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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ㅣ 그림책 보물창고 44
에마 치체스터 클락 글.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우리집엔 늘 개가 있었다. 동요 가사처럼 학교 갔다 돌아오면 꼬리치며 반갑다고 멍멍멍 하는 하는 그런 개였다. 흰둥이가 낳은 누렁이, 누렁이가 낳은 바둑이, 바둑이가 낳은 꺼먹이 등. 이 책을 보고 있자니 대를 이어가며 어린 시절 나의 하루를 풍요롭게 했던 개들과의 추억이 떠른다. 요즘처럼 세련된 이름도 갖지 못했고, 예쁘게 꾸며준 적도 없지만 정말 한 식구처럼 살았던 개들이다.
한 번은 우리 삼남매가 학교에 가고 나면 할아버지의 말벗이 되어주곤 하던 흰둥이가 걸어서 30분도 넘게 걸리는 학교 근처까지 따라온 적이 있었다. 교실에 앉아 수업 시간 내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을까 걱정하게 만들었던 그 흰둥이가 여름 날 갑자기 사라져 동생과 함께 온 집안이 떠나가라 울었던 적도 있다. 그 날이 아마 복날이었지 싶다. 어린 나는 참 좋은 주인이고 싶었는데 어른들 때문에 마무리가 안 좋았던 그 시절.
개 입장에서 진짜 쓸 만한 주인을 찾아가는 파이퍼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늘 험상궂은 표정으로 일만 시키는 첫번째 주인 존스 씨는 파이퍼를 마음대로 부려 먹을 수 있는 소유물로만 생각한다. 엄마에게 언제나 주인의 말을 잘 따라야 한다고 교육받은 파이퍼는 나름대로 열심히 채소밭과 토끼를 돌보지만 존스 씨는 멍청하고 말도 안 듣는다며 묶어놓고 굶긴다.
주인처럼 험상궂게 생긴데다 날카로운 이빨까지 가진 개가 새로 들어온 날 파이퍼는 존스 씨네 집에서 도망친다. 달리고 달려서 마침내 도시로 온 파이퍼가 길을 건너려고 서 있다가 한 할머니를 만난다. 차도를 살피지 않고 파이퍼를 향해 건너오려던 할머니를 향해 마침 차가 달려든다. 그러자 파이퍼는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는 엄마의 가르침 대로 할머니 앞으로 뛰어들어 아슬아슬 차를 멈추게 만든다. 이렇게 할머니를 구한 인연으로 영웅이 된 파이퍼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주인에게 개를 돌려주려던 할머니는 존스 씨가 파이퍼의 진가를 모르는 못된 사람인 것을 알고는 파이퍼의 주인이 되기로 한다. 전화가 왔을 때 존스 씨가 파이퍼를 돌려 달라고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내가 널 찾은 건 행운이었다며 서로 잘 돌봐주는 사이가 되자고 한다. 마지막 장 석양을 바라보며 마주 앉아 있는 할머니와 파이퍼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파이퍼는 존스 씨와 함께 살 때는 무능력한 겁쟁이였지만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할머니를 만나 용감한 영웅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진심으로 대할 때 서로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고, 소통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새삼 나를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