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펐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기뻤다

스프링벅 ㅣ 창비청소년문학 12
배유안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형준과 성준, 그리고 엄마. 난 이 세 사람 때문에 슬프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 .

형준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꽉 미어진다. 그리고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살았냐고 호통이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다. 어렸을 때부터 모범생이었던 형준은 부모가 이끄는 대로 사느라 가슴속에 분노가 쌓여갔는지도 모른다. 부모에게 맞서기도 하고, 자신의 의견도 말하면서 살았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인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자살이라니...

하지만 형준을 그렇게 살게 만든 이가 엄마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나 또한 엄마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엄마는 이미 살아봤다는 무기를 들이밀면서 그 나이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옳고 그른 것은 무엇인지 잔소리를 한다. 그래서 아들의 고민과 선택까지 대신 해주는 완벽한 엄마가 되어갔다. 아니 그렇게 해야 완벽한 엄마인 줄 알았다. 지금 세상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이런 완벽한 모습을 꿈꾸는 엄마들이 너무나도 많다. 제2의, 제3의 형준을 생각하면 정말 섬짓하다.

늘 모범생이었던 형준, 하지만 고3이 되어 슬럼프에 빠졌고 대리 시험이라는 엄마의 무모한 계획 덕에 일류 대학에 가게 된다. 대리 시험이라니... 거기까지였다. 엄마가 아들의 선택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은. 부끄러움에 혼자 괴로워하던 형준은 그만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잃었고 옥상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모범생 아들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던 엄마, 하지만 그 모범생 아들을 옥상 위에서 떠민 것도 엄마였다. 

동생 성준은 형과는 달랐다. 엄마 눈엔 노는 걸로 보이는 짓만 하지만 나름대로 십대 인생을 즐기며 산다. 스스로 선택한 춤을 추고 연극을 하면서 신나게 하루를 보낸다. 자꾸 간섭하고 싶어하는 엄마에게도 형과 비교하지 말고 엄마 인생이나 살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형준도 착하지도 않고, 부모에게 고분고분하지도 않고, 모범생이 아니어도 괜찮은 동생이 부러워 "나도 너처럼 펄펄 뛰면서 살고 싶다."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주제가 다소 무거워서 암울할 것 같지만 이 소설의 분위기는 즐겁다. 열여덟 성준과 그를 둘러싼 친구들의 이야기가 희망적이고 건강하기 때문이다. 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방황할 때 힘어 되어주던 예슬이, 부모의 지나친 간섭을 피해 가출했던 창제, 진정한 인생의 목표를 알려주고 미숙한 어른들을 대신해 용서를 빌 줄 아는 선생님, 풀을 뜯어 먹어야 한다는 원래의 목적을 잊고 달리다가 벼랑으로 떨어져 다같이 죽는 스프링벅의 교훈이 잘 버무려져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모범생이 아닌 성준이가 정말 멋져 보였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성준처럼 즐거운 십대를 살았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그러려면 우선 아이들의 인생과 엄마인 나의 인생을 구분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의 행복을 담보로 몇 계단 위에 올라서서 엄마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라고 요구하는 어리석은 일은 없어야 할 테니까.

<초정리 편지>를 썼던 배유안 님의 청소년 소설로 중고생과 모든 학부모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