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밑 악어
마리아순 란다 지음, 아르날 바예스테르 그림, 유혜경 옮김 / 책씨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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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덮고는 내 침대 밑을 들여다 보았다. 악어는 보이지 않았다. 휴, 정말 다행이다. 아직은 내게 병적인 고독이나 소외감이 찾아들 여지가 없는 것 같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책을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한마디로 이 책은 재미 있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결코 재미만으로 읽을 수 없는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많은 현대인들이 안고 살아가는 소외감을 극복하는 과정을 간결한 문체로 풀어낸 소설이기 때문이다. 
아주 평범한 직장인 JJ에게 한 마리 악어가 찾아와 매일 밤 벗어 던진 구두를 먹어치운다. 그것도 아주 내밀한 공간인 침대 밑으로. 그래서 누군가에게 함부로 보여줄 수도 없다. 배려 없는 직장 동료들의 말에 상처만 입을 뿐 진정한 소통은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소외감이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만든 구두를 먹어치우는 악어로 변해 나타난다.
 
열심히 신발을 사 나르면서 악어와 친해지기를 시도하던 주인공은 결국 의사를 찾아간다. 주인공은 너무나 기계적인 처방(흔한 병이기 때문에)에 오히려 안도하면서  약사에게 간다. 약사와의 만남은 악어의 정체를 제대로 알게 해준다. 악어는 바로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고독이었던 것이다.
약을 먹지만  눈물이 계속 흐르는 부작용이 생긴다.  
 
악어병은 약이 아닌 자신 안에 본질적인 치유책이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먼저 고독이나 소외감 등의 감정을 마주보고 마음을 열어야 치유의 기회가 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 엘레나가 찾아옴으로써 JJ에게도 그 기회가 온다. 그녀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고 고민을 털어놓는다. 엘레나 또한 시계를 먹어치우는 악어와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서로 눈웃음을 짓는다. 그러자 모든 것이 먼지처럼 가벼워지면서 악어는 사라진다. 
사실 엘레나는주인공 가까이 있던 사람이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단절이 우울증이나 소외감을 불러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 또한 내 주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독을 즐기는 이라면 절대로 이 책을 읽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읽는 순간 고독이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아주 짧은 분량이기 때문에 사라져버린 고독을 주워담기엔 시간이 늦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즐기고 싶은 고독을 잃었어도 그리 억울하진 않을 것이다.  단순하지만 유쾌한 등장 인물들을 통해 고독을 즐기기보다 마음을 열고 소통하며 사는 인생이 훨씬 즐겁다는 사실을 알았을 테니 말이다. 
무거운 주제의 글을 읽고 나면 머리가 더 무거워지곤 했는데, 이 책은 누군가 불러내 데이트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언젠가 내 침대 밑으로 악어가 찾아온다 해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잘 사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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