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꾼 릴리 미래아이문고 11
라셸 코랑블리 지음, 박창호 옮김, 줄리아 워테르 그림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요즘 내가 읽은 동화의 대부분은 학교나 가정에서의 아이들 생활을 다룬 작품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주제도 비슷비슷해서 좀 식상한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도 그런 류의 동화 중 하나인 줄 알았다. 하지만 릴리가 진정한 싸움꾼이 되어가는 과정을 읽어가면서 이 동화는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바로 전쟁과 정치에 대해서, 인간의 도리에 대해서 말해주는 동화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전쟁이 나쁘다고 아무리 이야기해줘도 사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들려주는 부모도 전쟁을 겪은 적이 없고, 가까이서 전쟁의 흔적을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가끔 TV에 남의 나라 전쟁 뉴스가 나오지만 잠깐 스쳐 지나가는 그야말로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저학년 동화에서 전쟁을 다룬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는 아이들과의 싸움에서 늘 이기려 하는 릴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쟁을 말하고, 체첸에서 전학 온 친구를 통해 세상에서 전쟁이 왜 사라져야 하는지 깨닫게 한다. 그래서 박진감과 재미까지 있는 이 작품은 저학년 동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릴리는 싸움꾼이다.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는 걸 참지 못하는 릴리는 무조건 아이들을 때려 눕히고 본다. 그러다 보니 덩치 크고 힘센 남자 아이들도 릴리에게 꼼짝을 못한다. 자신이 왜 싸우는지도 모르면서 늘 주먹을 앞세우는 릴리가 러시아와 전쟁중인 체첸에서 아슬란이 전학을 오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아슬란을 만나면서 주먹보다 강한 힘이 무엇인지, 제대로 싸우는 게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체류 허가증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슬란 가족이 프랑스에서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릴리는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아슬란이 공포와 전쟁의 비참함이 도사리고 있는 체첸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릴리는 아슬란과 함께 계속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같은 반 싸움꾼이었던 친구들과 함께 모여 작전을 짰다. 

아이들의 멋진 작전은 바로 학교 앞에서 피켓 들고 시위하기였다. 추방 반대! 아슬란은 우리의 친구! 아슬란의 가족도 우리의 친구! 우리는 아슬란의 가족이 프랑스에 남기를 원한다! 프랑스는 아슬란의 가족을 도와야 한다!

이런 아이들을 지켜보던 선생님은 과연 어떤 행동을 했을까? 빨리 교실로 가서 공부나 하라고 소리 질렀을까? 아마 우리나라 같았으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안 그러면 선생님이 더 먼저 짤릴 수도 있는 사회니까. 하지만 릴리가 사는 곳이 프랑스여서 천만다행이다.  

아이들을 지켜본 부모들은 신문사에 알려서 기사화될 수 있도록 했고, 선생님은 비호권(남을 숨겨주거나 보호해줄 수 있는 권한으로 주로 정치적 망명을 말함)과 인간의 평등, 정의, 관용에 대한 토론 수업을 했으니 말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따로, 교실에서 배우는 공부 따로가 아닌, 서로 소통이 되는 멋진 교육 현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기 때문에 그후 아슬란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따뜻한 교실에서 진짜 멋진 싸움꾼이 된 릴리와 함께 공부하고 있지 않을까!!! 2학년 이상 초등학생 모두가 읽고 전쟁과 정의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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