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밤 늦은 시간인데 함께 공부하는 학습자의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랑 아내 사이에 갈등이 생겨서 아내가 집을 나가겠다고 한단다.
한국에 온 지 아직 4개월밖에 안 된 며느리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형제들간에 외식을 하는데
며느리가 밥을 안 먹었다.
음식을 먹으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맛있으니까 먹어라" " 배가 아프다"는 실갱이가 오가고 언성이 높아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어머니는 며느리가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이랑 이야기한 후 시어머니랑 한 시간 정도 통화를 했다.
한국말이 짧은 며느리와 한두 마디로 끝나는 며느리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이들이는 시어머니 사이에 긴 벽이 느껴졌다.
속이 많이 상해 있는 시어머니를 충분히 위로해 드리고 다음 날 수업을 하러 가서 며느리를 만났다.
내 예상대로였다.
아직 한국 음식에 적응이 안 된 며느리는 베트남 음식은 정말 맛있는데 한국 음식은 모두 맛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를 비롯해 시누이 등의 가족들은 맛있다며 자꾸만 먹으라고 권했다고 한다.
속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는 며느리는 알고 있는 말 몇 마디로 해결해보려고 했다.
배 안 고파요, 배불러요.
시어머니는 음식을 먹지 않은 며느리가 배부르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억지로 음식을 먹으라고 하면 할수록 며느리는 배가 아팠다고 한다.
싫어하는 음식에 대한 거부 반응이 배가 아픈 증상으로 나온 것 같았다.
내가 베트남에 갔을 때 베트남의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음식들이 얼마나 맛이 없었는지 어머니께 이야기해 드렸다.
정말로 호텔 식당에서 향신료 냄새만 맡아도 식욕이 뚝 떨어지곤 했다.
어머니께 며느리가 한국 음식에 대해 적응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가장 훌륭한 한국어 선생님이니까 열심히 대화를 하라고 말씀드렸다.
결국 맛있는 것은 내게 익숙한 음식이 아닐까 싶다.
며칠 해외 여행을 가면서도 고추장이랑 김 같은 걸 싸 가지고 가는 우리 입장을 생각하면
한국 음식이 맛없다는 그녀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 온 지 3년 정도 지난 학습자의 경우는 한국 음식이 정말 맛있다고 극찬을 한다.
그동안 한국 음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이 시어머니의 경우
며느리가 알고 있는 한국어 어휘를 감안하고
상황과 맥락을 파악해서
'배 안 고파요, 배불러요'를 이해했다면 오해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업을 다니다 보면 마음 급한 한국 가족들과의 사이에서 이런 문제들로 인해 갈등이 생기는 사례가 종종 있다.
갈등 조정 후 3주일이 지났다.
지금은 그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가 다시 좋아졌고 서로 이해하려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 며느리가 가출을 할 수도 있고
내내 고부간의 갈등으로 힘들어질 수도 있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