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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 개정판
스티브 도나휴 지음, 고상숙 옮김 / 김영사 / 2011년 12월
평점 :
심하게 감정이입이 되는 소설들을 읽다보면 한번씩 정서 환기를 하고 싶은데 그럴 때 읽을 책의 조건은 개인적으로, 1) 흡인력이 없을 것 2) 번역된 건조한 책일 것 3)극적인 반전이 없을 것.
이 책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 딱 그런 책이다. <7년의 밤>을 읽고 감정이 정돈되지 않았는데, 마침 또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책이 <소년이 온다>여서 그 사이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알맞았다. 읽기가 힘들지도 않았고, 가만가만 생각하며 일부러 천천히 읽으니 의미있는 적용도 많이 되어 좋았다.
작가 본인이 실제로 사하라 사막을 여행하고 이 책을 썼는데, 흡인력이 없길 바랬지만, 어느새 나도 그를 따라 사막을 꾸역꾸역 걷곤 했다. 내가 언젠가 사하라 사막을 가게 될까? 그렇진 않을 듯. 그래도 읽고 나니 좀 규모가 작은 사막은 한번 건너보고 싶은 유혹이 들긴 한다. 암튼 제목처럼 인생을 사막의 은유라고 한다면 그걸 어떻게 건널 것인가 하는 게 이 책의 주제. 작가는 여섯가지를 소개하지만. 내게 가장 의미심장했던 한 가지를 꼽으라면 "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였다. 기억해 두고 싶은 몇 부분을 적어둔다.
p.29,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직장을 옮기는 것은 산이지만 직업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사막이다. 아이를 낳는 것은 산이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사막이다. 꿈에 그리던 집을 짓는 것은 산이다. 이혼으로 그 꿈같은 집을 잃게 되는 것은 사막이다. 암을 이겨내는 것은 에베레스트산의 정상을 오르는 것과 같다. 하지만 만성질환이나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
나는 지금 산을 오르고 있는가? 아니면 사막을 건너고 있는가? 동시에 이 두가지를 다 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p. 38,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중년의 사막을 건널 때 분명한 이정표가 보일까? 십대 아이들을 기르면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폐경기가 닥치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미리 알 수가 있을까?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의사의 통보를 받는다면, 또는 결혼 생활이 산산조각 나버린다면, 인터넷에서 안내서를 다운로드받아서 변화무쌍한 모래위를 한걸음 한걸음 착실히 헤쳐 나갈 수 있을까?
p. 73,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우리의 아이들, 배우자, 부모, 친구, 동료는 우리의 생활을 끊임없이 침범하는 침입자가 되기도 한다. 부부나 연인도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부는 아이들과 떨어져 단 둘이 지낼 시간이 필요하다. 주말에는 직장 동료에게 전화를 걸 필요도 받을 필요도 없다. 벽을 쌓는 것은 본인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다.
p. 168,<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몸을 숙이는 것은 사막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이다. (중략)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친숙한 것으로부터 멀어져 용감하게 모험을 하려고 할 때는 다른 사람의 충고나 비판 또는 평가를 피해야 한다. 때때로 스스로의 자아 비판이나 판단도 피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더 엄격해지기 쉽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스스로의 비판 한 마디가 다른 사람이 작성한 평가서보다 더 해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사막을 여행하는 데 필수적인 '바람빼는' 작업을 피하라는 말은 아니다. 겸허해져야 할 때가 되면, 상실한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면, 자아에서 공기를 빼야 한다. 그렇게 해야 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다.
p.194,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이혼이나 슬픔의 사막에는 우리가 신경써서 찾기만 하면 뜨거운 샤워임을 알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오랜 관계나, 가족 생활, 직장 같은 더 큰 인생의 사막과 인생 그 자체에도 경계선이 있어서 지나가는 단계와 이를 다 지나서 극복한 단계를 구분할 수 있다.
자녀 양육의 사막은 절대 끝이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도 우리가 주목할만한 진정한 경계선들이 있다. 막내가 학교에 들어갈 때, 사춘기에 접어들 때, 집을 떠나 독립할 때가 모두 이정표이다. 각 단계는 무언가가 종결됐음을 의미하며, 우리는 그 때마다 방향을 조정할 필요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고 있는 아기를 기를 때과 십대를 기를 때는 나침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이 다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