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전 재미있다! 우리 고전 13
김남일 지음, 윤보원 그림 / 창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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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댁에 갔다가 폭설로 결항되는 바람에 며칠 더 제주에 머물면서 영화 <전우치전>을 보았다. 영화관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이 영화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제목만 듣고 사극 비슷할 거라고만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사극도 현대극도 아닌 퓨전쯤 된다고 할까 뭐 그랬다.  

영화를 본 결론은? 판타지에 몰입이 안 되는 내겐 영화가 너무 길었는데 아이들은 전우치의 매력에 푹 빠져서 전우치 따라쟁이가 되었다. 강동원의 흐르는 듯 리드미컬한 말투...  "저 그림이 어떠하냐~"  "도사란 무엇인가~ 바람을 다스리고~ 비와 눈을 내리게 하는 것이 바로 도사이니라~ 휙~ " 

집에 돌아온 후 창비에서 나온 '재미있다! 우리고전' 시리즈 중 <전우치전>을 찾아 읽었다. 아이들은 영화가 더 재미있었다는데, 나는 책이 훨씬 재미있었다. 영화에서는 현대와 오백 년 전을 왔다갔다 해서 내 정신을 쏙 빼놓곤 했는데, 책에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스토리에 몰입하기가 좋았다. 이러다가 머지않아 아이들 입에서 엄마랑은 세대 차이가 나서 영화 같이 못 본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고전소설 <전우치전>은 원래 하늘 나라에 살던 전우치가 짓궂은 장난을 친 죄로 인간 세상에 태어나게 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후 여우에게 비기를 얻어 혼자서 열심히 도술을 익힌 전우치는 어렵게 살아가는 백성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양반과 임금을 혼내주기 위해 신선이 되어 나선다. 그래서 거만한 선비들을 혼내주고, 억울한 사람들을 살려주거나 도적 떼를 물리치는 등의 이야기가 아줌마 밥하는 것도 잊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영화에서도 이런 점을 좀 부각시켜 부패 정치인을 혼내주거나 부도덕한 경제인을 혼내주는 장면들이 있었더라면 좀더 전우치다웠을 텐데 너무 흥미 위주로만 몰고 간 듯해서 영 아쉽다. 요즘 요괴보다 더 요괴 같은 정치인들, 그리고 그 요괴 믿고 기고만장해진 경제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여!!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그림 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장면이 영화에서는 기술 부족 탓인지 좀 어색하더라만 소설에서는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전우치는 아무리 잘못한 선비라도 반성을 하고 새사람이 될 기미가 보이면 쿨하게 용서하고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화담을 만나 뭔가 이야기가 계속될 듯 잔뜩 기대하게 해놓고는 돌연 화담과 함께 태백산(백두산)으로 사라지면서 소설이 끝나니까 좀 황당했다. 이게 도교의 영향이라나 뭐라나.

책을 읽다 보면 그동안 어디선가 접해 본 듯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만큼 <전우치전>에 매력이 있다는 이야기 같다. 가장 먼저 생각 난 건 그림책으로 먼저 만났던 <신기한 족자> 이야기였다. 특히 책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작품 해설은 재미있다 고전 시리즈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10여 페이지가 넘는 해설에는 작품에 대한 의의부터 출판 배경, 작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세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아주 유익하다.  

그리고 해설 마지막 단락에는 영화 전우치전을 만든 사람들이 이 책의 해설을 읽은 건 아닐까 싶은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런 보물을 그냥 썩혀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갈고 닦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예를 들어 컴퓨터 게임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만화 영화로 만들어내는 것도 각기 한 방법이 아닐까요? 그럴 때 전우치는 도서관 낡은 서고 속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잠만 자는 신세를 벗어나, 늘 우리와 함께 하는 말하자면 우리의 이웃, 우리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을 처음 읽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21세기의 전우치를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지 자못 기대가 큽니다.(131~132쪽)

 
   

우리 아이들은 작가의 바람대로 이미 전우치의 친구가 되었다. 4학년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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