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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과 마주한 기독교
안명준 외 지음 / 다함(도서출판) / 2020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5쪽
옛 유대인들은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의 큰 원리를 근거로 '질병'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이를 모든 상황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려고 헀습니다. 심지어 우리 주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사역하실 때 그의 제자들조차도 이와 관련해 예수님에게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선천성 시각 장애"에 대한 질문입니다. 제자들은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 9:2)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들은 죄와 병을 기계적으로 연결 시키는데 익숙했었고, 그 논리로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의 경우를 들어 예수님께 질문한 것입니다. 선천적 장애의 원인도 죄에서 찾았는데, 생애 가운데서 장애를 갖거나 병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제자들의 인식은 어느 정도였을지 우리는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큰 원리를 너무 기계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기계적인 적용에 대해 비판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것이 장애를 가진 당사자나 그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 분명히 해주셨습니다.
28쪽
첫째로 우리는 병을 하나님의 심판이나 마귀의 역사로만 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든 병의 원인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인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또한 일부 이단 집단에서 주장하듯이, 모든 병이 다 귀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하면서 귀신을 몰아내야 병에서 낫게 된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해 성경의 온전한 생각을 따라가지 않는 오류를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둘째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병마라는 말도 실은 바람직하지 않은 용어입니다. 이런 말을 사용하고 기도하다보면 무의식 중에 모든 병은 모두 마귀의 작용으로 생기는 것과 같이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평소 사용하는 모든 말을 조심하면서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소위 '명령기도', '선포기도'라는 방식을 사용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선포하거나 명령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겸손히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병을 낫게 해주셔서 주님의 뜻을 깨닫고 행하는 일에 지장을 받지 않게"해달라고, 주님 중심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30쪽
종국적으로, 우리는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더 이상 질병과 죽음이 없다는 것을 특별 계시에 근거해 아는 사람으로서, 그 나라가 속히 임하여 오도록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하더라도 계속해서 온갖 질병이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생겨날 것입니다.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에도 온 세상이 감당하기 어려운 이런 전염병으로 우리들을 괴롭히는 현실을 주목하면서 역사의 마지막 날에 주께서 이 모든 것을 제거해주실 것을 겸손히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병과 고난 그 자체보다,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존하고 바른 관계를 지니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9쪽
문제는 질병이 곧 하나님의 징계라는 기계적 인식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사가 하나님의 수중에 있고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자 운행자라는 점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책임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그 결과 몸과 육체를 관리하지 못한 인간의 책임과, 질병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원칙적으로 간과한 것입니다.
58쪽
인류에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치명적인 전염병들은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사라지는 것일까요?
인류를 위협할 전염병은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전문가는 없습니다. 원래 미생물들은 특정 생물 종만을 숙주로 삼는데, 인수공통감염병은 원래 동물 몸에만 살아야 할 미생물이 종간 전파를 통해 인간을 감염시키며 생긴 병입니다. 가축보다는 야생동물이 문제인데. 신종 전염병이 모두 인수공통감염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인수공통감염병의 병원체는 대부분 바이러스이지만, 세균인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수공통 감염병인 계절독감, 에이즈는 사람 간 전파까지 성공한 후 아예 인간에 뿌리를 내리고 장기적으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유전물질이 DNA 가 아닌 RNA 바이러스인데, RNA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쉽게 일어나 매우 빨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합니다. 인류를 괴롭히는 바이러스는 대부분 RNA 바이러스입니다.
계절독감(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남반구와 북반구를 오가며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연 평균 25만명의 목숨을 거두어가고 있는 가장 토착화에 성공한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입니다. (중략)
독감 바이러스는 전 세계 물새에 흔하게 존재하지만, 물새는 독감에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 돼지, 그리고 닭이 전염되었을 때 주로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종과 종 사이를 이동하면서 변이를 일으키고, 2중 3중으로 감염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1998년부터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을 드문드문 감염시키다가 2009년에는 사람 사이의 감염이 시작되어 전 세계에서 18,5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바로 '신종플루'입니다. 미국 양돈협회의 로비로 '인간돼지 독감' 대신 '신종플루'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얻었습니다. (중략)
에이즈 바이러스는 최근 연구에서 이미 1908년경부터 원숭이, 고릴라로부터 사람들을 산발적으로 감염시킨 것이 밝혀졌고, 1980년대부터 성교와 주사기를 통해 폭발적으로 인간 사이 감염이 시작되면서 3천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도 여전히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숙주를 빨리 죽여 자신도 죽는 에볼라 바이러스와 달리, 에이즈 바이러스는 숙주를 오래 살려서 자신이 증식하는 방법을 찾아내 계속 살아남고 있습니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에이즈 백신은 아직 없고, 시판중인 치료제도 증상을 관리해줄 뿐 완치제는 없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최근 가장 뜨겁게 부상하고 있는 인수공통감염바이러스입니다. 이 바이러스의 보유숙주로는 박쥐가 언급되고 있고, 1930년대 닭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이후 개, 돼지, 조류 등의 동물에서 발견되었으며, 1960년대에는 사람에게서도 발견되었습니다. 원래 가벼운 감기를 일으키는 3대 바이러스 중 하나였는데, 돌연변이된 신종이 나와 2002년 사스, 2012년 메르스를 일으켜 당시 급성 폐렴으로 인한 치사율이 각각 10%, 35%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증세가 없는 잠복기에도 전염력이 있고 전파속도도 훨씬 빠른 돌연변이 신종 코로나19로 드디어 팬데믹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은 1918년 실체를 몰랐던 스페인 독감 이후, 병원체의 존재를 파악했음에도 100년 만에 찾아온 진정한 의미의 팬데믹이고 문명사적 대 사건입니다.
104쪽
우리는 병에 걸렸을 때 의사의 도움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다양한 은덕을 허락해 주셨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의술입니다...(중략) 우리가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은 우리가 추울 때 따뜻한 옷을 입는 것과 또한 먼 곳을 갈 때 차량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차원입니다. 그러므로 아플 때 단지 하나님만 찾고 기도만 하면 된다는 신비주의적 맹신을 가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112쪽
신약은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원칙이고,다른 하나는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 둘은 함께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므로 자기 것을 희생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 그것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동시에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 됩니다. 그러나 코로나 19와 같은 사태에서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는 원칙을 위해 공간적으로 모이는 일을 고집하면,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게 되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해치게 됩니다. 또 그리스도인들이 집합 예배로 인해 감염 확률을 높인다면 이웃에게 불안과 공포, 혐오심을 심어주게 되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교회애 대한 반감이 증폭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118쪽
대역병 혹은 전염병을 말할 때, 중세기 특히 14세기의 흑사병을 생각합니다만, 이런 유의 질병은 그 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전염병은 초대교회 시대에도 창궐하여 교회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 이후만 보더라도 1957년 아시아 독감, 1968년 홍콩 독감, 2002-2003년 사스, 2003-2009년의 조류 독감, 2009년 신종 플루, 2015년 메르스 등이 있었고, 최근에는 중국 후베이성 무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이런 질병이 창궐할 때 그 시대 교회는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121쪽
첫째는 왜 이런 재앙이 일어났는가 하는 재앙의 원인에 대한 설명을 해야 했고, 다른 하나는 재앙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범을 제시해야 했습니다...(중략) 교회는...(중략) .. 도피가 최상의 길이 아니라 보살핌과 배려, 사랑으로 질병을 극복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입니다. 이 점이 이방종교와 그 신봉자들과의 현격한 차이였습니다. 이 때는 데시우스 황제 치하에서 기독교가 조직적인 박해를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적 가치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었던 디오니시우스는 "이교도들은 처음 질병이 발생하자 아픈 자를 내쫒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이 먼저 도망쳤고, 병든 자가 죽기도 전에 거리에 버려지고 매장하지 않은 시신을 흙처럼 취급했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치명적인 질병의 확산을 막고자 했으나 아무리 몸부림 쳐도 도망치기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들과 달랐다고 말합니다.
(중략)
자신이 감염될 수도 있는 죽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실천한 형제 사랑은 이교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생겨난 단어가 '파라볼라노이', 곧 위험을 무릅쓰는 자들'이라는 단어였습니다. 3세기 당시 기독교 공동체가 '파라볼라노이'라는 칭호로 불렸다는 사실은 기독교가 위난자들에게 자기희생적 사랑을 실천했다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126쪽
기근, 흑사병, 전쟁으로부터 오는 죽음의 공포는 루터의 생애를 항상 둘러싸고 있었습니다...(중략) 흑사병으로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죽음'은 회개할 마지막 기회를 주지도 않았기에 못내 안타까웠습니다. 사람들의 편지에는 죽음의 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먼 길을 떠나 여행 할 때에도 죽지 않고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1527년 7우러 루터가 사는 비텐베르크에도 흑사병이 찾아들었는데, 8우러 2일 비텐베르크 대학은 에나로 학생들을 피신시켜야 했지만, 루터는 가족과 함께 비텐베르크에 남아 도리어 흑사병 환자들을 집에 들였습니다. ..(중략) 루터는 비텐베르크시 교회 담임목사 부겐하겐과 두 명의 부교역자와 함께 비텐베르크를 떠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켰는데, 강의와 설교를 했고 장례를 치러야 했으며, 영혼 위로자의 직무를 담당했습니다.
(중략) 루터는 '왼편 죄'와 '오른편 죄'를 나누었습니다. '왼편 죄'는 이웃을 돌보지 못한 채 내팽개치고 도망치는 것입니다. 방치와 피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동적이고 소극적 죄라 할 수 있습니다. '오른편 죄'는 이웃이 병들었을 때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 그들을 조롱하고, 이에 대한 어떤 수고나 도움을 주지 않은 채 방탕하고 유희를 즐기면서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죄입니다. 실상은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들로서, 적극적으로 범하는 미신적이고 광신적인 죄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약품을 창조하셨으며, 인간에게 이성을 주시고, 육체를 돌보고 관리하여 건강하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건강에 적극적으로 유의하지 않으면, 결국은 자신마저도 죽음에 방치하게 되는 자기 살인자가 되며, 남에게까지 무서운 흑사병을 옮겨 이웃을 죽게 만들어 하나님 앞에 살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175쪽
의심의 여지 없지, 만약 종교개혁자들이 이러한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들도 생명을 살리는 것이 우선적으로 강조된 안식일 정신과 관련해 모든 사람의 생명과 관계된 공공의 유익을 위해서 주일 예배의 일시적 중단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주일에 모든 신자가 함께 모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 대신에 각 신자가 흩어져서 가정에서 드린다고 해도, 종교개혁자들이 추구했던 교회론의 입장에서 교회와 예배의 본질을 훼손하거나 변질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92쪽
251년에 키프리아누스 주교가 기독교인이 역병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대해 밝힌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역병과 흑사병이.... 건강한 자가 병든 자를 돌보는지, 친족끼리 서로 사랑할
도리를 하는지, 주인이 병든 노예에게 자비를 베푸는지, 의사가 고통받는 자를
저버리지 않는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207쪽
대부분의 교회가 잘 해도 한 두 교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때 한국교회는 도매금으로 매도당하며 교회의 대사회적인 이미지는 말할 수도 없이 훼손됩니다. 교회가 비상식적이며 이웃과 사회의 안녕은 아랑곳하지 않는 반사회적 집단으로 찍혀 앞으로 전도가 한층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주일 모임을 자제하기로 결정한데는 이웃과 사회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정신이 앞서며, 국가적인 재난을 다함께 극복하는 일에 교회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의도가 깃들여 있습니다.... 주일 예배를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모두 수구꼴통이며 신천지와 다른 바 없는 이들이라고 섣불리 정죄하는 일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역으로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것을 믿음이 없거다 대세에 편승하여 신앙을 타협하는 것으로 비난하는 것도 지양해야 합니다.
222쪽
예배의 공간성과 현장성에 대해서 장로교회 표준문서들 가운데서는 가장 명확하게 명기하고 있는 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입니다. 신앙고백서 제 21장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에서 공인역은 "기도를 비롯해서 예배의 그 어떤 부분도 신약 시대에 와서는 그 어떤 특정 장소에 매일 필요가 없다. 어느 특정 장소가 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을 수 없다. 우리는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신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요4:21)" 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역 교회가 예배당에서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없는 매우 극난한 상황에 놓일 때 각처에서, 혹은 각 가정에서 자신들의 속한 치리회의 지도를 받아 질서 있게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은 정당한 일입니다.... 또한 이런 방식의 예배는 어디까지나 한시적 예배 방식이며, 상황이 종식되면 다시 정상적인 예배로 돌아가야 합니다. 공교회의 예배는 교회가 지정한 한 날에 지역 교회의 자신이 속한 교구의 예배당에 나가 공적 예배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225쪽
가령 문제가 된 신천지 이단처럼, 정보를 숨기거나 국가 보건 단체에 협조하지 않는 등의 반사회적 행위를 하는 이들과는 분명하게 다른 투명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국가과 협력하여 이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는데 가장 앞장을 서며, 사회를 안정시키고 회복하는데 큰 축이 되고 기여하여 공교회의 건강함을 보여주며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따라서 개혁교회와 성도는 신자로서 교회의 신앙지도를 따르고, 동시에 시민으로서 국가의 보건과 방역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227쪽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구조는 비참-구원-감사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비참에 대한 이해로부터 구원의 은혜와 감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전염병과 같은 재난의 상황에서 우리는 비참에 대한 성찰에 도달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재난 앞에선 인간의 비참과 한계를 가르쳐야 하고, 목회자는 성도들을 겸손과 겸비로 이끌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