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핀다 - 자연에서 찾은 우리 색 보림 창작 그림책
백지혜 글.그림 / 보림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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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내려온 완도,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띈 색깔은 단연 빨강이었다. 2월이었건만 아파트나 학교 주변 등 내 눈길이 머무는 곳엔 어김없이 빨강 동백이 피어 있었다. 서울 살 때는 동백꽃을 보기 위해 일부러 여행 계획을 세우곤 했는데 원없이 그 꽃을 보게 된 것이다. 처음엔 그 빨강이 너무 강렬해서 외롭기까지 했다.

낯선 동네로 이사 와서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던 차에 그나마 위로가 된 건 서둘러 피어난 봄꽃들이었다. 날씨가 따뜻한 남쪽 지방이라 도시보다 먼저 꽃들이 피었기 때문이다. 초등 학생이 된 아들 녀석과 학교 가는 길에 피어난 작은 들꽃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모른다. 어떤 날은 사진을 찍어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꽃잎을 따서 책갈피에 끼워 말리기도 했다.

이 책은 내가 들에서 만났던 꽃보다 더 실감이 나게 색깔을 표현했다. 하루는 동백꽃 한 송이를 따다 그림 옆에 올려놓아 보았다. 생화가 오히려 빛을 잃을 정도로 생생함이 느껴졌다. 비단 위에 그림을 그려서 그런지 꽃잎의 조직이 아주 자연스럽다.

내가 가장 오랫동안 들여다본 꽃은 주변에 너무도 흔한 진달래다. 처음엔 꽃색이 좀 흐리다 싶었는데 자꾸 들여다보니 이게 진짜 꽃잎 색깔이구나 싶었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진달래는 무더기로 피어 있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 색이었다. 앞산에 올라 꽃잎 한 장 한 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주 연한 분홍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사물을 대충 스치면서 보았는지 반성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나는 모란꽃을 싫어했다. 화단 한구석에 큼직큼직 피어 있는 모란에게 눈길을 준 적이 거의 없다. 색깔 때문이다. 나는 그 짙은 자줏빛이 싫었다. 모란 옆에 피어 있는 붉은 장미나 노란 매화가 더 좋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이 책 속에서 만난 모란은 내 눈길을 확 잡아끌었다. 자꾸만 들여다보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얼마전 해남 대흥사에서 마주쳤던 모란꽃도 어린 시절의 그 모란은 아니었다. 아마 나이 탓이리라. 아주 밝고 선명한 색보다 중후한 느낌의 자줏빛이 좋아진 걸 보니.

달개비꽃의 파랑, 도라지꽃의 보라, 나리꽃의 주황을 보고 있으면 당장 꽃을 만나러 가고 싶어진다. 갈색 밤을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잘 여문 밤이 내 앞에 또르르 굴러떨어질 것만 같다. 옛사람들이 색깔을 내듯 작가도 흙이나 돌, 풀뿌리, 조개껍데기, 그을음 등에서 얻은 천연 재료로 물감을 만들어냈다니 놀랍기만 하다. 색깔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이 예사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님을 알겠다.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이렇게 고운 색들을 다 뒷전으로 놓고 크레파스 상자 속에 든 색이 색의 전부인 줄 아는 아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우리  딸아이 말처럼 유아들에겐 큰 글씨만 읽어줘도 좋겠고, 초등 학생들에겐 작은 글씨의 설명까지 읽으면 더 유익할 것 같다. 정말 곱고 고운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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