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군에도 슬로시티가 있다. 슬로시티 청산도가 있는 완도에 살다 보니 장흥에 가서도 슬로시티에 관심이 갔다. 완도는 슬로시티에 관심도 많고 관광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데 반해 장흥은 동네 사람들도 슬로시티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관광안내소에서조차 거기 가봐야 별로 볼 것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흥군 유치면 전체가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는데 읍내에서 찾아가는 안내판 하나 없었다. 그래서 슬로시티에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다 보면 파괴될까 봐 사람들이 덜 찾도록 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로는 슬로시티를 홍보할 예산이 없어서라고 했다. 지방 자치 단체마다 관광 때문에 혈안이 되어 있고 알려졌다 하면 파괴되니 어찌 보면 덜 알려지는 게 슬로시티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탈리아 치타슬로에서 정한 슬로시티 상징 마크다. 슬로시티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 맥도날드가 들어오는 걸 막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빨리 변하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는 현대 사회에서 천천히 세상을 둘러보고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는데 우리나라에는 현재 다섯 군데가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 장흥군 유치면, 담양군 창평면, 하동군 악양면.
길에서 만난 할머니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유치면 신덕리. 현재 한옥 마을을 조성하고 있었다. 저 한옥 마을이 완성되는 내년쯤에는 사람들로 부쩍거릴지도 모르겠다.
길이 이어진 곳으로 가면 유기농 농사를 체험해 볼 수 있는 마을이 있는데 우리가 갔던 날은 통제를 하고 있었다.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면 천 년이 넘은 보림사라는 절과 계곡이 있다고 했지만 배고프다는 아이들의 성화에 가지 못했다.
슬로시티를 알리는 마을 안내판.
신덕리에서 나와 간 곳은 유치면 반월 마을이다. 마을 안내 지도에 장수풍뎅이 마을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는 아들이 가고 싶다고 졸라서 차를 돌렸는데 마침 장수풍뎅이 체험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친정 동네 같은 완전 시골 마을이다.
읍내를 벗어나니 식당을 찾을 수가 없어서 3시가 넘을 때까지 점심을 못 먹은 우리 딸 배 고프다며 내내 징징거리더니 대나무 물총을 보고는 얼굴이 환해졌다.
마침 이곳에서는 동네 할머니들이 먹거리를 만들어 팔고 계셨다. 감사한 마음에 얼른 백반 4인분이랑 부침개를 주문.
배도 고프긴 했지만 시원한 대나무 발이 깔린 정자에서 부침개를 먹으니 신선이 안 부러웠다.
곧이어 나온 완전 시골 백반. 반찬 하나 안 남기고 정말 맛있게 먹었다. 심지어는 빨간 고추까지... 우리가 너무 맛있게 먹었나... 할머니 한 분이 밥이 부족한 것 같다며 한 공기 더 갖다 주시기도. 역시 좋은 시골 인심.
장수풍뎅이 체험 행사라고 해서 뭐 대단한 건 아니었다. 함평 나비 축제 할 때 다녀온 곤충관을 생각하면 정말 소박한 전시였지만 마을 사람들이 직접 뜻을 모아 이런 행사를 하면서 마을을 알리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한마디로 돈 많이 들여서 전국적으로 요란 떠는 행사보다 작은 것이 더 아름다웠다는 얘기. 표고버섯 농사를 짓고 나오는 참나무를 이용해서 키운 장수풍뎅이를 전시도 하고 판매도 하고 있었다.
전원일기의 일용이처럼 편안한 마을 아저씨의 설명을 듣고 있는 우리 아들. 그 큰 애벌레도 유충도 징그럽다 안 하고 만져보고 들여다보고... 음, 역시 우리집 곤충 박사답다. 이 분은 우리에게 마을 이야기를 정말 열심히 해주셨다. 이런 분들이 있는 농촌 마을은 그래도 희망이 넘쳐날 것 같다.
표고버섯을 키우고 있는 모습.
대나무로 만들어놓은 그네. 네 식구가 번갈아가며 타보았는데 제법 그네 타는 맛이 났다. 유치면 반월마을은 아들 덕분에 들렀지만 정말 즐겁게 놀다 왔다. 유명한 곳 근처에 있어서 사람들이 발길이 비껴가는 곳, 그런 곳에도 한 번쯤은 들러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