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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헤아리며 카르페디엠 4
로이스 로리 지음, 서남희 옮김 / 양철북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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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안네마리야, 넌 네가 열마나 용감하다고 생각하니?

삼촌이 갑자기 물었다.....

"용감해야 할 상황이 닥치면 넌 아마 아주아주 용감할 거라고 확신해. 하지만......"

삼촌이 말했다.

"네가 만약 아무것도 모르면 용감해지기가 한결 쉽지. 너희 엄마도 다 아시는 건 아니야. 나도 그렇고. 우린 알아야 할 만큼만 알고 있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겠니?"

안네마리의 눈을 쳐다보며 그가 말했다.

...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너한테는 더 말해 주지 않으러야. 이해하겠니?"

- p. 98-99,

 

 

안네마리는 이 모든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제일 친한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잖아. 엘렌에게 이건 진짜가 아니라고, 비르테 고모할머니라는 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줄 수도 있어. 엘렌이 슬퍼하지 않도록 옆으로 살짝 데려가서 이 비밀을 속삭여 줄 수도 있어.

하지만 안네마리는 그러지 않았다. 엄마가 자기를 보호하듯이 자기로 엘렌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어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왜 관이 거기 놓여있는지 , 그 안에 누가 있는지 전혀 모르지만, 관 속에 고모할머니가 있다고 엘렌이 믿고 있는 편이 더 낫고 더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 101

 

몇 년 전에 원서로 읽었을 때도 너무 감동받아서 메모지에 쓰면서 읽었던 것 같다. 두 번을 읽어도 이 책이 담고 있는 아름다움이 여전히 영롱하구나! 열매도 초등고학년이나 중등 때에 꼭 읽었으면 하는 작가, 로이스 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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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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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가 편한 소설은 아니었다. 앨리시어라는 이국적인 이름도 그랬고, 옷차림 묘사를 보고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으나 남동생이 "형"이라고 부르는 부분에서 당황해 책 맨 앞장부터 다시 읽기도 했다. 작가 황정은씨의 또 다른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가 읽어볼만하다고들 했는데, 이렇게 깜깜한 소설이라면 그것도 별로 입에 안맞을 것 같다. 

 

앨리시어가 엄마를 "씨발년"이라고 부르면서 그 "씨발됨"의 상태를 묘사한 부분들에서는 우리말의 용언이 활용되듯 "씨발이 발아"한다거나 "씨발됨"을 묘사하는 것도 영 불편했다. 가정폭력은 언제든 편한 주제는 아니지만, 끝내 해결되지 않고, 해결의 실마리마저 안 보인채로 이야기가 끝나서 마음이 암담했다.

 

사실 결국 그런 상태의 엄마를 만든 것도 그 엄마의 부모였다. 딸을 몇 시간이고 눈밭에 옷을 벗겨 세워 벌을 준다거나 굶긴다거나 했던 유년을 겪은 엄마는 본인도 그런 부모가 되어 대를 잇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었다. 현실에 당연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읽기 힘들었다. 누구에게 추천하기도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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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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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랑 때문에 죽어버린 이 한 남자를 어쩔 것인가. 사랑이 운명이었던 것처럼 죽음도 운명이어서 그냥 맞이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까.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까. 어떤 비평가들은 제목의 "위대한" 이란 단어가 풍자를 담았다고 한다지만, 내 보기엔 작가도 서술자 닉과 같은 시선으로 개츠비를 보고 있는 것 같다. 한 남자의 순정을, 그게 아무리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비꼬아가면서까지 우습게 만들 이유는 없을 듯. 그러므로 제목 "The Great Gatsby"의 great는 진짜 great한 걸로 두고. 

 

나로 말하면, 나는 운명같은 사랑은 믿지 않는다. 사랑의 시작은 마법같이 빠져드는 운명이었을진 몰라도 사랑의 지속은 약속과 결단과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츠비가 선택한 결정들에 마음 속으로 계속 "나는 반댈쎄~아이고 이런 사랑은 정말 반댈쎄" 했다. 뭐 당연히 내 의견이야 전혀 상관없이 흘러흘러 개츠비는 "붉은 동그라미"(p.228)가 되었지만. 현실에서 이런 사랑을 보게 될까? 매우 회의적이다.

 

1920년대가 미국이 도덕적으로 가장 해이해졌을 때였다고 한다. 톰이나 데이지가 그런 부도덕한 기혼자의 전형이라면, 어쩌면 개츠비는 그와 대비되어 자신의 아내도 아니고 그냥 사랑하는 여인일 뿐인 데이지를 위해 힘겹게 삶을 가꾸고 결국은 죽음까지 불사한 캐릭터.게다가 그 여인은 딱히 그를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진짜 이게 반전. 둘이 서로 사랑한 게 아니었어. 짝사랑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랄까. 왠만해야 짝사랑이라고 해주지. 주는 사람은 목숨을 내던지고 줬는데 받은 사람은 귀히 여기지도 않고, 받은 사실 조차 잊은 허무하고 황당한 사랑이랄까. 데이지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거야 뻔한 사실이지만, 개츠비의 사랑이 그러므로 쉽게 저평가될 수 있는 사랑일까, 하는 질문에는 망설임이 든다.

 

사랑은 돌려받아야 가치있을까. 적어도 연인 사이엔 그런 것 같다. 개츠비의 사랑에 일면 맥이 빠져버리는 이유다. 그는 상호간의 사랑이라고 생각했으나 착각이었다.

 

앞 부분을 읽으면서 좀 쉽게 안 읽힌다 싶은 마음과 줄거리가 좀 산만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인물 묘사가 좀 헛짚는 느낌, 무딘 칼로 그리는 느낌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줄거리에 빠져들었다. 아마 원작의 줄거리 자체가 가진 매력 때문인 것 같다. 민음사에서 뽑아 새로 번역한 클라스의 아우라. 아무렴 그렇겠지. 옮긴 김욱동선생님은 원문에 충실하셨다고 하는데 독자로서는 다른 본을 구해 읽어보고 싶은 아쉬움이 ...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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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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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부활>이 두꺼운 책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마 주인공들의 이름이 길어서였던 것 같다. 여주인공의 이름은 예카테리나 마슬로바인데 보통 카튜샤라고 불리고 심지어 남주인공의 이름은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흘류도프 공작이다. 달랑 세 글자인 이름을 가진 나로서는, 이름부터 시작해서 심리묘사나 상황의 설명이 모두 장황한 이 대작에 대해 서평을 쓴다는 게 조심스럽지만, 뭐 내가 어디에 제출하는 것도 아니고 읽은 내용을 한번 정리할 겸 쓰는 것이니 부담은 좀 내려놓고.

 

1부를 읽으면서는 이래서 걸작이구나 싶던 대목이 많았다. 노년의 톨스토이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짧은 순간을 잘 묘사할 뿐 아니라 그 인생 전체를 통으로 꿰뚫어 알고 있는 누군가가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펼친대도 이런 통찰력은 보통 작가들에게서 보긴 어려울 듯. 처음 사랑에 빠지기 전 남주인공의 마음과 군 복무 후 변화한 그의 심리 묘사는 소설이 아니라 마치 정말 있던 일을 기록한 것같이 느껴질만큼 사실 같았다.

p.94, <부활 1>

네흘류도프는 자기가 사랑에 빠져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예전에 느꼈던 그런 사랑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사랑이 신비롭게 여겨졌고, 스스로에게 고백할 용기도 갖지 못하면서 사랑이란 일생에 단 한번 뿐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가 사랑에 빠진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즐기고 있고, 설사 자기 자신에게 솔직히 말하지 않았다 해도 이 사랑이 어떤 성질의 것이며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를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카튜샤와의 관계가 있은 후 십여년이 지나 네흘류도프 공작이 귀족 집안의 여성과 혼담이 오갈 때의 심리 묘사는 정말 탁월했다. 한 사람을 바라볼 때 기준에 따라 같은 사람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진실인가. 어두운 곳에서 보면 아름다웠던 여인이 밝은 곳에서 보면 추한 여자였다는 것은 작가의 깊은 통찰력을 한번 더 보여주는 대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p. 163. <부활1>

네흘류도프는 미시를 대할 때마다 언제나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흔들렸다. 이따금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거나 또는 달빛 속에서 볼 때처럼 그녀의 아름다운 점만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그녀는 생명력있고 아름답고 지적이고 자연스러운 여성으로 눈에 비쳤다. 그러나 이따금 밝은 햇빛 속에서 볼 때처럼 그녀의 결점이 온통 눈에 띄는 경우가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숨겨진 잔주름이 죄다 보였고 머리 모양이며 비죽 불거져 나온 팔꿈치도 눈에 거슬렸다.

 

법정에서 네흘류도프가 배심원으로 카튜사가 피의자로 십여년만에 재회하게 되는 설정도 참 의미심장하다. 그는 순수하고 영특했던 소녀 카튜샤와 하룻밤을 보내고 백루블을 주고는 아무렇지 않게 떠난 사람이었으므로 그 후 임신한 카튜샤가 결국 유곽을 전전하며 살았던 삶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데, 죄인이 죄인을 심판하는 이 상황이라니! 죄 없는 사람은 없다는, 누구라도 다 죄인이라는 첫 페이지에 인용된 성경 구절의 드라마틱한 버전이랄까.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톨스토이는 이런 주제의식을 책 전반에서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어했던 것 같다. 특히 2부나 3부로 갈수록 점점 더 그러다가 3부의 끝은 결국 마태복음까지 도달한다. 물론 책 맨 앞에도 성경을 인용해서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고 시작하기도 했다. 이 고전의 끝이 결국은 기독교적 사랑이라고 해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 읽으면 무감동할까? 전혀 그렇지 않을 듯. 시대와 종교를 초월해서 의미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에 한 표를 던진다.

p. 216-217,<부활2>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이라든가 인간에 대한 의무를 생각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직무와 의무만을 중요시하여 이를 다른 사람들의 어떤 요구보다도 제1의 조건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네흘류도프는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잠시라도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절대 깨닫지 못한다면, 사람에 대해서 죄를 지으면서도 결코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p. 221, <부활2>

그러나 인간만은 절대로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 해악 없이 음식을 유익하게 섭취할 수 있는 건 식욕이 있을 때 뿐이다. 그렇듯이 해악 없이 유익하게 인간과 사귈 수 있는 건 사랑이 있을 때 뿐이다.

 

유형판결을 받게 되는 과정이나 2부에서 감옥에서 네흘류도프가 억눌린 사람들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들은 약간씩 지루하기도 했다. 톨스토이가 지적하고 싶었던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너무 직접적으로 다뤄서 그랬던 것 같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수준이 낮고 돌려 말하면 수준 높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데, 개인적으로는 늘 은유나 상징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지 좀 그런 면에서는 아쉬웠다. 그래도 읽고 있던 다른 책들이랑 같이 읽느라 좀 산만해져서 그렇지 <부활>만 읽었으면 굉장히 빨려들어 읽었을 것 같다. 새벽에 방해받지 않을 땐 한참씩 몰입해서 읽기도 했었다.

 

그냥 하는 말이지만 혹시 어딘가에 정착하고 한 집에서 오래 산다면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 전집을 백 권 다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좋았다. <부활>은 권할만한 책이다. 긴 이름들을 메모하면서 읽을만한 책이고 서평을 쓰느라 메모했던 페이지들을 다시 들춰보니 새삼 더 선명하고 좋은 작품이구나 싶었다. 나중에 계몽소설 티가 너무 나서 좀 <상록수>읽는 기분이 들어 빵 터져 웃었지만. 좋았다. 다시 읽으라고 해도 또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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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ath Cure: Book Three of the Maze Runner Series (Paperback) Maze Runner
Dashner, James / Random House Childrens Books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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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다. 플레어병에 면역이 있는 몇백명 정도의 사람들이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결국은 해결책.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킨 것이 WICKED의 마지막 전략. 뭐 이런 결말인데, 중2 아이들과 함께 읽기로 했던 것이었기에 그냥 세 권 좀 억지로 읽었다.

 

아이들은 1권만 원서로 읽고 너무 재밌다면서 자기들끼리 한글 번역본을 구해 3권까지 단숨에 읽었단다. 그래도 1권은 원서로 300여 쪽을 읽었으니 그걸로 나는 일단 만족. 다음에도 아이들이 열광할만한 책을 찾아 같이 재미있는 척하고 (십대 소녀들과 삼십대 아줌마가 취향이 같을리가!) 읽어야겠다.그냥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만들면 재미있을, (2편도 곧 개봉한다고) 그냥 판타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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