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프레이야 > 불멸의 연인

 

제법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인데 다시 보았다. 연기파 배우 게리 올드만이 베토벤으로 열연했다. 괴팍해 보이고 섬세하면서도 열정 가득한 표정을 주름 하나까지도 잘 지어냈다. 역사적 인물을 영화화할 때면 인물의 모든 면을 다루기엔 제약이 있다. 어느 곳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지겠거니 하고 보게 된다. 베토벤의 작품들을 영화 전반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볼륨을 높여서 보았다. 특히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의 선율이 듣기에 참 좋았다. 오케스트라는 헝가리의 유명한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가 담당하고 요요마가 첼로 협연을 했다고 한다.


베토벤이 병으로 죽은 1827년에서 시작하여 절친한 친구 쉰들러에 의해 그의 과거를 회상하며 격변의 시대, 격정의 인물에 빨려 들어간다. 유서에 남긴 ‘나의 천사, 나의 모든 것, 나의 분신’ 이라는 여성을 찾아 헝가리까지 가는 쉰들러에 의해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 과정에서 세 명의 여인이 드러나고 바로 그 정답의 연인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귀족의 여인이 아니라 가구제조공장의 딸이다. 어느 정도 복선이 깔려있었지만, '희극은 이제 끝났다'는 베토벤의 마지막 말이 쓴 웃음을 남긴다. 사랑의 오해와 질투와 끓어오르는 정염이 안타까웠다.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가장 민감해야 할 부분의 장애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극복하고 인간 승리의 본보기로 존경 받는 인물이다. 공화주의자였던 그가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한 걸 보고 그에 대한 음악적 헌사를 지워버리고 그냥 ‘영웅’으로 제목을 달았다는 사실을 비롯해, 그의 혁신적이며 과감한 사상도 특기할 만하다. 베토벤은 아홉 가지 교향곡 모두 귀족들만이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는 점에서도 새로운 시대정신을 지녔던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베토벤의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전문을 읽고 가슴이 울렸던 기억이 있다. 비엔나로 온 이탈리아 백작의 딸 줄리에트와 헤어진 후가 이 유서를 썼을 즈음인데 영화에서는 이 유서가 나오지 않았다. 그랬다면 베토벤의 인간적인 고뇌와 숨겨진 고통 그리고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했던 그의 다정함과 인간애를 좀 더 엿볼 수 있었을 것이다. 비장함 뒤에 감겨 있었던 폭풍의 소용돌이가 느껴지는 글귀들.

 



영화는 그런 면모보다 지나치게 격정적인 성격과 유년의 아픈 기억과 신체적 장애로 인해 형성되었음직한 부정적인 성격을 부각하는 듯 했다. 그가 언제부터 청력을 잃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고 하는데 줄리에트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동기도 그의 장애였으니 대략 짐작은 할 수 있다. 그가 월광소나타를 연주하며 피아노 뚜껑에 귀를 갖다 대고 음파를 느끼는 장면과 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의 아이를 가졌어요.’라는 연인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하는 장면이 가장 안쓰러웠다.


모차르트와 같은 신동으로 유명세를 타게 하려던 아버지의 뜻에 잘 따르지 않자 모질게 학대 받던 장면은 정말 가슴 아프다. 어느 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맨발로 잠옷을 입은 채 달아나 캄캄한 호수에 몸을 누이고 하늘을 보고 누운 루드비히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수많은 별빛 속에 잠겨있었다. 슬프면서도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환희의 송가’와 함께 나오는데, 1824년 그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하며 초연을 하였을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끝나자 우레 같은 청중의 박수소리를 못 듣고 계속 오케스트라 쪽을 보고 서 있는 그를 한 연주자가 돌려세워 주었고 청중들 중에 많은 사람이 젖은 눈가를 닦았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청중이 모두 기립박수를 보내고 나이 든 베토벤은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지휘를 하며 베토벤은 별빛 속에 누워있었던 그 때를 회상하며 감격스런 표정으로 눈시울이 젖어든다.


베토벤의 실제 불멸의 연인은 사촌이라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좀 다르게 나온다. 그 역할을 한 배우, 개성 있는 얼굴이었다. 요한나 테르 슈테게 라는 배우였다.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쉰들러가 추적해간 두 번째 연인으로 나온다. 아름다운 얼굴로 회고하기를 자신은 진정 루드비히를 사랑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전원의 눈부신 풍경, 고풍스러움과 화려함을 보여주는 실내장식과 가구 등, 하나하나 볼거리가 많았다. 무엇보다 전편에 깔리는 베토벤의 음악을 듣는 게 덤이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무척 존경했다고 한다. 그가 누워있을 때 찾아오기도 했고 베토벤이 죽은 후 이듬해 그도 슬픔을 못 이기고 죽음을 맞았다. 베토벤이 쉰들러에게 하는 대사에 그의 경탄스러운 음악철학 같은 게 담겨있다. 음악은 위험한 것. 음악은 작곡가의 그때 그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에 음악을 듣는 사람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작곡가는 들을 사람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곡을 쓴다고. 그러니 고스란히 작곡가의 마음에 빠져야하고 그렇게 되어야 그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음악은 사람에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이 말은, 음악적 야망을 꿈꾸었던 쉰들러가 그걸 접고 베토벤을 존경하며 평생 비서역할을 자청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진정한 예술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게 했다.


문득 드는 생각, 글은 어떤 것인가. 글은 음악만큼 위험한 것일까.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읽는 사람을 염두에 전혀 두지 않고 쓰는가. 베토벤의 음악처럼 위험할 정도로 매료되는 강한 중독성의 글이면 정말 위험한 것인가. 독자의 취향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독자의 눈치를 살피며 다듬느라 '위험한' 글 한 편 쓰지 못하니, 베토벤 같은 영웅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되지 싶다. 영화 제목 ‘불멸의 연인’은 고통 속에서도 불멸의 음악을 낳은 Ludwig Van Beethoven(1770-1827) 에게 바쳐도 좋을 이름이다.



- Immortal Beloved / 1995 / 버나드 로즈


- 2007년 내가 본 아홉 번 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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