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텔하임은 이 같은 퇴행적 행동이 일어난 이유를 ‘슈필라움’의 부재로 설명한다. 베텔하임의 용어로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결정을 위한 슈필라움Entscheidungsspielraum’의 부재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는 수용소의 삶이 수감자들을 어린아이와 같은 퇴행적 상태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이때 ‘슈필라움’은 ‘심리적 여유 공간’을 뜻하지 않는다. ‘여유 공간’은 오히려 사치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격을 지킬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뜻한다. 모든 것이 다 드러나는 수용소 생활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모든 물리적 공간이 박탈된 유대인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존할 수밖에 없는 ‘벌거벗은 어린아이처럼 되거나, 아니면 죽거나’ 이 두 가지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