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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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이 골라서 이 제목이 무슨 뜻인가 했었다. 한 여자가 실종되고 그 지점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기에 그럼 뭔가 화류계와 관련이 있는 단어인가 했었다. 그러나 책의 첫 장을 넘기자 제목의 오싹한 뜻이 바로 나왔다.

 

 화차 : 생전에 악행을 한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

 

숨이 턱. 첫장부터 책의 분위기가 딱 잡혀버렸다. 지옥으로 가는 불수레라니. 누가 이걸 탔다는 말인가. 형사가 실종된 여인을 찾아가는 긴 과정과  결국 찾기까지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으로 읽었다. 400여 페이지인데 깊이 생각할 필요없이 형사 혼마의 수사 과정을 따라가면 되어서 하룻밤에도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다 읽고 보니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이십년 정도 빨리 경제위기가 왔구나 싶었다. 우리나라도 몇 년전부터 개인파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일본은 1980년대-90년대 초반에 이미 이런 상황을 겪고 지금의 장기침체로 빠져들었군 싶었다. 우리나라도 그럼 일본처럼 단계를 밟아가려나 아무튼.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혼마에게 변호사가 묻던 부분이 인상 깊었다.

  P.130-143,<화차>                                                                                                    혼마씨는 지금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 아닙니까? 세키네 쇼코는 개인파산을 한 여자다. 게다가 술집에서 일하고 있었다니까 돈 낭비가 심했던 건 물론이고 사생활도 엉망이었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인간관계를 더듬어 가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안 그렇습니까? 

(중략) 

"그게 오해라는 겁니다. 현대 사회에서 카드나 은행 대출 때문에 파산에 이르는 사람들 중에는 부지런하면서 겁도 많고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아요. 그런 점을 이해하려면 우선 이 업계의 구조부터 알아야 합니다.

(중략)

"그런 사람들은 도망간다거나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해요. 어떻게 해서든지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고민하다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몸을 망치고, 그보다 더 심한 경우도 당하고.

(중략) .. 성실한 사람일수록 발목이 잡혀 꼼짝도 못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막다른 곳에 다다르면 가장 나쁜 형태로 끝을 보지요. 범죄를 저지르는 거죠. "

(중략) 마찬가지입니다. 다중채무자들을 싸잡아서 "인간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판단하기는 쉽죠. 하지만 그건 자동차 사고를 낸 운전자한테 전후 사정을 전혀 들어보지 않고 '운전실력이 나빠서 그렇다. 그런 인간들한테 면허 같은 걸 줄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과 같은 소립니다.

 

신조 쿄코가 아버지의 부채로 가족이 다 흩어져 살게 되고 어린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결국 빚쟁이들에게 쫒겨 그 결혼마저도 파탄난 과정을 읽을 땐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아 한 겨울에 속옷만 입고 칼바람을 맞고 서 있는 것 같았다. 도서관에서 핏발 선 눈으로 행려자 부고란을 읽던 대목에서도. 짤막짤막하게 추리소설처럼 전개가 빨라 깊이 감정이입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오싹오싹했다.

 

미야베 미유키. 현대사회를 꿰뚫는 눈이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어볼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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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전산 이야기 - 불황기 10배 성장, 손대는 분야마다 세계 1위, 신화가 된 회사
김성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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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빨리 잘 먹는 사람, 청소 잘하는 사람, 목소리 큰 사람을 신입 사원으로 뽑다니 이건 보통 취업준비생들에게는 황당하고 믿을 수 없는 소식일 것같다. 책을 덮으면서는 일본전산이 지금도 이렇게 승승장구하나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2015년 3월을 기준으로 순이익은 33% 증가한 약 6898억원이 될 전망이란다.  만약 이 회사가 문을 닫으면 전 세계의 컴퓨터의 절반이 멈출 거라고 한다. 읽으면서 그냥 창업자가 참 특이하신 분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이쯤되면 정말 대기업 중의 대기업이다. 계열사도 10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창업 초기에 거래처를 뚫으려고 어이없게도 모터의 크기를 무조건 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을 했던 대목. 불가능한 약속이었고 시게노부 나가모리 사장도 하다하다 안되니까 포기하겠다고 말하러 거래처에 갔다가 다른 업체들이 이미 다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자신도 포기하겠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차마 그 말을 못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 사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P.64

다들 기뻐해. 경쟁사들이 다들 손을 털고 나가떨어졌다. 이젠 우리만 남았다. 어차피 승산은 더 높아졌다. 최대한 에너지 절약형으로 만들어내면 가능성이 있다. 아직 15일 정도 남았

으니 한번 끝까지 해보자. 할 수 있어!"  

 

이 말을 듣고 고생하던 직원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상상만해도 실소가 난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결국 죽자사자 매달려 일하자 모터의 크기를 절반까지는 아니지만, 30% 줄이는 데 성공했고, 이것도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는 것.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고 또 함께 노력하자고 독려하는 시게너무 나가모리 사장의 투혼에 깊이 감동되었다. 이 정도가 되면 인생을 즐겨야지 뭐 그렇게까지 열심히 회사에 충성하냐고 빈정대지 못할 듯하다. 노력은 보편타당한 가치이고, 그 결실은 누구에게나 값진 열매이므로.

 

 전체적으로 이 책은 자기계발서의 확장판, 회사편이랄까. 일본전산이라는 작은 회사가 인재들을 키워가고 스스로를 혁신해가며 발전해 온 내용을 담았다. 읽으면서 회사의 이야기이지만, "나"라는 개인에게는 어떻게 적용할까 고민하고 메모하며 읽었다. 나는 이 회사에 지원했다면 채용되었을까, 일본전산 간부들이 신입사원을 혹독하게 훈련시켜 실전에 강한 인재들로 만든다던데, 나도 좀 그렇게 키워주면 좋겠다 하는 우스운 생각도 들었다. 한 자리에 앉아 쭉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의미있고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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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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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쫓기는 작은 새 한마리가 살려달라며 부처님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사냥꾼이 뒤따라 와서 새를 내 놓으라고 하자 부처님이 새의 무게만큼 자신의 살을 내주기로 했는데 아무리 살을 베어 저울에 올려도 무게가 같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뼈가 드러날 때까지 살을 베고 또 베어 올려도 소용이 없자 부처님 자신이 저울의 한쪽에 올라갔고 그제서야 천칭이 수평으로 맞춰지며 하늘에서 기뻐하는 음악소리가 울려퍼졌다고 했다. 새 한마리의 무게가 사람 한 명의 무게와 같다니 어불성설이겠지만 생명의 귀함을 알려주는 데에는 의미있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공허한 십자가>의 이야기는 나카하라의 아홉살짜리 딸이 살해되는 것에서 시작된다. 엄마가 장보러 잠깐 나간 사이에 강도가 들었는데, 아이가 강도의 얼굴을 보는 바람에 살해당한다. 그리고 범인이 잡힌 후 부부가 피고의 사형을 받아내기 위해 법정에서 노력했던 이야기. 강도가 사형 된다고 해도 죽은 딸이 살아나는 것도 아닌데, 부부가 왜 그렇게 사형에 집착하는지가 호소력 있게 묘사된다. 나는 비슷한 경험이 없어서 일련의 내용들을 가슴으로 읽었다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읽었는데 제3자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그럴 법하게 느껴진다. 희생된 생명을 무엇으로 갚을 것인가? 몇년형으로? 벌금으로? 진정한 사죄로? 생명은 생명으로만 갚을 수 있다는 말은 정말이지 설득력이 있어서 읽는 나까지도 사형제도가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P. 188,, <공허한 십자가>

"유족은 단순히 복수를 하기 위해 범인의 사형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 상상해보기 바란다. 가족이 살해당한 사람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견뎌야 하는지....범인이 죽는다고 해서 피해자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유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을 손에 넣으면 가슴 속에 쌓인 응어리를 풀 수 있는가? 사형을 원하는 것은 그것 말고는 유족의 마음을 풀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형을 폐지한다면 , 그렇다면 그 대신 유족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묻고 싶다."   

P. 212, <공허한 십자가>

만약 최초의 사건에서 히루카와를 사형에 처했다면 내 딸은 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히루카와지만, 그를 살려서 다시 사회로 돌려보낸 것은 국가다. 즉, 내 딸은 국가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계획적이든 아니든, 충동적이든 아니든, 또 사람을 죽일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런 사람을 사형에 처하지 않고 유기형을 내리는 일이 적지 않다. 대체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찾아보니 일본은 사형제도가  집행이 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반면에 1997년 이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서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에 속한다고 한다. 검색해서 이런저런 자료를 읽고 나니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너무나 타당한 이유들이 있어서 나는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를 잃은 엄마가 범인이 사형이 확정되지 않는다면 그냥 교도소로 보내지 말고 바로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내가 죽이겠다고 했을 때 그리고 남편이 아내를 마주보며 그러자고 말했을 때 유족 외에 다른 사람이 이 일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구나 싶어 겸허해졌다. 사형 폐지는 쉽게 결론지을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수 년이 흐르고 이번에는 살해당했던 아이의 엄마가 살해된다. (이 부부가 왜 이혼했을까 했는데, 상황을 생각해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서로를 보면 죽은 아이 생각이 너무 나서 같이 살 수가 없었다는 말이 온 몸으로 이해가 되었다.) 전남편에게는 아이 엄마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혹시 이미 사형당한 범인이 아내를 살해한 것이 아닐까 하던 부분에서 이 책이 공포물로 흐르나 싶었는데 사건을 전개하는 방식은 공포보다는 추리물에 가까웠다. 계속 단서를 던져줘서 흥미로웠고, 추측하게 했고, 숨겨진 비밀을 어서 찾고 싶은 마음에 책을 내려놓기 어려웠다.

 

프롤로그에서 나온 사오리와 후미야의 십대시절 첫사랑 이야기가 왜 있었나 싶었는데 결국 그들의 영아살해 이야기로 숨겨졌던 슬프고 무서운 일이 결말에서 드러난다. 이 책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서 지나치게 순진했나. 나는 둘이 알콩달콩 살 줄 알았다. 순수했던 첫사랑의 소녀가 도벽에 빠진 유흥가의 여성으로 재등장할 줄은 몰랐다. 21년이 지나는 동안 그렇게 내내 힘겹고 비참하게 살았을 줄 정말 몰랐다. 그나마 후미야는 소아과전문의가 되어 아이들을 살리며 속죄를 위해 노력했지만, 더 연약한 영혼이었던 사오리가 도벽에 빠지고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살았던 이야기는 내내 마음에 아프게 남았다.

 

사오리. 사오리!  나는 이 사오리가 너무 안쓰럽고 안타깝다. 엄마에 관한 기억이 없는 것도, 초등 4학년까지도 홀아빠가 기르느라 학교 마치면 어린이집에서 지냈던 것도. 어린이집이 문을 닫기 직전에야 아빠가  간신히 퇴근하고 데리러 온 것도. 나도 딸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뇌종양인 서른한살의 젊디 젊은 엄마가 세살짜리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엄마 사랑 없이 자란 소녀가 십대에 첫사랑을 하고, 실패하고, 결국은 갓난아기를 죽여서 한번 들어가 길을 잃으면 나올 수 없다는 숲, 수해(樹海)에 묻을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 결코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다며 도벽에 빠지기까지. 유흥가를 전전하며 자살시도를 여러 차례하기까지. 빨려들어 읽었지만, 내내 슬프고 쓰라린 마음. 이야기를 들어주고, 돌봐주고 싶은 마음. 곁에 있다면 뺨이라도 어루만져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태어나 바로 죽임 당했던 아기의 생명에 대해 차마 깊이 생각하기 어려운 것은 나 또한 엄마이기 때문이리. 핏덩이를 씻기고 품에 안고 젖 물려 바라보는 마음을 알기에 오히려 그 부분에는 마음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너무 감정 이입되어서 갈팡질팡해 질 것  같아서. 그 아가보다는 나는 그냥 십대에 불과했던 사오리와 후미야를 불쌍히 여기는 데까지만 가려고 내 마음에 한계를 정해주었다. 두 사람도 너무 어렸고 어찌보면 둘의 삶으로 아가의 생명의 값을 치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수해(樹海)에서 아기의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의도로 작가가 용서의 손을 내밀어 본 것은 아니었을까. 

 

긴 책은 아니었지만 무거운 주제라 아프고 힘들게 읽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지만, 이 책 한권만으로도 그가 왜 베스트셀러 작가인지 충분히 잘 알겠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허를 찔려 손에서 놓기 힘든 책이었다. 읽게 되어 좋았다. 덮고서도 아직 마음이 다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추스리리. 추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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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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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실학자들 중 한 사람인 이덕무의 서술로 펼쳐지는 그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사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쉽게 쓴 책이라 몇 시간만 집중하면 되는 책이었다. 읽고보니 어른들보다는 역시 어린이에게 훨씬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 저학년도 읽을 수 있을 책이다. 작가 안소영 선생님은 <다산의 아버님께>에서도 확인했들이 역사 속 감춰진 인물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에 참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추천할만한 작가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쓴 책을 어른이 읽어서 살짝 밋밋한 맛에 아쉽기는 했지만, 이덕무라는 분을 조금 더 알게 된 것은 기분 좋은 소득이었다. 또 이덕무의 친구들 박제가, 백동수, 유득공과 스승으로 여겨 존경했던 박지원,홍대용의 자세한 이야기를 알게 되어 정말 횡재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 분들의 책들을 찾아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사 시간에 단편적으로만 들었던 이름과 저서들인데, 이렇게 의미있는 저작들이었구나 하는 마음에 군침이 절로 돌았다. 고전들이라 읽기가 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목록에 올려놓고 한권씩 읽고 서평을 쓰겠다.

 

제목인 "책만 보는 바보"라는 표현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이덕무를 가리키는 말인데, 책에서는 1인칭주인공 시점으로 그의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보게 된다. 서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했고, 조선의 상황은 가난한 반쪽 양반이 살기엔 너무 힘들었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그가 어떻게 간서치(看書痴)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해주었다. 먹을 게 없어서 가족들 얼굴이 병색이 짙은데도 소리내어 책을 읽는 부분에서는 솔직히 좀 밉상이었으나 친구들이 이덕무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야 어찌 읽을만한 책이라고 하겠는가 라며 귀한 새책을 그에게 먼저 가져오곤 했다는 부분에서는 탄식과 동시에 은근한 부러움이 일었다. 그리고 마침내 늦은 나이에 정조 임금에게 발탁이 되어 규장각 검서관이 되었을 때, 책이 가득한 서고에서 온종일 책을 읽을 수 있는 밤이 주어졌을 때 느꼈던 환희는, 아, 그 마음 나도 알지 하는 가슴뻐근한 동지애가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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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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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동안 불편했던 것은 지칠줄 모르는 토마시의 바람기였다. 그가 자신의 사랑은 애정행각과 무관하다고 아무리 주장할지라도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소설은 소설일 뿐 윤리로 재단해서는 안되는 것을 알지만, 테레자를 사랑한다면서도 끊임없이 새 여자들을 만나고 관계를 갖는 게 나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랑에 대한 기만이 아닌가 했다. 혹은 밀란 쿤데라가 제시하는 사랑은 뭔가 다른가 했다. 이 여자를 왜 이렇게 외롭게 하나, 현실에서 이런 사랑을 본다면 나는 정말 기필코 반대해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읽다보니 점점 객관적인 거리를 잃어버리고 결국은 테레자의 슬픔이 내게로 옮아와 나마저 슬퍼지고, 그 외로움에 깊이 빠져들어 버렸다.

 

p28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녀는 오늘따라 유난히 쓸쓸하고 우울해 보이는 강물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강 한가운데서 이상한 물체, 붉은 물체를 발견했다. 그렇다, 벤치였다, 프라하 공원에 무수히 널린 철재 다리 나무 벤치였다.(중략) 그녀는 저게 뭐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왜 프라하 공원의 벤치가 물에 떠내려 가느냐고. 그러나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쳤다. 그들에겐 그들의 덧없는 도시 한가운데로 강물이 수 세기 동안 흐르건 말건 아무 상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다시 물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한히 슬퍼졌다. 그녀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이별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러 색깔을 거느리며 사라지는 인생에 대한 작별.

 

변심한 애인을 계속 만나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있을까. 빨리 헤어지고 싶었다. 내가 테레자가 되어 어서 토마시와 쿨하게 헤어지고 싶었다. 너도 나도 가볍게 삽시다,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지막장을 덮고보니 그가 테레자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겠구나. 사랑이구나., 사랑이구나 ! 멈출 수 없는 여성편력이 그에게 어떤 면에서 중독이었다면, 그래서 그것은 정말 그의 말대로 그냥 두고. 그걸 배제한다면, 처음부터 사랑이었구나.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띄워진 아기처럼 그의 인생에 흘러들어온 그녀. 외과과장의 좌골 신경통에서 피어난 꽃과 같은 그녀. 여섯개의 우연이 합쳐서 그에게 온 그녀. 계속해서 삶의 장소가 옮겨지는 현실이 아무리 시궁창같았어도, 촉망받는 외과전문의에서 유리창 닦는 노동자로 다시 트럭운전사가 된다해도 그녀와 함께 있길 원했던 마음부터 애초에 사랑이었는데 나는 왜 몰랐을까. 왜 의심했을까. 어쩔수 없이 나도 여자로서 테레자와 같은 시선을 가졌던 것같다. 테레자와 함께 상처받은 마음으로 끊임없이 토마시의 사랑을 의심하고 좌절했다.

 

 

그러니 테레자의 고백에 내 마음도 더불어 부끄러워지는 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나와 테레자가 피해자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어쩌면 우리가 가해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마음이 떨렸다.

 

 

 

p. 500,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녀는 트럭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나무 뒤로 몸을 숨겼지만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가슴이 회한으로 묵직해졌다. 그가 취리히를 떠나 프라하로 돌아온 것은 그녀 때문이었다. 그가 프라하를 떠난 것도 그녀때문이다. 여기에서도 그녀는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고 죽어가는 카레닌 앞에서도 차마 털어놓을 수 없는 의심을 하며 그를 괴롭힌 것이다.

그는 그가 자기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속으로 항상 그를 비난했다. (중략)

이제 그녀는 자기가 얼마나 부당했는지 깨달았다. 그녀가 진정으로 토마시를 많이 사랑했다면 그와 함께 외국에 남아야 했다! 거기에서라면 토마시는 행복했을 테고 새로운 인생이 열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를 떠났고 그곳을 떠났던 것이다! 물론 그녀는 그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랑의 감정으로 그렇게 행동했다고 확신했더랬다. 그러나 이 사랑이 계략과는 다른 어떤 것이었을까? 사실 그녀는 그가 귀국해서 자기에게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요정이 농부를 소용돌이 속에 끌어들여 빠뜨려 죽이듯 그녀는 그를 불러들여 더욱 낮은 곳으로 끌고 갔다. 그녀는 그가 위경련을 앓는 틈을 타 시골에 가서 정착하자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녀는 얼마나 교활했던가! 그녀는 그를 시련에 빠뜨렸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자기를 따라오라고 불렀고 결국 그를 이 곳까지 불러들인 셈이다. 머리가 세고, 지치고, 외과의사의 메스를 다시는 쥘 수 없을 정도로 손가락이 굳어버린 토마시. 그들은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 이곳에서 어디로 또 갈 수 있겠는가?

 

작가는 책의 앞부분에서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으로 풀어가자면, 토마시에게는 가벼운 하룻밤의 사랑들이 있고 그의 존재를 흔들고 몰아가는 사랑인 테레자도 있다. 제목에서 작가의 숨은 마음을 찾을 수 있을까? 밀란 쿤데라는 단 한번밖에 살 수 없어 무의미한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걸까? 

 

토마시의 삶의 축. 그 한쪽 끝에 테레사가 있다. 첫만남부터 그녀는 바구니에 담겨 난폭한 강에 띄워진 아기같았다. 그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불멸의 사랑이라도 약속할것만 같은. 그의 손을 꼭 붙잡고 잠드는. 토마시의 삶의 다른 한쪽 끝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있다. 토마시는 끊임없이 여러 가벼운 만남을 갖지만 무거운 추 쪽으로 양팔저울이 내려앉듯이 스르륵 스르륵 깊이 깊이 미끄러져간다. 트럭사고로 죽은 둘의 마지막 모습은 흡사 강물 속으로 가라앉는 작은 배처럼 느껴졌다. 무거운 돌을 안고 깊은 곳에 안착하려 자신들을 내려놓는 것만 같았다. 불의의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마치 그 둘이 선택한 결말인 것만 같았고, 죽음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함께한 사랑을 선택했으므로 이것이 마치 해피엔딩인것만 같아 이상했다. 가벼움과 무거움이 공존해서 때론 이것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 알쏭달쏭하다. 마음의 고민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p.16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는 마당의 더러운 벽면을 바라 보면서 그것이 정신병인지 사랑인지 분간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진정한 남자라면 당장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이지만 그는 머뭇거리면서 자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그녀가 죽으면 자기도 따라 죽으리라 확신하고 여자 발치에 무릎을 꿇은 순간)으로부터 모든 의미를 박탈하는 자신을 책망했다.

그는 한없이 자책하다가 결국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 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작가 자신도 삶이 이렇게 뒤엉켜 어떤 것이 무거움이고 가벼움인지 ,혹은 어떤 것이 더 가치있고 선택할만한 것인지 판단을 미룬채 독자에게 던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선택한다면, 내게 선택하라면 나는 아마 무거움을 선택하지 않을까. 여럿을 의미없이 만나는 것보다 한 사람을 깊이 만나는 것을 선택할 것 같다. 토마시도 사실 그런 게 아닐까. 테레자와의 시골행을 선택한 것이나 취리히에서 프라하로 돌아온 것도. 그 자신이 가벼움을 선호하고 변호하지만 결국은 무거움으로 기울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작가도 그런 의도로 쓴 게 아닐까 조심조심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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