여지는 나‘ 이므로 바라보는 진짜 나는 상처를 덜 받는다. 이렇게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킴으로써 나는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지 않고 나 자신으로 그대로 지켜지는 것이다.(은희경 ‘새의선물’)

수치스러운 상황을 맞았을 때 눈물을 흘리거나 흥분한 나머지조리 있게 말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행동한다면 수치심은 더 커질뿐이다. 그러니 ‘바라보는 나를 안전한 곳에 모셔다 두고 ‘보여지는 나‘를 지켜보며 냉정을 찾는 것이다. 자아를 둘로 분리하면 ‘보여지는 나를 상황에 맞게 적절히 행동하게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질서를 부수지 않으면서 나의 자존감을 보호하는 전략을 취할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문비나무는 우리에게 죽은 것을 버리라고 가르칩니다. 옳지 않은 것과 헤어지라고 말합니다. 빛을 가리는 모든 행동과 결별하라고 이릅니다. 이는 곧 솔직함, 진정성, 정의, 자비, 화해가 없는 모든 일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울림 있는 삶에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지요. 살아가면서 어떤 부분과 결별해야 하는지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힘과 가치를 앗아가는 죽은 가지를 알아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 뜨는 ‘오리엔트orient’, 즉 동쪽을 기준으로 하면 무한한 공간이 정리되는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이 일어난다. 정원을 만들고, 사원을 짓고, 탑을 세우는 것과 같은 공간 정리의 ‘건축한다bilden’는 행위와 문화적 소양을 갖춘다는 ‘교양Bildung’의 독일어 어원은 같다. 교양이 있어야 혼란스럽지 않고, 불안하지 않게 된다는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