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 비룡소의 그림동화 50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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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앤서니 브라운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해준 인연을 가지고 있는 책이랍니다. <고릴라> 이후 앤서니 브라운의 책이 한 권 한 권 늘어나기 시작해 지금은 신간 빼고는 거의 모든 책이 있을 정도로 팬이 되었지요. 어렸을 적 부모의 불화와 그로 인해 불안해했던 작가의 마음이 그의 많은 작품에 남아 있는 걸 보며 좋은 부모가 되기를 다짐하게 만들곤 했어요.

2000년 8월에 이 책을 샀다고 메모가 되어 있는 걸 보니 큰애가 두 돌이 되기 전이고, 작은 애는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부터 우리집 책장을 차지하고 있었네요. 책이 몇 권 되지 않던 그 시절부터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덕지덕지 테이프로 붙이고, 낙서를 비롯해 손때 묻은 흔적이 구석구석에 묻어 있어요 .

당시 이 책을 읽어주던 남편이 딸아이에게 고릴라 인형을 사주겠다고 약속하고 진짜로 아이보다 훨씬 큰 인형을 사온 적이 있었어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그 고릴라 인형을 끌고오던 기억도 나네요. 오늘 유치원생하고 수업하려고 오랜만에 책을 꺼냈는데 까맣게 잊었던 기억까지 떠올라서 새삼스럽네요.

세상의 아빠들은 모두 바쁘지요?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놀아줄 아빠가 필요하구요. 이 책은 항상 바쁜 아빠 때문에 사랑에 굶주린 한나의 이야기랍니다. 한나는 고릴라를 무척 좋아해서 고릴라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비디오도 보았지만 정작 진짜 고릴라는 본 적이 없어요. 아빠가 바빠서 동물원에 갈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엄마는 어디에 있는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것도 마음에 걸려요.

밥을 먹을 때도 무뚝뚝한 표정으로 신문을 보느라 한나랑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퇴근해서도 일만 하는 아빠. 아빠가 일하는 모습만 지켜보던 한나가 할 수 있는 일은 방구석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텔레비전이나 보는 거였지요. 한나의 얼굴 표정 좀 보세요. 아빠가 한 번이라도 슬픔에 잠긴 한나의 얼굴을 보았다면 등을 돌리고 앉아 일만 하진 않았을 테지요?

한나의 생일에 아빠는 고릴라 인형을 선물했어요. 그런데 그날 밤 한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아빠 코트를 입을 정도로 크게 변한 고릴라 인형이 한나를 데리고 동물원에 갔어요. 동물원에 가서 고릴라랑 오랑우탄이랑 침팬지도 보았지요. 그런데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동물들의 표정이 모두 슬퍼 보여요. 이 동물들도 한나처럼 놀아줄 아빠가 필요한 건 아니었을까요? 동물원이 아닌 밀림에서 말이죠.

한나는 고릴라랑 극장에 가서 영화도 보았구요, 아빠랑은 시리얼이나 먹던 한나는 식당에 가서 맛있는 것도 실컷 먹었어요. 잔디밭에서 춤까지 추었는 걸요. 그동안 아빠랑 하고 싶었던 걸 고릴라 덕분에 모두 해보았지요. 얼마나 행복했는지 고릴라랑 뽀뽀까지 했어요. 아주 행복한 얼굴로 잠에서 깨어난 한나는 아빠랑 진짜로 동물원에 갔답니다. 아빠랑 놀고 싶은 한나의 마음을 고릴라 인형이 다 전해주었나 봐요. 

아이의 얼굴에 슬픈 그림자를 만들어주고 싶지 않은 바쁜 아빠들과 함께 보면 좋을 그림책이에요. 아이들에게 아빠가 무얼 하느라 바쁜지 들려주기도 하면서요. 그러다 보면 아빠의 마음도 전할 수 있고, 아이의 마음도 알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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