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쫓기는 작은 새 한마리가 살려달라며 부처님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사냥꾼이 뒤따라 와서 새를 내 놓으라고 하자 부처님이 새의 무게만큼 자신의 살을 내주기로 했는데 아무리 살을 베어 저울에 올려도 무게가 같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뼈가 드러날 때까지 살을 베고 또 베어 올려도 소용이 없자 부처님 자신이 저울의 한쪽에 올라갔고 그제서야 천칭이 수평으로 맞춰지며 하늘에서 기뻐하는 음악소리가 울려퍼졌다고 했다. 새 한마리의 무게가 사람 한 명의 무게와 같다니 어불성설이겠지만 생명의 귀함을 알려주는 데에는 의미있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공허한 십자가>의 이야기는 나카하라의 아홉살짜리 딸이 살해되는 것에서 시작된다. 엄마가 장보러 잠깐 나간 사이에 강도가 들었는데, 아이가 강도의 얼굴을 보는 바람에 살해당한다. 그리고 범인이 잡힌 후 부부가 피고의 사형을 받아내기 위해 법정에서 노력했던 이야기. 강도가 사형 된다고 해도 죽은 딸이 살아나는 것도 아닌데, 부부가 왜 그렇게 사형에 집착하는지가 호소력 있게 묘사된다. 나는 비슷한 경험이 없어서 일련의 내용들을 가슴으로 읽었다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읽었는데 제3자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그럴 법하게 느껴진다. 희생된 생명을 무엇으로 갚을 것인가? 몇년형으로? 벌금으로? 진정한 사죄로? 생명은 생명으로만 갚을 수 있다는 말은 정말이지 설득력이 있어서 읽는 나까지도 사형제도가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P. 188,, <공허한 십자가>

"유족은 단순히 복수를 하기 위해 범인의 사형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 상상해보기 바란다. 가족이 살해당한 사람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견뎌야 하는지....범인이 죽는다고 해서 피해자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유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을 손에 넣으면 가슴 속에 쌓인 응어리를 풀 수 있는가? 사형을 원하는 것은 그것 말고는 유족의 마음을 풀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형을 폐지한다면 , 그렇다면 그 대신 유족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묻고 싶다."   

P. 212, <공허한 십자가>

만약 최초의 사건에서 히루카와를 사형에 처했다면 내 딸은 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히루카와지만, 그를 살려서 다시 사회로 돌려보낸 것은 국가다. 즉, 내 딸은 국가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계획적이든 아니든, 충동적이든 아니든, 또 사람을 죽일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런 사람을 사형에 처하지 않고 유기형을 내리는 일이 적지 않다. 대체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찾아보니 일본은 사형제도가  집행이 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반면에 1997년 이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서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에 속한다고 한다. 검색해서 이런저런 자료를 읽고 나니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너무나 타당한 이유들이 있어서 나는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를 잃은 엄마가 범인이 사형이 확정되지 않는다면 그냥 교도소로 보내지 말고 바로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내가 죽이겠다고 했을 때 그리고 남편이 아내를 마주보며 그러자고 말했을 때 유족 외에 다른 사람이 이 일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구나 싶어 겸허해졌다. 사형 폐지는 쉽게 결론지을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수 년이 흐르고 이번에는 살해당했던 아이의 엄마가 살해된다. (이 부부가 왜 이혼했을까 했는데, 상황을 생각해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서로를 보면 죽은 아이 생각이 너무 나서 같이 살 수가 없었다는 말이 온 몸으로 이해가 되었다.) 전남편에게는 아이 엄마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혹시 이미 사형당한 범인이 아내를 살해한 것이 아닐까 하던 부분에서 이 책이 공포물로 흐르나 싶었는데 사건을 전개하는 방식은 공포보다는 추리물에 가까웠다. 계속 단서를 던져줘서 흥미로웠고, 추측하게 했고, 숨겨진 비밀을 어서 찾고 싶은 마음에 책을 내려놓기 어려웠다.

 

프롤로그에서 나온 사오리와 후미야의 십대시절 첫사랑 이야기가 왜 있었나 싶었는데 결국 그들의 영아살해 이야기로 숨겨졌던 슬프고 무서운 일이 결말에서 드러난다. 이 책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서 지나치게 순진했나. 나는 둘이 알콩달콩 살 줄 알았다. 순수했던 첫사랑의 소녀가 도벽에 빠진 유흥가의 여성으로 재등장할 줄은 몰랐다. 21년이 지나는 동안 그렇게 내내 힘겹고 비참하게 살았을 줄 정말 몰랐다. 그나마 후미야는 소아과전문의가 되어 아이들을 살리며 속죄를 위해 노력했지만, 더 연약한 영혼이었던 사오리가 도벽에 빠지고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살았던 이야기는 내내 마음에 아프게 남았다.

 

사오리. 사오리!  나는 이 사오리가 너무 안쓰럽고 안타깝다. 엄마에 관한 기억이 없는 것도, 초등 4학년까지도 홀아빠가 기르느라 학교 마치면 어린이집에서 지냈던 것도. 어린이집이 문을 닫기 직전에야 아빠가  간신히 퇴근하고 데리러 온 것도. 나도 딸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뇌종양인 서른한살의 젊디 젊은 엄마가 세살짜리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엄마 사랑 없이 자란 소녀가 십대에 첫사랑을 하고, 실패하고, 결국은 갓난아기를 죽여서 한번 들어가 길을 잃으면 나올 수 없다는 숲, 수해(樹海)에 묻을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 결코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다며 도벽에 빠지기까지. 유흥가를 전전하며 자살시도를 여러 차례하기까지. 빨려들어 읽었지만, 내내 슬프고 쓰라린 마음. 이야기를 들어주고, 돌봐주고 싶은 마음. 곁에 있다면 뺨이라도 어루만져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태어나 바로 죽임 당했던 아기의 생명에 대해 차마 깊이 생각하기 어려운 것은 나 또한 엄마이기 때문이리. 핏덩이를 씻기고 품에 안고 젖 물려 바라보는 마음을 알기에 오히려 그 부분에는 마음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너무 감정 이입되어서 갈팡질팡해 질 것  같아서. 그 아가보다는 나는 그냥 십대에 불과했던 사오리와 후미야를 불쌍히 여기는 데까지만 가려고 내 마음에 한계를 정해주었다. 두 사람도 너무 어렸고 어찌보면 둘의 삶으로 아가의 생명의 값을 치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수해(樹海)에서 아기의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의도로 작가가 용서의 손을 내밀어 본 것은 아니었을까. 

 

긴 책은 아니었지만 무거운 주제라 아프고 힘들게 읽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지만, 이 책 한권만으로도 그가 왜 베스트셀러 작가인지 충분히 잘 알겠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허를 찔려 손에서 놓기 힘든 책이었다. 읽게 되어 좋았다. 덮고서도 아직 마음이 다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추스리리. 추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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