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서평단 알림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아침 신문에서 쿠바의 카스트로가 50년 정권을 동생에게 내주었다는 기사를 보며 이 책을 떠올렸다. 그동안 나는 쿠바라는 나라가 중남미 어디쯤에 붙어 있는 걸로 알았을 정도로 무심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세계 지도를 들여다보고 쿠바가 플로리다 코 앞에 누워 있는 섬이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 늘 미국이 쿠바의 행보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책을 보는 동안 난 정말 바빴다. 저자가 언급하는 인물과 책과 영화, 음반을 찾아보느라 책꽂이 앞을 서성대고 인터넷 검색을 하느라 보낸 시간이 책을 읽으면서 보낸 시간보다 더 길었다. 그리고는 사고 싶은 책과 영화 DVD 목록을 꼼꼼하게 기록해 놓기도 했다. 특히 영화 중엔 예전에 본 것도 몇 편 있었지만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랑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일포스티노>는 꼭 사서 다시 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책제목만 보고 중남미 화가들의 그림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책을 받아들고 보니 중남미를 여행한 후에 쓴 그림이 있는 기행문이었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들뜬 여행자가 되어 라틴 아메리카를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 저자가 직접 그린 강렬한 색채의 그림은 중남미 분위기와 잘 어울려 책 읽는 맛을 더해주었다. 사실 중남미는 매력과 호기심이 가득하지만 누구나 쉽게 떠날 수 있는 여행지는 아니다. 아름답고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땅을 여행한 이들이 들르는 최후의 여행지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인물들의 족적을 따라가며 현지 삶의 모습을 뭉턱뭉턱 보여준다.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들의 나라 쿠바에서는 노인들로 구성된 대표적인 재즈 그룹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과 반평생을 쿠바에서 살며 작품 활동을 한 헤밍웨이의 흔적을 찾아 다닌다. 특히 적대적 관계에 있는 미국 국적의 작가 헤밍웨이가 쿠바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이라는 사실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쿠바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쿠바 사회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던 헤밍웨이, 그의 작품은 노벨상을 받았지만 사람 자체가 노벨상감은 아니라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그리고 죽은 지 오래지만 아직도 세계인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쿠바의 혁명가 체 게베라 등 저자의 쿠바에 대한 사랑은 책의 반 가까운 분량을 차지할 정도로 넘친다. 

프리다 칼로의 나라 멕시코. 내가 마음에 둔 화가들의 삶은 왜 이리도 한결같이 불행한지 모르겠다. 육체적인 장애와 우울한 삶을 살면서도 자전적 작품을 많이 남긴 프리다 칼로, 그리고 그녀에게 숱한 정신적 고통을 주었지만 동시에 영감을 준 남편 디에고 리베라를 찾아 떠난 여행지의 느낌은 마냥 쓸쓸하다.

아르헨티나를 읽으며 정말 오랜만에 보르헤스의 책을 꺼내 보았다. 학교 다닐 적 민음사에서 나온 보르헤스 전집을 덜컥 사놓고는 버스를 타고 오가며 읽었던 기억이 나서. 환상 문학의 대가라는 사실보다 시력을 잃기 시작한 그가 50대엔 아예 장님이 되었지만 국립도서관장이 되어 읽을 수도 없는 책으로 둘러싸인 채 행복해했다는 구절에 가슴이 짠해졌다. 그리고 에비타에 관한 부분을 읽다 말고는 인테넷을 뒤져 영화를 보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가난한 시골 소녀에서 페론을 만나 대통령 영부인이 되었다가 34세로 세상을 떠나 아르헨티나 최고의 묘지 레콜레타에 묻힌 여인의 이야기가 현실이 아닌 영화 속의 이야기 같기만 했다. 

지금의 브라질은 삼바 축제보다 축구로 더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월드컵 우승을 다섯 번이나 한 나라. 사실 나는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우리가 월드컵 4강에 올라보고야 알았다. 브라질의 청소년들은 축구를 하며 펠레나 호나우두처럼 인생이 변하길 바란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장관을 이룬다는 이구아수 폭포마저도 브라질 사람들의 축구 열기만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파블로 네루다가 이탈리아 망명중 한 우체부와의 우정을 영화로 만든 <일포스티노>. 나 또한 그 영화 때문에 시인도 칠레라는 나라도 더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었다. 페루 하면 누구나 잉카인의 도시 마추픽추와 쿠스코를 떠올린다. 체 게베라 같은 혁명가가 다녀온 후 삶의 방향을 바꾼 기억 속의 도시가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 같다. 바로 지금이 당신의 삶을 바꿀 때라고.

중남미 사람들이 아주 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건 가난하기 때문이 아닐까? 당장 먹을거리가 없어도 춤추고 노래 부르고 화려한 색채를 즐기는 사람들. 나도 그 낯선 풍경을 만나러 문밖으로 나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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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ony 2008-02-2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마음이 끌리는 책입니다.
보관함에서 장바구니로 얼른 옮겨야겠네요.^^

소나무집 2008-03-03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 읽어볼 만해요. 시야를 넓힐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