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문학과지성 시인선 442
나희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 장을 넘겨 시를 보고 "아아~"하고 감탄했다. 급하게 포스트 잇에 메모하고 다시 읽어보고 넘겼는데, 음. 그 시가 제일 좋았다. 끝까지 읽었지만, 제일 마음을 누르는 시였다. 시인의 또 다른 시집에 있던 시가 떠오르기도 했고. 일단 제일 좋았던 작품이므로 전문을 옮겨본다.

 

--------------------------------------

어떤 나무의 말 

                  나희덕

 

제 마른 가지 끝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습니다. 

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나부끼는 황홀 대신 

스스로의 관이 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부디 저를 다시 꽃 피우지는 마십시오.   

 

------------------------------------------

다시는 꽃피우게 하지 말라는 간절한 마음이 왜 나는 반대로 들릴까. 여전히 불탈 마음의 씨앗이 남아있는 것처럼 들릴까.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까 두려워 스스로를 가두는 마음이 애처롭고 또 조심스럽다. 이미 말랐고, 가늘어질대로 가늘어진, 더 쪼개질 수 없는 시들고 지친 마음을 안아주고 보듬어줄 누군가를 만나시길. 마치 드라마 속 슬픈 여주인공 보며 마음으로 응원하듯이 바라게 되는 시. 

 

이 시를 보며 떠올렸던 시인의 다른 시가 있다. 그건 좀 밝은 시인데. 사랑 앞에 주저하고 조심하는 마음이 비슷한 느낌이 들어 떠올랐던 것 같다. 

---------------------------------------

 찬비 내리고 - 편지 1
                             나희덕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

당신이 힘드실까봐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다니. 이 무슨 어여쁜 사랑의 마음씀씀이란 말인가. 나를 너무 사랑하면 당신이 힘드실까봐 조금 덜 사랑스럽겠다는 말을 이렇게 아름답게 노래하다니. 시인의 사랑은 참, 조심하고 배려하는 사랑이란 생각.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도 좋았다. 지인의 죽음에 대해 연작시 형태로 쓴 시들도 있었는데, 찬찬히 생각해볼 여지를 주는 시들인 것 같았다. 다만 좀 1,2,3부로 나뉜 기준을 잘 모르겠고, 한 권으로 묶인 게 좀 어떤 분류인지 의아했다. 다작하는 시인이셔서 각기 다른 작품들을 다 따로 묶기에 애매했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종 독후감 대회 선정도서라서 읽었는데, 독후감 쓰기에는 어려운 시집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 문예중앙시선 8
안현미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시인의 방을 훔쳐본다는 것은 긴장으로 두근거리는 일. 안현미 시인의 초기 시집을 읽는 것은 마음 떨리게 궁금한 일이었다. 마치 최근에 발견한 한 나무가 몇 년 전에는 어땠는지, 시간이 지나 시인이 나와 함께 늙어가며 더 멋져질지 혹은 같은 진부함에 시들해질지 점쳐보고 싶은 마음이랄까.

지난 달에 읽은 <사랑은 어느 날 수리된다>가 참 너무 좋았는데, <곰곰>을 먼저 쓰고 그 다음이 <사랑은..>이었구나, 그렇다면 초기작보다 최근작이 더 나은, 왕성한 시인이시구나, 이 다음 시집은 더욱 좋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 한편 소개.

 

<거짓말을 타전하다>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더듬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던 날들은 이미 과거였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비키니 옷장 속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할 때도 말을 더듬었다 우우, 우, 우 일요일엔 산 아래 아현동 시장에서 혼자 순대국밥을 먹었다 순대국밥 아주머니는 왜 혼자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어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억울하진 않았다 불꺼진 방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나 대신 잘 살고 있었다 빛을 싫어하는 것 빼곤 더듬이가 긴 곤충들은 나와 비슷했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불 꺼진 방 번개탄을 피울 때마다 눈이 시렸다 가끔 70년대처럼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 우우, 우, 우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벌레가 된 사내를 아현동 헌책방에서 만난 건 생의 꼭 한 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진짜 가족이 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바쳐 벌레가 되었다 불 꺼진 방에서 우우, 우, 우 거짓말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짓말 같은 시를 !

- p.14-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허공에 거적을 펴다 지혜사랑 시인선 111
송수권 지음 / 지혜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등학생 시절 <山門에 기대어>를 처음 읽고 느꼈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라며 가슴 먹먹하게 읇조리던 시가 아직도 기억난다. 시인의 누이가 정말 죽었나, 이 시인의 시들은 다 이렇게 슬픈가, 이렇게 가슴 아파 잊혀지기 어려운가 했었다.

 

그런 깊은 슬픔으로 매료시켰던 감동은 <허공에 거적을 펴다>에서는 찾기 어렵다. 시가 시인의 삶을 투영한다면 그런 깊었던 상처는 이제 좀 잊혀졌는가 싶기도 하다. 평범한 삶을 살면서 시도 평범해졌나, 살짝 아쉬운 마음이 생기기도 하는 시집이다. (첫 쪽 시인의 말에서 송선생님도 이 시집이 일상 생활 속의 느낌을 가볍게 써 본 시편들이라고 말씀하셨다. 역사정신에 천작했던 시들은 다른 시집으로 묶을 예정이라고. 다소 평범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일 듯.)

 

그러나 누가 뭐래도 여전히 "클라스"가 다른 시인임은 틀림없다. 남도 고유의 어휘를 쥐락펴락하는 버릇도 여전하시다. 특히 의성어나 의태어를 써내는 능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시는 듯하다.  "멸치 떼와 갈치 떼가 자글자글 울음 우는 곳" (p.32,<목표역>) 이라고 한다던지 "봄비가 소근거린다"(p.61, <열무밭을 지나다가>) "생흙을 팔 때 싸륵싸륵 그 첫삽 소리"(p.73, <삽>) 같은 말들은 누가 이런 말을 생각해낼수 있나 싶고 소리내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곳곳에 별 것 아닌 소재를 가지고도 시를 써내는 번뜩임도 보인다. 아기띠를 매고 있는 애아빠를 "육아낭"을 차고 있는 "해마의 수컷"이라고 빗댄다던지 (p.23,<해마는 서서 잠든다>)  상사화 꽃을 두고 "미친년들"이라고 "화냥년들"이라고 의인화해버린다던지 하는 발상은 정말 다른 어떤 시인이 이렇게 쓰실까 싶다. 마음 흔들게 예쁘게 핀 꽃을 보고 미친년들이라고 하는 이런 게 너무 좋아서 인터넷으로 상사화 사진을 검색하기까지했다. --;;

 

개인적으로 전문이 다 좋았던 시는 <해마는 서서 잠든다>와 <상사화相思花>였다. 덮기에는 아쉬워서 처음부터 다시 훑으니 여전히 격이 다른 시인. 딱히 버릴 것 없이 다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창비시선 374
안현미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샘님의 리뷰를 보고 얼른 구해 읽었는데, 참 좋았다. 글샘님도 <내간체>가 좋았다고 하셨는데, 나 역시 그랬다. 전체 실린 작품들 중에 이 시가 제일 맘에 들었다. 스마트폰으로 북플에 인용된 전문을 읽을 때 좋구나~ 정도 였지만, 책을 구해 종이에 인쇄된 시를 오랜만에 읽으니 정말, 더욱 좋았다.

 

<내간체>의 첫 연을 읽는데, "행복을 얼음처럼 입에 물고 있"었단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입덧이 심할 때 얼음을 물고 있으면 속이 좀 가라앉는다는 걸 임신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테지만. 애엄마로서, 어떤 면에서 결혼 생활에 지친 같은 여자로서 "너무 서둘러 시집왔나 생각해봅니다 입안이 얼얼하고 간혹 어린 엄마였던 언니가 너무 사무칩니다"는 싯구에 맘이 짜르르 했다. 언젠가 갓 결혼하는 신부를 보며 내 결혼 생활은 너무 누더기 같다는 생각에 서글펐는데, 똑같이 남루한 옷을 입은 이를 본다는 건, 참. 

 

내용도 그렇지만, 시어를 사용하고 활용하는 면에서도 너무나 시처럼 써서 정말 마음에 들었다. 시를 시답게 쓰는 것, 좋다. 요즘은 참 난폭하게 쓰는 분들도 많던데, 나는 그냥 이렇게 얼음-울음-얼얼 뭐 이런 식으로 운율맞춰 쓰는 게 좋더라. 

 

<공기해장국> 도 좋았고, <엄마 2호>도 참 가슴 아프고 좋았다. <이별 수리센터>도 좋았다. <1인가족>, <투명고양이>도 쓸쓸하고 좋았다. 시같은 시어들이, 소리내 읽어보고만 싶은 시들이 많았다. 다음번 시집을 내신다면 꼭 또 읽어보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항 문학동네 시인선 20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적게 먹고 적게 싸는 딱정벌레의 사생활에 대하여

불꽃 향기 나는 오래된 무덤의 입구인 별들에 대하여

푸르게 얼어 있는 강물의 짱짱한 하초에 대하여

가창오리들이 떨어뜨린 그림자에 잠시 숨어들어던 기억에 대하여

 

(중략)

당신한테서 해마다 주렁주렁 물방울 아가들이 열렸다 했네

누군가 물방울에 동그랗게 새겼을 잇자국을 떠올리며

미어지는 것을 내려놓느라 한동안 아팠네

 

간절한 것은 통증이 있어서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 하고 나면

이 쟁반 위 사과 한 알에 세 들어 사는 곪은 자국이

당신하고 눈 맞추려는 내 눈동자인 것 같아서

 

혀 자르고 입술 봉하고 멀리 돌아왔네

 

나 여기 있고, 당신 거기 있으므로

기차 소리처럼 밀려오는 저녁 어스름 견뎌야 하네

 

                                   - p.14<그 집 뒤뜰의 사과나무> 일부

 

 

제목이 아니었다면 누가 알았을까. 당신하고 눈 맞추려는 이라고 할 때 당신이 사과나무 인것을.  안도현 시인은 너무 유명한 분이어서 이런 여리고 아픈 감성은 그 분께 안 어울리지만. (그러나 가난한 시인만 아름다운 시를 쓴다고 누가 장담할까. 이런 시를 썼으므로 이름이 난 것이고, 또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짝이는 시적 감성이 있는 것은 참 감사할 일.)

 

 

시집 한 권을 읽으면 (나의 경우) 서너 편이 감동적인 경우가 많다. 시인이 간신히 간신히 써낸 한 권에서 겨우 몇 편이라니.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 몇 편 때문에 소장가치가 있기도 하다. 안도현 시인의 감성은 여전히도 물방울같이 칼날같이 살아있어서 한 권을 다 읽고 덮으면

"아, 역시 시인은 시인"하게 되는 듯. 고민하고 고뇌한 흔적 한권을 호로록 읽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려놓기에는 시인이 보냈을 불면의 밤이 미안하다. 시인에게 시가 힘들다는 건 직장인에게 직장생활이 힘들고, 엄마에겐 엄마 노릇이 힘든 것과 똑같이 인생의 아이러니한 진실.

 

 

내 사랑은 짝새의 눈알만큼이나 반짝이는 것이었으나, 그러나 내 사랑은 또한 짝새가 날아가는 공중의 높이만큼 날개 아래 파닥거리는, 사무치게 떨리는 귀한 것이었다.

 

(중략)

 

눈썹이 하얗게 센 뒤에 펜을 잡고 한 줄을 쓰고, 열두 밤을 지나 그다음 문장으로 건너간다고 해도

                                 -p.75,<초승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일부

 

 

 

참,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웅장한 시가 있어 마지막으로 한 편 더.

 

저 속수무책, 속수무책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필시 뒤에서 물줄기를 훈련시키는 누군가의 손이 있지 않고서야 벼랑을 저렇게 뛰어내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오 물방울들의 연병장이 있지 않고서야  저럴 수가 없소  

 

저 강성해진 물줄기로 채찍을 만들어 휘두르고 싶은 게 어찌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소 채찍을 허공으로 치켜드는 순간, 채찍 끝에 닿은 하늘이 쩍 갈라지며 적어도 구천 마리의 말이 푸른 비명을 내지르며 폭포 아래로 몰려올 것 같소

 

그중 제일 앞선 한 마리 말의 등에 올라타면 팔천구백구십 마리 말의 갈기가 곤두서고, 허벅지에 핏줄이 불거지고, 엉덩이 근육이 꿈틀거리고, 급기야 앞발을 쳐들고 뒷발을 박차며 말들은 상승할 것이오 나는 그들을 몰고 내변산 골짜기를 폭우처럼 자욱하게 빠져나가는 중이오

 

삶은 그리하여 기나긴 비명이 되는 것이오 저물 무렵 말발굽 소리가 서해에 닿을 것이니 나는 비명을 한 올 한 올 풀어 늘어뜨린 뒤에 뜨거운 노을의 숯불 다리미로 다려 주름을 지우고 수평선 위에 걸쳐놓을 것이오 그때 천지간에 북소리가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 내기를 해도 좋소 나는 기꺼이 하늘에 걸어둔 하현달을 걸겠소

                                           -p25 <직소폭포> 전문

 

아, 이런 숨막히게 호령하는 남성적인 시의 화자. 눈앞에 그려지고 말 울음 소리라도 들릴 듯한 생생한 이런 묘사. 안도현 시인의 감성이 여리다고 누가 말할까. 구천마리의 말을 추상같이 호령하며 달려들 것만 같은 시. 이런 시가 교과서에 실려야지, 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